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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 속 심리학] 오카쿠라 카쿠조

삶이라는 예술은 끊임없이 주변 환경에 맞춰가는 데 있다.

by 황준선

42살 한수진은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결혼한 지 15년이 된 그녀는 남편과 두 아이, 시부모와 함께 사는 집에서 살림과 육아를 도맡고 있습니다. 시부모님은 수진이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고 칭찬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에는 늘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뭘까? 난 왜 이 가족 안에서 늘 ‘알아서’ 움직여야 할까?”


수진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족들의 요구를 맞추는 데 익숙합니다. 남편의 선호 음식, 아이들의 학원 스케줄, 시부모님의 건강 관리까지. 작은 갈등이라도 생길 조짐이 보이면, 수진은 눈치를 보고 재빠르게 상황을 수습합니다. 덕분에 큰 싸움은 없었지만, 수진은 점점 더 지쳐갑니다.


어느 날 아침, 초등학교 3학년 딸 서연이가 수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이번 주말에 친구들 생일파티가 있는데, 아빠가 괜찮다고 하면 가도 돼?”


수진은 순간 당황합니다. 서연이가 왜 아빠의 허락을 먼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의문이 듭니다. ‘내가 항상 아빠 눈치를 보는 모습을 보여서 그런가?’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말합니다.


“당연히 가도 되지! 엄마가 도와줄게.”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딸이 벌써부터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신경 쓰입니다.


며칠 후, 수진은 집안의 점심 메뉴를 정하려 합니다. 평소라면 가족들의 선호를 하나씩 물어보고 의견을 조율했겠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먼저 떠올립니다. 오랜만에 그녀가 좋아하는 비빔국수를 하기로 마음먹습니다. 하지만 점심 자리에서 시어머니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말합니다.


“수진 씨, 국수도 좋은데 다음엔 국물 있는 게 어르신들 먹기 좋지 않을까?”

수진은 순간 움츠러들지만, 대답 대신 환하게 웃으며 말합니다.

“맞아요, 어머님. 다음에는 국물 있는 걸로 준비할게요. 그런데 오늘은 제가 비빔국수가 너무 먹고 싶어서요. 어머님도 한 번 드셔보세요!”


그날 오후, 시어머니가 조용히 다가와 이렇게 말합니다.


“수진 씨, 오늘 국수 맛있더라. 가끔은 네가 먹고 싶은 것도 해. 가족들이 다 네 덕분에 편한 건 사실이잖아.”

수진은 예상 밖의 말에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몇 주 뒤, 시댁의 가족 모임이 열립니다. 평소처럼 메뉴와 시간부터 모두 수진이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편과 시부모님이 원하는 스케줄이 어긋나기 시작했고, 모두가 수진을 쳐다보며 “어떻게 할 거냐”라고 묻습니다.


수진은 늘 하던 대로 조율에 나서려 했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행동하기로 결심합니다.
“이번에는 제가 생각한 대로 해볼게요. 다들 조금씩만 양보해 주세요.”

처음엔 모두가 당황하지만, 결국 수진이 정한 시간과 메뉴대로 모임이 진행됩니다. 예상과 달리 모두 만족했고, 수진 역시 평소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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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t of life lies in a constant readjustment to our surroundings."

– Kakuzo Okakura -
삶이라는 예술은 끊임없이 주변 환경에 맞춰가는 데 있다.


볼까요 말까요, 눈치?

눈치 보며 살지 말라고 하면서도, 정작 눈치 없는 사람은 늘 뒷담화의 대상이 됩니다. 도대체 어쩌라는 걸까요? 늘 그렇듯 세상에는 눈치를 보아야 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아도 되는 상황도 있습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합니다. 질문의 방향을 자신에게 돌려보는 것입니다.


“나는 얼마나 눈치를 보며 살고 싶은가?”


눈치 보는 게 왜 나빠요

눈치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눈치를 잘 보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의 기분 변화나 요구를 빨리 알아차리고,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 능력은 많은 사람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하죠. 수진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녀는 아내로서,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언제 무엇을 말해야 할지, 또 무엇을 말하지 말아야 할지 잘 알고 있습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눈치는 우호적인 성격(친절하고 배려심 많은 성격)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이렇게 우호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데 능숙하며, 갈등을 조율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강점이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이런 사람들은 가족의 필요를 빠르게 알아차리고 상황을 조율하기 때문에, 큰 다툼 없이 조화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진처럼요!


특히, 눈치를 본다는 것은 사회적 민감성(social sensitivity)이라는 능력을 잘 활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회적 민감성은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행동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이에 맞춰 적절히 행동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한 연구에서는 이런 민감성이 높은 사람들이 팀워크를 잘 이끌어내고, 직장이나 가정에서도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즉, 눈치를 본다는 건 주변 사람들과 더 잘 지내고, 모두가 만족스러운 관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이죠.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눈치를 보지 말라”거나 “자기주장을 하라”라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그 사람의 장점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고, 오히려 더 큰 혼란만을 발생시킬 뿐입니다.


내가 원하는 만큼만

눈치가 문제로 여겨지는 것은 과하거나, 반대로 너무 부족할 때입니다. 따라서 핵심은 눈치를 얼마나 보고 싶은지, 그리고 실제로 얼마나 보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수진이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사람들과 얼마나 조화롭게 지내고 싶은가?”

“내가 실제로 얼마나 눈치를 보고 있는가?”

이 질문에 각각 1에서 10까지 점수를 매겨보세요. 두 점수가 비슷하다면, 현재 당신의 눈치 수준은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것이 8점에서 맞든, 5점에서 맞든, 중요한 것은 자신의 욕구와 행동이 일치하는 것입니다.


눈치를 본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조화를 이루려는 행동입니다. 이는 때로 피곤하고 자기를 희생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올바르게 활용하면 누구보다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훌륭한 스킬이 됩니다. 눈치를 잘 보는 능력을 가진 수진이 이를 조절하고 균형을 맞춘다면, 자신의 장점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겁니다.




오카쿠라 카쿠조(岡倉 覚三, 1862-1913)는 일본의 사상가이자 예술가로, 일본 전통문화와 동양 철학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한 인물입니다. 일본미술학교 설립을 주도하며 일본의 미술 교육을 발전시켰고, 보스턴 미술관에서 동양미술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동양 예술의 가치를 서구에 소개했습니다. 그는 일본 전통과 서구화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동양 문화의 정체성을 재발견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의 대표작《차의 책》(The Book of Tea)은 동양 철학과 미학을 차 문화를 통해 서구에 알린 책으로,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읽히며 동양 사상의 깊이를 조명합니다. 또한《동양의 이상》(The Ideals of the East)에서는 동양의 철학과 예술 전통의 가치를 강조했습니다. 오카쿠라는 동서양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며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추구한 사상가로 평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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