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환섞인부산국밥색
우리 부산은 짧은 역사이지만 참 재미있는 스토리가 많다. 그중에 맛있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
우리 집 대표 외식 푸드에도 "국밥"이 포함되어 있다. 입이 짧은 아이들도 국밥은 입맛에 맛나보다.
'어린이 국밥'이라는 메뉴가 있어서 대접을 받는 느낌일지도.. 뚝배기에 돌솥밥이 유해물질검출로 금지되었다지만 그 뚝배기의 듬직함을 맛본 사람들은 참.. 그립다. 검은색으로 든든하게 따뜻함을 지켜주는 그릇은 용기보다는 국밥과 한 몸일지도,,
엄마가 된 지금 생각해 보니 어릴 적 복날이 가까워질 무렵,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
친정엄마는 돼지 사골을 사 와서 밤새도록 고운 후, 며칠을 밥 말아먹었던 것 같다. 때로는 피곤하셨는지 가스불 위에 올려놓은 돼지뼈가 끓고 있는 솥의 불을 끄지 않아 아침에는 하루종일 뿌연 연기와 함께 탄 냄비를 보며 뼈 탄 냄새로 온 집안이 독가스향으로 가득할 때도 있었다. 불이 안 나서 다행이라 생각하였다. 종종 그랬던 것 같지만 어린 나는 맛있게 먹는 것 밖에 할 일이 없는데, 그 일 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냥 올해 또 있는 연중행사이거니 생각하고 자책하는 엄마 앞에서 우리는 조용히 입 다물고 눈치를 봐야 했다. 올 해는 뼈가 타는 바람에 국이 조금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아쉬운 말을 들으며 평소보다 양이 작은 국밥을 조용히 먹었다. 그 좁은 부엌에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가족의 건강을 위해 혼자 바빴던 엄마의 음식 덕분일까. 내가 건강한 이유 중에 제일 큰 핵심이리라.
그때의 엄마표 국밥 색을 나는 기억한다. 반찬으로 나온 귀한 흰 소금의 색도..
예쁘게 송송 썰어놓은 눈물겨운 파의 그라데이션 색도...
집에서 만든 국밥의 특징은 뼈에 붙은 고기가 많을 때는 국에고기가 좀 들어있었지만, 하루 이틀이 지날수록 국물이 줄어들수록 다시 새 물을 부어 또 끓이고 두세 번 재탕하고 제일 마지막에는 맑아진 국물과 파만 볼 수 있었다. 그 속에 숨은 흰쌀밥과 함께.
옆집 이모들이 놀러 와서 함께 한 그릇 할 때면, 집밥의 중요성과 함께 인정받고 싶은 한마디 속에,
밖에서 사 먹는 국밥에는 깊게 우린 걸 티 내려고 '프리마'를 넣어 색을 낸다고 말씀하시던 옛 아줌마들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귀에 맴돈다. 나는 지금 그때의 아줌마들보다 나이가 더 많은 아줌마가 되었다.
하지만 밤새워 돼지 뼈를 고우는 수고로움을 보고 자랐지만 절 때 하지 않는다. 세월이 변했다. 그냥 시도하지도 못하겠고 솔직히 자신이 없다. 나는 지금도 먹는 것만 잘한다. 그래서 경제를 살려야하니 국밥은 사먹는 것이라고 말하며 나를 합리화 시킨다.
국밥을 접한 지 35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왜 국밥이 생겼는지, 무슨 연유로 이 음식이 탄생했는지 아무도 얘기해 주지 않았던 것 같다. 언젠가 들었었더라도 관심이 없었을 시기였나보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더운 날, 추운 날 건강보양식으로 먹는 것이기에 꼭 먹어야 한다는 말씀만 철떡 같이 잘 들었던 시대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머나먼 저 역사 속 음식이 아닌가. 역사는 어렵지만 이제는 조금씩 알아가고 싶다.
