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과속이다른거봉색
'포도'라고 하면 친정엄마가 나를 임신했을 때 가장 즐겨 먹었던 과일이라고 한다. 새벽에 크나큰 포도를 혼자 다 드셨다고,, 입맛이 없을 때도 포도를 먹고, 아빠는 매일 제일 먹음직스럽고 값비싼 포도를 사 오기 바빴다고 하셨다. 40년 전에도 고급과일 한 송이가 만원이 넘었다며,, 그래서 나도 포도를 좋아하나 보다.
내 이가 빨리 썩는 이라고 했더니,, 달달한 포도를 많이 먹어서 그렇다며 또 자책을 하신다.
친정은 주택인데 어릴 적부터 30년 넘게 살던 곳이다. 작은 화단이 있고, 사계절 다양한 식물들을 재배하던 작은 농장이기도 하다. 언젠가 포도나무를 심어서 자라는 것도 지켜보았었는데, 뜨거운 햇살에 싱그러운 녹색 잎과 열매가 정말 풍성하게 기분 좋은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 편에 자리 잡고 있다. 호스로 물을 뿌려줄 때면 가끔 무지개가 등장하여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요즘은 자연현상들을 자연스럽게 접하기가 참 어렵다. 환경도 많이 바뀌었고 편하고 쉽게 살려고 하다 보니 이런 소중함을 후대에 전달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도 빨리 귀농을 하는 이유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달라진 환경에서 '디지털 트윈' 기술 등 새로운 방식으로 지혜롭게 농사를 짓고 교육을 하는 연구도 계속되고 있으니 아예 없어지진 않고 진화되어 움직일 것이다.
남편은 과일을 잘 먹지 않는다. 아직 젊지만 습관적인 부분도 있을 테고 당뇨가 걱정되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강요하지 않는다. 다행히 아이들이 먹어야 하는 걸 알기에 집에 올 때면 늘 빈손으로 오지 않는다. 꼭 우리 친정아빠를 닮았다. 아빠들은 다 그런 건가. 연두색 샤인머스캣을 며칠 사 오다가 보랏빛 거봉을 사 오니 딸아이가 또 궁금증을 가진다.
"거봉은 왜 보라색이지?"
"와인은 포도로 만드는 거지? 포도랑 색이 조금 다른데?"
"신기해~ 포도알은 투명한 연두색이고."
"엄마 얼마 전에 마신 '포도봉봉' 음료수도 거봉의 봉인가?"
"음~ 입에 쏙~ 과즙이 팡팡 터져서 너무 맛이 좋아~"
하며, 말이 참 많다.
먼가 시넙스를 연결시켜 무언가를 계속 찾는 느낌이다. 대화가 좀 달라짐을 느낀다.
그렇다. 포도의 종류는 참 많다. 내가 아는 것만 해도 5종류는 넘는 것 같다. 생각해 보니 건포도도 있다^^
색으로 구분해 보면 청포도, 샤인머스캣, 적포도, 핑크 포도, 검정 포도 등 녹색부터 마젠타를 거쳐 보라색까지, 보라색에서도 푸른 보라, 붉은보라로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신선한 과일뿐 아니라 주스, 와인, 젤리, 건포도, 잼, 통조림 등 다양하게 가공되어 먹을 수 있다.
포도의 종류에 따라 와인의 이름이 정해진다.
거봉은 방울방울 먹기 쉽고 특히 씨가 없어서 더 좋다. 과일은 거의 겉과 속이 다르다. 와인은 포도 종의 이름을 많이 따온다. 화이트 와인은 톰슨 시들리스 (Thompson Seedless), 샤도네이 (Chardonnay)의 이름이 많이 사용된다. 적포도주는 카베르네 소비뇽 (Cabernet Sauvignon), 메를로 (Merlot), 레드 글로브 (Red Globe)의 이름이 많이 사용된다. 와인 소믈리에는 아니지만 그 분위기는 즐기는 편이다. 전 세계 와인투어 프로그램도 해보고 싶다. 프랑스 상파뉴(Champagne), 보르도(Bordeaux), 부르고뉴(Burgundy)가 유명한 지하 동굴이다. 특히 "버건디"라고 불리는 깊은 빨간색은 붉은 밤색 와인빛의 보르도 색상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보르도지역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자동차에도 넥타이에도 다양한 패션에 적용되어 있는걸 이미 많이 보았을 것이다.
