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 사는 요정들

[민원 이야기] 발급번호-015

by stamping ink

자신의 외모가 자신이 나이와 일치합니까?

휴대전화 어플 중에는 자신의 사진을 올리고 타인이 보는 나의 나이를 맞추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나의 나이보다 늘 조금씩 많이 나오곤 한다.

타인의 시선에선 나의 외모는 제 나이보다 많아 보이나 보다.

외모에 고민을 털어놨을 때, 지인이 내게 말했다.

"지금 노안으로 조금 성숙해 보이지만, 진짜 그 나이가 되면 그 후로는 더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다데? 그 후로는 동안이라는 소리 듣을걸?"


그런 면에서 나에게 부러움의 최고봉엔 유치원 경력증명서를 떼러 오는 민원인들이다.

어린아이들과 섞여 지내다 보니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동심의 세계에서 동화 속 요정처럼 시간을 멈추는 능력이 생겼나 보다.

물론 그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과 물려받은 유전자의 몫도 있겠지만 내가 본 그들은 생기발랄했다.


그러다 보니 첫 만남에 최대 실수 대상 중 그들이 있다.

사무실을 들어서는 청량하고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 뭐가 필요하니?"

당연히 어린 학생이라 판단하고 무거운 사무실 분위기에 편안하게 대응하려 따스히 반겨주었다.

"유치원 경력증명서 떼러 왔는데요."

귀엽게 땋은 머리와 무릎 기장의 단정하고 귀여운 원피스, 코로나 시기로 마스크 착용 의무로 눈가만 확인하니 성인이라고 판단하기 무리였다.

그녀는 동화 속 요정처럼 젊고 아름다움을 유지한 채 당황하는 나를 떨게 만들었다.

이런 땐, 빠른 사과가 최고다. 덧붙여 그녀의 어린 외모에 칭찬을 한다.

"어머어머. 학생인 줄 알았어요. 어쩜 이리 어려 보이세요. 관리 비법 좀 알려주세요."

너스레를 떨며 분위기를 바꾼다.


그들의 서류는 지역관리팀으로 요청을 해야 해서 팩스가 오고 가는데 시간이 조금 소요된다.

팩스가 도착하길 기다리며 대기 좌석에 앉아 그녀에게 아담한 가방에서 귀여운 소품들이 꺼내졌다.

핑크색 캐릭터가 그려진 휴대전화 케이스, 그 끝에 달린 반짝이는 방울, 뭔가 적는지 몽글몽글 털이 달린 볼펜과 아기자기한 수첩에 동글동글 글씨를 써 내려갔다.

그녀의 글씨체에 마법처럼 빠져들었다.

악필인 나로서는 동글 거리는 예쁜 글씨에 홀린 채 서류를 집다가 종이 끝에 살짝 베였다.

종이에 벤 상처는 깊지만 피는 거의 나지 않고 살 끝만 벌어졌다.

급히 휴지를 뽑으려는 찰나 귀여운 캐릭터 반창고가 불쑥 내 앞에 나타났다.

"이거 쓰세요. 그냥 두면 벌어져서 쓰라려요."

작고 신비스러운 그녀의 목소리로 반창고를 남기곤 다시 자리로 돌아가 예쁜 볼펜을 요정봉 흔드는 것처럼 다시 하던 일을 시작했다.


"어린아이들은 잠시도 눈을 떼기 힘드시죠?"

서류가 도착하기 전에 무료해 보이는 그녀에게 슬쩍 말을 건넸다. 질문을 하고 혹시 무례하거나 예민한 질문은 아니었을까 뒤늦게 생각이 났지만 그녀는 미소로 대답을 해주었다.

"부모님들은 안 됐어요."

안 됐다라니?

"아이들의 예쁜 재롱 다 보셔야 하는데 저희가 다 보는 건 아닌지, 저희는 좋은데 미안하더라고요."


유치원 경력증명서를 떼러 오는 민원 요청을 하는 그녀들은 비슷하다.

완벽하게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는 모습이다.

내가 보았던 그녀들은 그랬다.


아차.

얼마 전 유치원 경력증명서를 떼러 온 듬직하고 마음 고운 왕자도 만났다.

그녀들이 주로 요청하던 서류에 신청하는 그의 모습에 약간 당황했다.

유치원 나라에는 요정 공주, 요정 왕자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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