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해독 0698

[민원 이야기] 발급번호-021

by stamping ink

주변 지인 중 학생의 수학 과외를 하고 있는 분이 계셨다.

성인이 되었지만 학생들의 시험기간엔 같이 수험생이 되곤 했다.

아마도 지금 수능을 본다면 수학영역만큼은 만점은 충분히 해낼 능력자였다.

그는 한참 사춘기의 자기주장을 충실히 해내며 자신의 일에 대한 보람도 많이 느낀다.

아무리 적성에 맞는 직업을 가지고 있더라도 힘든 점은 없을지 궁금했다.

"애들 가르치면서 제일 힘든 게 뭐예요?"

"음... 채점?"

생각지 못한 대답이었다.

"애들이 마음이 급해서 0, 6, 9, 8을 자기네만 알아볼 수 있는 글씨로 쓰거든요. 영어 필기체 저리 가라며 급히 머릿속에 있는 걸 쏟아내니 채점할 때마다 중간 풀이과정을 자세히 보느라 그게 제일 신경 쓰여요."


"저... 죄송하지만 작성하신 생년월일이 0609입니까?"

서류를 요청하기 위한 신청서 용지에는 개인정보 기입란이 있다.

성명, 주민번호, 주소 등을 기재해야 하고 그 정보를 제공한다는 서명까지 받고 처리가 진행된다.

신청서는 수기로 작성하는데 개성 강한 필기체에 난관이 생길 때가 있다.

생년월일 칸에 0, 6, 8, 9는 모두 동그라미로만 보인다.

신분 확인을 위해 받아 둔 신분증의 답안을 보고 나면 무릎이 탁 쳐진다.

뚜렷한 규칙이 그 사이에서 보인다.

민원인이 무안하지 않도록 작은 글씨로 내가 알아볼 수 있게 적어두고 마무리하곤 한다.


퇴근 무렵, 잠시 업무협조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오니 옆자리 직원이 내게 도움의 표정을 지었다.

"오전에 오신 분이 신청했던 서류를 한 장 더 발급을 요청하셨는데 검색이 되지 않아요."

오전에 작성하고 떠난 신청서를 들고 어쩔 줄 몰라했다.

"아. 그분 글씨체가 알아보기 힘들어서 제가 다시 수기로 적어두었어요."

"아. 그렇지 않아도 응대 씨가 수기 작성한 것 보고 검색했는데 나오지 않네요."

직원의 자리로 가서 모니터에 같이 얼굴을 묻었다.

"신청인 현 00, "

"에에? 성이 현이였어요? 권인 줄 알았어요."

"하하하. 제가 신분증 자료를 급히 적느라 글씨가 엉망이었나 보네요. 생년월일 0609."

"에에? 생년월일이 0609예요? 0806인 줄 알았어요."

옆자리 직원의 말이 끝나자 다른 직원이 말을 했다.

"0609? 난 0908인 줄 알았는데 나도 틀렸네."

"난 0696으로 보여서 생년월일인데 조합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직원들은 서류를 돌려가며 암호풀이로 한바탕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아무도 알아볼 수 없는 비밀병기 글씨체는 보안으로는 최고의 능력이라 말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행위예술체인 나의 필체는 해독이 되지 않는 고비가 찾아오지만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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