국내는 경상북도 청도 와인터널이 유명하다. 열차가 다니던 터널을 와인 숙성 및 보관 공간으로 개조하여 더 유명해졌다. 청도산 감와인과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이 있다. 뜨거운 여름 와인동굴로 여행지를 선택하는 것도 좋겠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와인색에 대해서도 글을 써봐야겠다.
포도의 겉과 속이 다른 색을 띠는 이유는 색소의 분포와 과육의 구조 때문이다. 얼마 전에도 언급한 블루베리와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안토시아닌의 색소가 포도의 색을 결정하는데 자주색, 붉은색, 남보라색, 붉은 보라색 등으로 표현되고, 초록색 포도도 비슷한 메커니즘으로 색을 띠지만, 안토시아닌 대신 클로로필이라는 초록색 색소가 더 크게 작용한 덕분이다. 그런데 포도의 속은 과육으로 인해 물과 당분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색소의 농도가 훨씬 낮고 연녹색이 투명해 보이는 이유이다. 겉과 속이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겉은 시커멓지만 속은 달콤하다.
껍질의 색소는 자외선 차단이나 포도알이 자라면서 해충으로부터 보호하는데 도움을 준다.
자연이 선택한 진화론 아닐까.
보라색은 대부분 예술가, 신비로움, 4차원,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등의 해석을 많이 한다.
어찌 보면 만들어지는 색채계에서도 빨강과 파랑을 더하면 보라색이 되는 관계,
녹색의 마주 보는 보라색의 보색 관계,
다른지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필요한 관계로 보인다.
그래서일까. 포도는 색뿐만 아니라 여러 문화적 맥락에서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포도는 고대부터 풍요와 번영을 상징하는 과일로 세계적으로 와인이 변환되는 과정에서 자연의 풍요로움을 깊이 인정한다. 성경과 종교에서도 지혜와 진리의 상징으로 예수님이 포도나무에 비유된 이야기, 신과 연결된 은유적인 표현이 많다. 세례를 받을 때에도 포도주를 한 모금한다고 표현되어 있다. 기쁨은 나누는 특별한 행사에 빠질 수 없는 와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익어가는 과정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성장, 성숙, 발전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포도는 역사적인 그림에도 많이 들어간다. 정물화의 소재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옛 그림에서도 많이 등장한다.
다양한 소재가 되긴 했지만 <신사임당과 포도> 이야기는 엄마가 되어 아이들에게 위인전을 읽어줬을 때 다시 한번 감동의 물결이 출렁이게 되었다. 5만 원 권에 등장한 위대한 여인으로 잔칫집에서 국을 나르는 여인의 실수로 치마에 얼룩진 국물을 감추려고 한 위기모면의 붓터치에 포도 알알이 되어 작품으로 승화시켜 비단 치마보다 훨씬 비싼 값에 팔았다는 설화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 지혜로 아들인 율곡 이이는 오천 원 권에 등장하여 많은 이들이 모자(母子)를 기억하고 있는데 9번에 과거에 급재한 천재로 기억하고 있다.
부모가 되어 느끼고 있지만, 어떤 지혜로 살아야 자식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은 평생의 숙제이다. 그렇게 신사임당의 묵포도를 보니 5천 원 5만 원권과 비슷한 색이구나. 아.. 또 다른 번개!
지혜를 위해 포토알처럼 참고 또 참고 이해하고 반성하고 노력하고를 끊임없이 반복해야겠지. 참을 忍忍忍...
포도는 많은 그림의 소재로 있지만 특히 내가 본 그림 중에 재미있는 발견!
