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절친에서 연인으로 1

매력

by 크느네
은우는 요즘 지수를 만날 때마다 예전처럼 편하지가 않습니다. 장난도 툭툭 치기 어렵고, 가끔은 지수의 모습이 낯설게 예뻐 보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두 사람은 함께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지수야, 그 얘기 들었어? 우리 동아리 서준이가 해원이한테 고백했대.

진짜? 두 사람 만난 지 아직 한 달도 안 됐을 텐데. 갑자기 그렇게 친해졌나?

아니. 아직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닌데, 서준이가 그냥 무작정 돌직구 날린 거지.

으이구, 그래서 어떻게 됐어?

해원이가 마음이 안 간다면서 거절했대.

에휴. 은우야, 만약 쌩판 여자가 대뜸 사귀자고 하면 넌 뭐라고 할 거야?

음… 바로 싫다고 말하기도 쉽지 않고,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이랑 갑자기 사귀는 건 솔직히 부담이 많이 되지.

물론 갑작스러운 고백으로 바로 사귀는 사람도 있긴 한데, 대부분은 그런 상황을 난감하게 느끼겠지. 해원이도 그랬을 거야.

그럼 서준이가 고백에 실패한 건 얼굴이나 매력 문제가 아니라, 고백하는 방법이 문제였네.

맞아. 아직 애인이 아닌 남녀가 친하게 지내면 보통 그냥 친구라고 부르고, 사귀게 되면 남자친구·여자친구라고 부르잖아. 왜 그럴까?

음… 친구는 사람 대 사람 사이라서 앞에 굳이 남자, 여자라는 말을 붙일 필요가 없고, 애인은 남자랑 여자 사이로 사귀는 거라 그런 말이 붙는 거 아닐까? 아니면 여러 친구 중에서 이성적으로 끌리는 한 사람을 골라 사귀니까 그런 말이 나온 걸 수도 있고.

나도 완벽한 정답은 모르겠지만, 네 말이 둘 다 맞는 거 같아. 특히 애인을 사귈 땐 친구에서 발전하는 경우가 많아서, ‘남자친구·여자친구’처럼 ‘친구’라는 말이 남은 거 같기도 해.

모르는 사람들 중 일부가 아는 사람이 되고, 그중 몇몇이 친구가 되고, 그중 단 한 사람이 남친·여친 같은 애인이 되는 거구나. 애인 사귀는 게 왜 힘든지 알겠다.

뭐, 미팅이나 소개팅으로 바로 애인을 사귀는 경우도 있지만, 친구에서 애인으로 바뀌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친구에서 애인으로 바뀌면 뭐가 다른 거야? 내 동기 하나는 친한 여자랑 맨날 투닥거리며 다니더니, 사귀고 나서는 얌전하게 딱 붙어 다니더라고. 사람이 그렇게 갑자기 확 바뀌나?

둘 사이의 분위기가 바뀌고, 서로 팔짱을 끼거나, 껴안거나, 뽀뽀 같은 스킨십을 하는 건 친구와 애인의 분명한 차이긴 하지.

크흠! 그, 그렇겠지.

뭐야, 왜 혼자 얼굴이 빨개져? 상상했어?

가게가 더워서 그래. 아무튼, 가까운 남녀가 같이 다니면서 손을 안 잡으면 친구, 손을 잡고 다니면 애인인 거였어. 아주 간단하네.

연인 사이가 엄청 대단하고 복잡한 관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단순한 사이만도 아니야. 친구랑 애인 둘 다 서로 친하긴 한데, 그 친한 정도가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해?

친구는 그냥 친한 거고, 애인은 엄청엄청 많이 친한 거지.

맞는 말이야. 연인은 적당히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 서로 많이 의지하고 걱정해 주고 챙겨 주려는 마음이 친구 때보다 훨씬 큰 사이거든. 손을 잡고 다닐 때도 그냥 설레고 기분 좋은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서로 든든하고 다정한 느낌이 같이 나야 진짜 연인인 거지. 만약 연인이 설레는 느낌만 있는 남녀 사이라면, 모르는 사람과 갑자기 사귀어도 괜찮겠지? 근데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 그래서 서로에게 그런 마음이 생길 때까지 시간을 좀 충분히 들일 필요가 있어.

난 친구도, 애인도 그냥 뚝딱 하고 빨리 생겼으면 좋겠어.

마음은 알겠는데,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야. 내가 전력 질주한다고 해서 상대방도 똑같은 속도로 달려오는 건 아니거든.

그래, 나만 욕심내고 서두른다고 되는 일은 아니겠지. 근데 지난번에, 진짜 친구가 되려면 속마음을 나눠야 한다고 했잖아. 그럼 애인이 되려면 뭘 나눠야 할까?