너무 어려서 알 필요가 없었던 것일까. 모르지만 그냥 체득된음식일까. 조만간 친정 엄마에게 인터뷰를 해봐야겠다.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아이 셋을 키웠는지 그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어디서 돼지 사골을 샀고, 그 솥은 어디서 장만했는지, 국밥 추억 이야기에 새삼 존경심이 다시금 솟아오른다. 뿌연 돼지국밥 국물 색과 함께,,,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전국에서 모여든 피난민들이 먹었던 음식이라는 것을, 돼지의 유통과정, 족발도 대표음식이 된 사연 등 얼마전 독서회에서 '부산'에 관한 책을 읽으며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이제와서 알게 된 것과 왜 이제 알았지라는 의문과 아쉬움의 만감이 교차하였다.
드디어, 2009년 부산광역시는 부산향토음식의 하나로 돼지국밥을 지정하였다. 타향의 설움을 달래고 부산 서민에게 고달픈 삶의 애환을 풀어주는 힐링푸드, 지금은 헬스푸드, 컬처 푸드로 자리 잡아 너도 나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이렇게 맛있는 국밥이 6.25 시절, 페스트 푸드였다고 하면 믿겠는가? 정식 오찬을 차려 먹기는 시간이 많이 걸리니 그냥 국에 밥을 말았던 것, 후루룩~마시고 다시 일을 해야 하니까.
국밥은 시장 상인들과 육체 노동자들의 패스트푸드였다. 살림살이가 넉넉지 않아 늘 배가 고팠던 시절, 강냉이, 감자, 고구마라도 감사한 시절에 고기육수가 웬 말이더냐. 일본 군인들과 미군 군인 숙소에서 먹고 남은 돼지 뼈를 누군가 주워다가 끓였더니 귀한 맛이 우러나온 것이 시작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후 1950년 9월 지금의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동 일대에는 '하야리아 부대'인 주한미군 부산기지사령부가 설치되었고, 주변에는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각종 부산물과 재료를 이용한 국밥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 시절 살아보지 않아 들리는 얘기이지만 마음 한편이 먹먹해진다. 고전 이야기에 그 유명한 '자린고비'이야기도 그냥 전해져내려 오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분명 그 안에는 해석하기 나름의 여러 가지 교훈이 들어 있다.
부산에서 유명한 곰장어구이, 구포국수, 부산밀면, 냉채족발, 비빔당면 등 다양한 지역에서 믹싱 되어 부산에 정주인구가 되어버린 유학파들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창조해 낸 음식들이다. 결국 부산은 창조의 도시가 아닌가. 역사 속에서도 창의성을 찾을 수가 있고, 문화도 계속해서 진화하고 발전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늘 새롭다. 그래서 '부산답다'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초등학교 때 잠시 부산에 살다가 서울로 이사를 간 친구는 원조 부산 돼지국밥이 먹고 싶어서 부산여행은 온다. 그만큼 개개인 누군가에게 큰 추억으로 자리 잡았을 테지. 부산이 임시 수도였을 중요한 시기에 사회적으로 탄생한 새로운 음식이라도 향토음식 아닌가. 우리의 조상들이 만들었고 지켜낸 음식이니 말이다.
시간이 지나 국밥집이 골목골목 여기저기 생기면서 대중화가 되었다. 부산만 해도 692곳, 부산 면적으로 나누면 1.1km당 국밥집이 있다는 것이다. 햄버거보다 맛과 영양이 만점이라 학교 급식에도 떡~하니 자리 잡았다. 타 지역 학생들이 보면 부산학생들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돼지국밥은 열량이 높지 않으면서 수육의 단백질, 육수의 칼슘, 밥의 탄수화물, 반찬의 비타민과 무기질까지 5가지 기초심품군을 고루 갖춘 영양균형식이다" 돼지국밥의 영양소 분석 연구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문숙희 경남정보대 식품영양과 교수에 따르면 특히 돼지고기는 비타민 B1 함량이 소고기의 10배 정도 많다. 비타민 B1은 피로감 해소와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상차림의 궁합도 훌륭하다. 비타민 B1은 마늘과 부추, 양파의 매운맛 성분인 알리신과 결합하면 체내 흡수가 더 잘되고 활력을 높인다. 새우젓에는 단백질 분해효소인 프로테아제와 지방분해효소 리파아제가 많아 돼지고기의 소화를 돕는다. 고 하였다.
