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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Aug 05. 2023

도서관의 신비

| 아주 오래전 일인데, 대학 실기를 준비하러 동두천에 있는 엄마의 아주 먼 친척분 댁에 일주일 정도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서울에 있는 학교 실기를 준비하러 왔지만 서울에 사는 친척들이 하나도 없어서 그랬었던 것 같다.  막상 도착하고 보니 내 고향보다 더 시골 같은 기찻길과 논밭 가득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곳이 좋았다. 따지자면 거의 타인과 다름없는 촌수인 내게 기꺼이 내어주신 작은 방은 바닥이 뜨거울 정도로 훈훈했고, 서울로 갔다는 언니(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다)의 좌식 책상 위에는 재미있는 어른들의(?) 소설책이 가득했다. 나는 밤마다 이불 위에 엎드려 거기 있는 책들을 하나씩 꺼내보았다. 집에서 한 20분쯤 걸어가면 아주 오래된 마을 도서관이 있었고 나는 거기서 혼자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거의 사람이 없던 빈 열람실. 창가 자리에 앉아서 지는 노을을 볼 때,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었다. 구수한 비료 냄새와 샤워하기에는 지나치게 차가운 물, 찐 감자와 감자전의 맛, 그리고 그때 나를 반겨주었던 나와 아주 옅은 피로 섞인 고마운 분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그때 그 도서관도 함께 떠오른다. 애석하게 나는 그 해 입시에 실패했다.


| 도서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다들 무언가를 읽거나 쓰고 있다. 보고 있다. 말 한마디 하는 것도 조심스럽고 약간의 기침 소리에도 민감해지는 사람들의 눈초리에 평소보다는 조금 더 느리고 조용히 움직이게 된다. 집에서 읽히지 않던 책도 도서관에서는 가능하다. 가만히 의자 등에 기대어 앉아 있는 것도 도서관에서는 묵상의 시간이 된다. 멍 때리기에 가장 안락한 장소가 있다면 그건 바로 도서관일 것이다.


| 대부분의 도서관은 우리 집과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무조건 '도세권'으로 이사를 가리라 마음먹은 시절도 있었다. 카페 작업이 일상화되면서 그런 마음을 잊고 있었다. 다시 찾아간 도서관에서 잊고 있던 것들을 다시 찾았다. 이를테면 정적 아닌 정적. 우연히 내 눈에 띄게 된 책들. 거기서 얻은 문장들. 게다가 모든 것이 무료이다. 물도 책도 공간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눈치 게임은 카페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니 패스.


| 소속이 없거나 일이 없을 때, 가장 먼저 찾게 되는 장소는 도서관이었다. 넓은 국립 도서관에 가면 어쩌다 가끔 나와 비슷한 처지의 지인을 만날 때도 있었다. 그때 서로를 보며 우리는 암묵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는 했다. 어색한 웃음과 안부. 그리고 약간 더 여유 있는 쪽이 밥을 사기도 하고. 그래서 이제는 되도록 동네와 가까운 도서관을 찾는다. 예전보다 도서관이 많아져서 다행이다. 이제 다들 안녕하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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