바로 답해 주긴 싫고, 네 생각부터 하나만 말해 봐.

음, 같이 좋은 시간 많이 보내는 거. 어때, 맞지?

맞는 말이긴 한데 살짝 아쉽네. 사람은 아무리 친해도 항상 즐겁게 지낼 수만은 없어. 누구나 실수도 하고, 단점도 있잖아. 그런 순간에도 사이가 쉽게 멀어지지 않아야, 친구에서 애인으로 이어질 수 있겠지.

큰 단점이 나랑 너무 안 맞으면 안 사귀는 게 맞지만, 작은 단점들은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 사귈 수 있다는 거네.

그렇지. 사소한 실수에도 내가 크게 실망해 버리면 사귀기 어려워. 상대방도 마찬가지고. 설령 사귀기 시작해도 오래 못 가겠지.

서로에 대해 잘 모른 채 갑자기 사귀면, 상대 단점을 거의 모르고 시작하는 거라 매우 어렵겠네.

속마음 나누고, 단점을 받아들이는 시간 없이 그냥 호감만 믿고 급하게 사귀면 꽤 불안한 커플이 돼. 물론 서로 배려하면서 문제를 하나하나 잘 풀어 가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난이도가 매우 높다고 봐야지.

마치 유치원생이 초등학교를 건너뛰고 바로 고등학교에 가는 거랑 비슷한 건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근데 단점만 이해해 주면 바로 연인이 될 수 있는 거야? 뭔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연인이 되려면 나만 상대를 간절히 좋아해서는 안 돼. 상대도 나를 많이 좋아해야 하거든. 나 혼자 좋다고 해서 사귈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상대 마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좀 있어야 해.

결국 나만의 매력이 있어야 한다는 거네. 난 특별한 매력 같은 건 없는데… 애인은 아무나 사귀는 게 아니었구나.

매력이라고 하면 보통 얼굴이 잘생겼다, 돈이 많다, 머리가 좋다, 예능감이 좋다… 이런 걸 떠올리잖아. 이런 특별한 매력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고민이 되는 거고. 거기에다 인간적인 매력이랑 이성적인 매력, 이 두 가지가 다 필요한 것도 문제야.

잠깐, 인간적인 매력이랑 이성적인 매력은 또 뭐야?

남녀는 서로한테 ‘사람’이기도 하고 ‘이성’이기도 하잖아. 마음을 끌려면 성격이나 태도 같은 사람다움도 좀 필요하고, 외모나 분위기에서 오는 설렘도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하겠지.

그럼 둘 중에 하나만 있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인간적인 매력만 있고 이성적인 매력이 아예 없으면, 연인이 되기보다는 편한 친구로 남기 쉬워. 반대로 설렘만 있고 사람다움이 별로 없다면, 연인이 되어도 금방 헤어지기 쉽고.

지수야, 네 얘기 들으니까 괜히 주눅 든다.

잠깐 우울해졌지? 근데 너무 걱정하지 마. 특별한 매력이 없어도 애인 있는 사람은 진짜 많으니까.

그래도 결국 그런 매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잖아.

내 얘기 하나만 들어 봐. 내 친구 유진이는 친구랑 약속을 정말 잘 지켜. 또 누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진심 어린 눈빛으로 끝까지 들어줘.

갑자기 네 친구 이야기가 왜 나와?

자, 이 얘기만 듣고도 내 친구 유진이한테 어떤 느낌이 들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착한 사람 같고, 은근히 끌리는데?

바로 그거야. 지금 너는 유진이가 예쁜지, 멋있는지는 하나도 모르는데, 착하다는 것만으로 벌써 매력을 느꼈잖아. 착함은 특별한 조건이 없는 사람도 가질 수 있는 좋은 인간적인 매력이야. 그리고 남녀는 상대가 싫지만 않으면 기본적인 이성적 끌림이 있어. 결국 착한 사람은 연인이 될 만한 매력이 충분하다고 볼 수 있어.

방금 인간적인 매력만 있고 이성적인 매력이 아예 없으면, 연인보다는 친구로 남기 쉽다며? 말이 앞뒤가 안 맞잖아.

이성적 매력이 ‘아예 없는 것’은 상대가 나를 돌이나 나무, 혹은 남매 같은 걸로 본다는 거야. 점수로 따지면 0점? 가망이 없는 거지. 하지만 이성으로서 비호감이 없다면 대단한 매력 점수 100점은 아니더라도 기본 점수 50점은 있다는 거야.

딱히 비호감만 아니면 된다는 거구나. 천만다행이다. 근데 착하게 사는 것도 그렇게 쉽진 않잖아. 희생, 봉사, 양보… 이런 게 다 필요하잖아.