빈센트 반 고흐의 <붉은 포도밭>과 <푸른 포도원>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한국에서도 전시로 홍보를 해주어 많이 알려져 있는 예술가이다. 유명한 그림도 많지만 이 포도밭 그림은 잘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붉은 포도밭> 그림은 반고흐가 살아생전에 유일하게 판매된 그림이다. 강과 가을들판에 비치는 저녁 태양의 따뜻함을 반짝이는 빛으로 그의 매력적인 붓터치로 잘 묘사한 작품이다. 고갱이 아를에 도착하고 반 고흐와 같이 이사한 지 2주 후에 그렸는데, 함께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졌음이 전달된다. 또한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 그림을 조금은 과장되게 표현함으로써 가을의 수확과 노력의 결실을 거침없이 표현한 작품이라고도 해석된다.
푸른 포도원 작품은 코발트 빛의 짙은 청색 하늘 아래의 평화로운 포도밭 풍경을 그렸다. 아를의 몽마르주 사원 근처에서 농부들이 일하는 모습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빨간 양산을 쓰고 아름다운 여성들이 나들이하는 모습도 보인다. 여유로운 사람들의 모습, 결실의 축복을 누리는 기쁨의 느낌 같다. 고흐는 이 포도원을 보고 테오에게 편지도 썼다. "적어도 1Kg은 무게가 나갈 듯 보이는 포도송이들이 수없이 많고 올해의 포도 농사는 훌륭하다고..."
"농부의 삶은 매우 어렵지만 동시에 매우 아름답다. 진정으로 자신의 인생을 농부의 삶 속에 숨겨진 것들을 찾아 시로 표현하는 일에 헌신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라고 했던 고흐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농부를 지켜보았지만 본인도 농부처럼 열심히 살며 농부를 찬양하는 그림을 많이 그려냈다.
같은 '포도'를 보고도 참 다양한 생각과 추억을 기억할 것이다. 어쩌다보니 거봉이 포도가 되었다.
포도 - 가족 - 겉과 속 - 그림의 소재 - 화법 - 신사임당과 율곡이이 - 5만 원과 5천 원권의 색 - 빈센트 반 고흐의 붉고 푸른 포도밭 - 여우와 포도밭 - 포도밭에 숨겨진 보물 - 내가 느끼는 포도의 가치로 무궁무진한 꼬리에 꼬리물기가 끝이 없다.
<여우와 포도밭> 이야기는 유혹에 넘어간 여우가 포도밭에서 포도를 먹고 배가 불러 빠져나오지 못한 여우의 후회로 한줄의 요약으로 정리할 수 있다. 우리의 삶에도 수많은 유혹이존재한다. 특히 요즘엔 스마트 폰의 유혹에 넘어가지 못한다. 도파민의 행복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는 현실에서 스스로에게 과감해져야 한다. 참된 활용법을 익혀서 우리 아이들도 제대로 된 문화로 지혜롭게 살아갔으면 하는 것이 바람인데도 불구하고 나도 유혹을 뿌리치지 못할 때가 있다. 반성 해야지.
<포도밭에 숨겨진 보물> 이야기는 아버지가 아들 셋에게 남긴 유언으로 세 아들이 포도밭을 일구며 흘린 땀과 꾸준한 노력으로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이다.
초심을 잃지 않는 달콤함을 가슴깊이 새겨 천천히 지혜로움을 실천하고
나 다운 포도빛의 철학으로 물들이며 오늘을 마무리하면 어떨까.
언젠가는 '포도'를 먹으며 대화의 소재거리를 이끌어보고,
아이에게 은근슬쩍 '포도 이야기'의 책을 읽어주며 다양한 소재거리를 먹거리 삼아 새로운 대화를 시도해 보는 것도 참 좋은 의식적인 활동이다.
다양한 지혜이야기로 마음까지 당으로 가득 찼다.
마음의 당뇨가 걱정되긴 하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어떻게 전달느냐에 따라 내 당뇨는 줄어들 것이다^^
편한 유혹에서 벗어나 오늘 하루만큼은 조금이라도 의식적인 내가 되길,
포도 이야기에 나의 기억을 회상하는 내가 되길,
파리 올림픽 폐막 기념으로 나의 유혹도 폐막하길,
오늘은 와인으로 분위기를 한번 잡아볼까,
오늘, 나는 무슨 색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