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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치거나 사고당하거나

병과 사고 : 사고 처리

by 크느네

서로 잘못해서 사고가 나면 누가 가해자가 될까요?

1. 잘못을 더 많이 한 사람.

2. 피해를 더 많이 준 사람.


매년 우리나라 인구의 대략 90%는 병으로, 나머지 10%는 사고로 사망합니다. 2020년 우리나라에서 교통사고·추락사고·자살 등 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약 2만 6천 명입니다. 병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적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이 사고로 사망하고 있습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사고에 휘말리게 됩니다. 사고가 나면 피해 준 사람, 가해자는 사고 낸 책임을 져야 하므로 손해가 생깁니다. 피해받은 사람, 피해자는 당연히 손해가 생깁니다. 사고가 나면 무조건 양쪽 모두 손해를 보게 됩니다. 차이가 있다면 ‘가해자는 자기 때문에, 피해자는 상대방 때문에’라는 것입니다. 양쪽 손해를 완전히 없애는 방법은 사고 나기 직전의 과거로 돌아가 사고를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불가능합니다. 결국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일어난 사고를 ‘없었던 일에 최대한 가깝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고가 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사고와 관계있는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이 됩니다. 사람이 생명을 잃거나 장애를 얻게 되는 것은 없었던 일로 만들기가 가장 어렵기 때문입니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사고가 일어나면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이용하여 자신과 상대방을 보호해야 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다면 119에 신고하거나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라도 해야 합니다.

그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누가 더 잘못했는가?’를 따지는 일입니다. 사고 가해자는 피해자를 돈・시간・정성을 들여 도와야만 하기에 가해자와 피해자를 확인하는 과정은 중요한 일입니다. 문제는 사고가 나면 여러 가지 원인이 겹칠 때가 많아 그 확인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졸면서 자동차를 운전하던 철수가 횡단보도가 없는 도로에서 무단 횡단하는 영희를 치었다면, 철수와 영희 모두 잘못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둘 중에서 더 많이 잘못한 쪽이 가해자가 됩니다. 손해가 더 큰 쪽이 무조건 피해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쪽이 더 큰 잘못을 했는지 확인하려면 기준이 필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상식’입니다. 많은 사람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규칙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아는 규칙을 기준으로 삼기에 서로 모르는 사이라도 잘못을 따질 수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별하고, 그 피해 보상을 서로 결정하여, 사고를 없었던 일로 가깝게 만드는 것이 가장 빠르고 좋은 사고 처리 방법입니다.

그러나 상식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사고이거나 상대방이 상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법’이 잘못을 따지는 기준이 됩니다. 법은 상대방이 우길 수도 없고 상대방이 몰랐다고 핑계 댈 수도 없는 기준입니다. 상식이 통하지 않을 때는 법으로 사고 처리를 해야 합니다. 필요에 따라 법원에 가서 재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사고가 나고 자기가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애매할 때는 급하게 사과하지 말고 상식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 충분히 생각한 뒤에 자기 입장을 결정해야 합니다. 만약 자기 잘못으로 사고가 난 것이 확실하다면 빠르게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것이 좋습니다.

운전자 철수와 보행자 영희에게 일어난 사고는 양쪽 모두 잘못이 있는, ‘쌍방 과실’입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사람이 위험하게 걷는 것보다 자동차가 위험하게 달리는 것이 훨씬 더 위험합니다. 자동차가 사람보다 무겁고 빠르기 때문입니다. 법적으로 볼 때 졸음운전과 무단횡단이 만나면 잘못한 정도는 졸음운전이 약 90%, 무단횡단이 약 10%입니다. 결국 상식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철수 잘못이 더 큽니다. 철수는 가해자가 되며 영희가 예전처럼 건강하게 회복될 때까지 책임을 져야 합니다.

만약 철수가 졸음운전을 하지 않았고 영희가 무단횡단을 했다면 상식과 법을 근거로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자세한 상황에 따라 의견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는 법원에 가서 잘잘못을 따져야 합니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생긴 손해를 없애는 일에만 온 힘을 기울이면 됩니다. 피해자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원래대로 만드는 일에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피해자는 사고가 난 이유를 알고 사과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가해자는 사고 설명을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충분히 하고 사과해야 합니다. 가해자는 설명할 때 변명하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 변명은 가해자가 말할 필요도 없고, 피해자가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가해자가 피해 보상을 할 때는 급하게 결정하기보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과 충분히 상의한 후에 피해자와 결정하는 것이 낫습니다.

피해자는 가해자로부터 사과와 보상을 받고 자신에게 생긴 손해를 빨리 털어내야 합니다. 가해자가 알아서 해주기만을 기다리기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회복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오랫동안 고통 속에 있을수록 자기만 손해입니다. 피해자 역시 자기 의지와 노력이 상당히 필요합니다. 간혹 가해자가 책임을 다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피해자로서 요구 사항을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경찰과 법원에 부탁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일을 당했다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기보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사고를 만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일에 좀 더 낫습니다.

많은 사람이 사고가 나면 크게 당황합니다. 무작정 상대방을 함부로 대하면서 책임을 피하려고 하는 사람, 상대방을 꾸짖으려고 하는 사람, 어쩔 줄 몰라 가만히 있는 사람, 도망가는 사람 등 사람마다 다양한 태도를 보입니다. 사고는 자신에게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서 누구나 사고가 나면 당황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만큼 대부분 사람이 사고를 처리하는 일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사고를 직접 경험하고, 사과하고, 사과받고, 책임지고, 요구하고, 감당하는 일 모두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각종 보험이나 법은 사고 처리를 돕는 역할을 할 뿐 사고를 처리하고 마무리하는 일은 결국 자신이 직접 해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사고가 났을 때 뒤처리를 부모에게 맡기고 빠지지 말고, 최대한 자기가 직접 감당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사고 처리를 잘하면 원수로 지낼 사이가 오히려 친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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