그건 네가 착함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해서 그래. 난 착한 건 그냥 기본 매너 정도라고 봐. 쉽게 말해서, 굳이 선 넘는 짓만 안 해도 대부분 ‘저 사람 괜찮네, 착하네’라고 느끼거든. 친구로 오래 지내면서도 서로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 그게 바로 착한 거고 매력이 되는 거야.

그렇다면 친한 남녀가 선 넘지 않고, 작은 상처는 잘 넘기고, 서로 나름 착하게 대해 주면서 지내면 연인이 될 가능성이 꽤 높은 거네?

시간이 꽤 지났다고 해서 저절로 친구나 연인이 되는 건 아니야. 오히려 보통은 가까워질수록, 오래될수록 같이 지내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거든. 세월이 지나면 가족 사이도 친밀할 때보다 서먹할 때가 더 자주 오잖아. 그런 가운데서도 큰 문제 없이 지내는 사이라면, 서로를 감당하고, 챙길 힘도 있고, 끌어당기는 매력도 있어서 연인이 되기에 충분한 거지.

하긴, 생각해 보면 연인이 된다는 게 무슨 거창한 목표를 이루는 일은 아니잖아. 그냥 서로 사랑하고, 같이 있고 싶어서 사귀는 거지. 결국 서로 친하게 지내면서 큰 문제만 없으면 되는 일이었네.

이제 긴장이 조금은 풀렸어?

근데 결혼정보회사처럼 조건을 맞춰서 만나는 경우엔, 조건만으로 바로 연인이 될 수도 있지 않아?

결혼정보회사는 조건으로 ‘소개’만 해 주는 거고, 그다음에 관계를 만들어 가는 건 결국 본인 몫이야. 직업이나 돈 같은 조건이 좋다고 해서 사이가 저절로 잘 굴러가진 않아. 게다가 서로가 원하는 조건을 맞춘다는 게 사실 엄청 어려워.

그래?

대충 예를 하나 들어 볼게. 어떤 여자가 8명의 남자 중에서 애인을 고른다고 해 보자. 조건을 하나씩 붙일 때마다 남자가 절반씩 줄어든다고 치는 거야. 첫 번째 ‘자상한 남자’ 조건으로 4명만 남고, 두 번째 ‘돈 많은 남자’ 조건으로 2명만 남고, 세 번째 ‘키 큰 남자’ 조건까지 붙이면 1명만 남겠지?

조건 세 개 붙였는데 8명이 1명으로 줄어버렸네. 조건이 네 개면 거의 0이 되네?

현실이 꼭 이렇게 딱딱 떨어지진 않지만, 조건이 늘어날수록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엄청 줄어드는 건 사실이야. 게다가 그렇게 고른 상대가 나를 선택해 줄 거라는 확실한 보장도 없어. 조건을 따질수록 연애는 미션 임파서블이 되는 거야.

그러니까 친구에서 절친을 거쳐 애인까지 되는 복잡한 과정을 건너뛰고, 결혼정보회사 소개팅으로 애인을 만드는 건 말만 들으면 되게 쉬워 보여. 근데 현실은 생각이랑 한참 다르네.

뭐, 너무 꿈 같은 기대만 하지 말고 조금은 현실적으로 생각하면서 매너 있게 만나면 그런 만남도 충분히 잘 될 수는 있겠지. 근데 내가 원하는 것만 챙기려고 하면 아무래도 연인이 되긴 어렵겠지.

그 말 들으니까, 지난번에 내가 너한테 빌려준 2만 원이 갑자기 생각난다?

방금 계산적인 관계는 별로라고 내가 말한 거 같은데…

됐고, 오늘 밥은 네가 사. 난 오늘 2만 원어치 먹을래.

너, 너무 많이 먹으면 건강에 안 좋아. 네가 걱정돼서 이런 말 하는 거 알지? 1만 5천 원어치만 먹장.



친구는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이지만, 연인은 즐거움 그 이상이 필요한 사이입니다. 상대의 단점을 억지로 좋아할 필요는 없지만, 기본 상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잘못이라면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넘어가 줄 수 있어야 연인 관계로 자라날 수 있습니다. 말투나 작은 행동 같은 사소한 습관 하나하나가 스트레스라면, 그 관계는 연인이 되기 힘든 편입니다.

또한 연인이 되려면 상대를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어야 합니다. 특별한 이성적 매력이 없더라도, 남녀에게는 기본적인 끌림이 있습니다. 거기에 착한 인간적인 매력이 더해진다면 좋은 연인이 되는 데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착함은 무엇이든 다 양보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태도가 아니라, 상대에게 함부로 하지 않고 기본적인 매너를 지키려는 태도를 뜻합니다.

포용력과 매력을 주고받는 절친 남녀 사이가 되었다면 사실상 연인이 되기 직전입니다. 이제 확실히 연인이 되려면 무슨 말을 주고받아야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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