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이유
오래전 아브라함 시대쯤 가나안 주변 지역에 ‘욥’이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욥은 착하고 정직했으며 하나님을 존경하고 악을 미워했습니다. 그는 자녀가 10명이나 있는 좋은 부모였고 가축이 많은 부자이기도 했습니다. 욥은 하나님에게 감사하면서 죄짓지 않게 조심하며 살았습니다.
어느 날 사탄은 욥이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계속 사랑하는지 시험하고 싶었습니다. 사탄은 사람의 수준을 뛰어넘는 존재로서 사람을 어려움에 빠뜨리거나 죄의 길로 이끄는 일을 주로 합니다. 사탄은 욥의 자녀를 해치고 재산을 빼앗았습니다. 욥은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사탄은 고난의 수준을 더 높여 욥의 건강을 망가뜨렸습니다. 욥은 갑자기 닥친 많은 어려움 때문에 너무 괴로웠습니다. 욥의 친구 3명은 욥을 위로하러 찾아왔습니다.
욥은 성실하고 겸손했지만 그 또한 사람이었습니다. 심한 어려움에 지친 욥은 친구들 앞에서 “이럴 거면 태어나질 말았어야 했는데…”라고 화내며 푸념했습니다.
‘엘리바스’라는 친구는 욥에게 화내지 말고 기도하며 어려움을 견디면서 하나님에게 문제 해결을 맡기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준 벌을 기꺼이 견디면 나중에 복이 있다고 충고했습니다.
엘리바스의 충고는 겉으로 보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욥의 어려움을 덜어주기보다 부담을 주는 말이었습니다. 사람이 화날 때 화내는 것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입니다. 슬플 때 울어서 자기 슬픔을 덜어내듯, 화날 때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으면서 화내는 것은 자신의 괴로움을 덜어내는 중요한 일입니다. 게다가 지금 당장 큰 괴로움을 겪는 사람에게 무작정 희망을 갖고 기도하라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벌을 견디면 나중에 복이 온다는 것도 항상 이루어지는 사실이 아닙니다.
엘리바스의 충고는 욥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욥은 엘리바스에게 벌을 견디기가 너무 어려워 그저 죽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욥은 서운한 마음에 하나님에게 계속 툴툴거렸습니다.
‘빌닷’이라는 친구는 욥에게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에게 용서를 빌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기에 욥의 고난은 억울할 것이 없고 욥이 자기 죄를 뉘우쳐야만 하나님이 벌을 없애준다고 충고했습니다.
빌닷의 충고 역시 겉으로 보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욥을 돕기보다 상처를 주는 말이었습니다. 고난당한 사람을 돕는 일은 문제 해결 방법을 가르치는 것과 위로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빌닷처럼 문제 해결에 너무 집중하면 상대방을 위로하기보다 비난하기 쉽습니다. 고통받는 사람을 비난하면 상대방의 고통은 더욱 커질 뿐입니다. 이처럼 고난 당한 사람을 가르칠 때는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하지만 위로할 때는 딱히 문제가 생기지 않기에 위로는 아주 좋은 도움이 됩니다. 선물이나 돈을 건네는 위로는 정성 있는 위로가 되며 그런 것 없이 함께 슬퍼해 주는 것도 충분히 좋은 위로가 됩니다.
빌닷의 충고는 욥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욥은 빌닷에게 자기는 죄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자기처럼 죄 없는 사람에게 벌을 주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욥은 계속 원통해했습니다.
‘소발’이라는 친구는 욥을 아예 죄인으로 결정하고 비난했습니다. 그는 욥이 죄를 지었지만 자기가 모르는 것뿐이라고 충고했습니다.