여기저기 내가 원조라고 외치지만, 돼지국밥의 원조는 맑은 국물이다.
뿌연 국물이 된 것은 돼지 뼈에 붙은 고기가 익으면서 불어서분질러져 생긴 불순물들이 물어 녹아 나타난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지레 짐작해 본다. 그러면 오히려 맑은 것보다 뿌연 것이 더 진국처럼 보일 테니까.
부산이 존재하는 이유, 우리가 지금 존재하는 이유,
역사를 모르고 먹어도, 역사를 알고 먹어도 맛있는데, 배고픔에 품위유지가 필요 있을까.
그 맑은 국물에 고기도 숨었고, 양념도 숨었고, 옛 조상님들의 눈물도 숨었는데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배고픔은 아무리 돈이 많고 명예가 높은 부자라도 숨길 수 없는 본능이다.
그 지독한 배고픔을 부산 사람들은 돼지국밥에서 지친 하루를 위로받고 에너지를 얻었다.
그 큰 가치는 부산을 지켜주는 스토리가 되고 있다. 무거운 이야기이지만 맛있게 먹으면서 또 다른 의미의 고마움을 느끼고 앞으로도 계속 전달해야 하지 않을까. 더 자세하고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져 내려오지만 아래 링크를 참조해 주시길, 또 다른 많은 정보 검색으로 공부해보시길 바란다.
부산사람이 아니라면 부산으로 여행 와서 부산 돼지국밥을 꼭 먹어보시길 추천한다.
나의 경험으로 돼지 국밥색을 표현한다면
국밥색은 배경색, 국밥을 빛내는 송송 썰어 넣은 파의 색, 형편이 조금 더 되면 부추!!
국밥을 알고 있다면 물론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도 있다.
관점에 따라 기억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색이니까.
하지만 나는 옛 조상들의 외로움, 비움, 부족함을 담아 내려 노력하였다.
그래서 먼가 나와 다른 국밥이미지가 떠올랐다면 그건 내 전략의 성공이니 나는 뒤에서 미소 짓는다.
오늘 하루도 겸손하게,
모든 걸 다 보여주기보다 국밥에 감춰진 애환의 추억들, 넉넉한 인심, 든든한 위로,
한 숟갈 저으면 발견하는 고기, 소면,
입 맛에 맞게 새우젓, 부추, 양파, 마늘, 땡고추, 후추, 소금 등의 양념을
어느 시기에 적재적소 넣어야 제맛이 날까. 고민한다. 실행한다.
다들 바빠서 혼밥을 하더라도 외로운 스푼으로 또다시 힘을 내는
눈물 찔끔 억울함을 시원하게 들이켜고 다시 씩씩하게 나아가자!
2024년 7월의 마지막 날이다.
벌써 7개월이 지났고, 5개월이나 남았다. 5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진국처럼 보이기 위해 나는 스스로 어떤걸 우려내야할지 더운 여름이 지나간다.
열심히 뜨거운 육수를 흘리며 삶아져야하는 돼지 뼈를 생각하며
내 열정의 육수와 닮았다고 생각하면 조금 더 힘이 날까.
더 시간을 들여서 더 진하게 우러나도록 정성껏,
다시 힘찬 8월을 시작해 보는 걸로 약속!!
오늘 저녁은 시원한 돼지국밥 한그릇입니다^^
국밥 한그릇에 나를 지켜내는 의지와 함께!!
오늘은 어떤 양념을 준비하고 있나요?
언제 그 양념을 넣어야 제 맛이 날지 한번 더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걸로...
그럼, 오늘의 나는 무슨 색인가요?
*부산 돼지국밥을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부산일보 부산돼지국밥 로드>>http://porksoup.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