소발의 충고 역시 겉으로 보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욥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더 심각하게 만드는 말이었습니다. 누구나 살면서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미처 그것을 깨닫지 못할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정한 죄는 판단하기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함부로 대하고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확인하는 일은 대단한 지식이 없어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꾸준히 성실하게 살았던 욥이 너무 무식해서 자기 죄를 찾지 못했거나 일부러 모른 척을 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욥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확실히 알지 못하면서 무작정 욥을 죄인으로 몰아붙이는 소발의 행동이 사람을 괴롭히는 죄에 더 가깝습니다.
친구들은 욥에게 어떤 죄가 있는지 몰랐지만 무언가 죄가 있다고 계속 주장했고, 욥은 자기에게 죄가 없다고 계속 주장했습니다. 친구들은 하나님은 죄인에게만 벌을 준다고 주장했고, 욥은 하나님은 죄인이 아니어도 벌을 준다고 주장했습니다. 친구들과 욥은 죄와 하나님에 관해 아는 체하면서 서로 맞섰습니다.
이 상황을 보던 ‘엘리후’라는 사람이 욥과 친구들을 모두 꾸짖으면서 자신이 지혜롭게 가르쳐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엘리후는 세 친구와 비슷한 말을 되풀이했고 오히려 횡설수설하면서 다짜고짜 욥을 무시하고 헐뜯었습니다.
사실, 욥이 고난받는 이유는 욥의 이야기 맨 첫 부분에 이미 답이 나와 있었습니다. 사탄의 시험이 욥이 받는 고난의 이유였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이런 이유를 모르면서도 욥을 무작정 죄인으로 보았습니다. 욥은 자기에게 고난을 준 존재가 사탄인 것을 모르면서도 무작정 하나님이 자기에게 벌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욥은 죄 없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이 벌을 준다는 근거 없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욥과 친구들이 다툰 이유는 욥이 고난받는 이유를 모두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자기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에게 갑자기 하나님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일이 오묘하고 신비로워 사람의 감각과 지식으로는 그것을 이해하는 일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고난 또한 세상의 일이므로 사람은 고난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게다가 다양한 고난이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므로 세상 모든 고난의 원인과 해결 방법을 알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은 하나님과 차이가 크게 나기에 어쩔 수 없이 사람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고난과 하나님에 관해 아는 척하는 욥과 친구들을 꾸짖었습니다. 욥과 친구들은 아는 척하며 상대방을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조심히 말해야 했습니다.
선악과 사건에서 사람이 고난받는 이유는 사람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욥 사건에서는 사탄의 시험이, 이스라엘 도피성에서는 사람의 실수가 고난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고난은 자신이나 상대방 때문에, 사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여러 이유 때문에 생길 수 있으므로 고난의 원인과 해결책에 관해 함부로 단정짓지 않아야 합니다.
욥의 세 친구와 엘리후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공경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들에게 사랑이 부족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들은 욥의 고난이 멈추길 바라며 해결 방법을 제시했지만 딱히 좋은 방법이 되지 못했습니다. 친구들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과 욥을 가르치려는 일에만 집중했고 욥을 위로하지 못했습니다. 친구들의 사랑 없는 논쟁과 가르침은 옳지도 않았고 욥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욥을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자기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일이나 돕기 힘든 문제라면 가르치기보다는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고난을 자기가 대신 가져가고 희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함께 슬퍼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친구들이 욥에게 상처 주지 않았다면 욥은 친구가 와 준 것만으로 많은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정말로 친구들이 욥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해결 방법을 말한 것이라면 강요하기보다는 사랑으로 권유해야 했습니다. 욥은 하나님에게 죄와 고난에 관해 함부로 말한 일을 사과했습니다.
정말 저는 알지도 못하면서 말하였고, 깨닫지 못하는 일들을 아는 체 하였습니다. <욥기 42장, 욥의 뉘우침>
하나님은 세 친구에게 자기 죄를 뉘우치는 제사를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욥에게는 어리석은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하나님은 죄 없이 고난받았던 욥에게 많은 은혜를 주어 욥을 위로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어려움을 당할 때 위로하는 사람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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