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으로 의심되지만, 일단 약 복용 후에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으면 독감검사를 하는 것으로 진단받고 주사를 맞았다. 분명 며칠 전부터 몸이 보내온 신호가 있었는데, 미리 병원에 다녀오면 될 것을 기어이 '진짜 나 아픈 거 맞는구나' 싶을 때까지 기다리는 미련함이라니. 언제쯤 스스로를 고문하는 버릇을 고칠 수 있을지.
블로그도 써야 하고, 유튜브 편집도 마무리해야 하고, <모퉁이 빵집>을 인디자인으로 편집해 주문한 종이책 샘플도 체크해야 하고, 인쇄소, 배본사도 알아봐야 하고, 다음 전자책 편집도 시작해야 하고...
겨우 이틀 정도 쉰 것 같은데 해야 할 일들이 내 뒤를 바짝 뒤쫓아 달려드는 기분이 들었다.
연신 기침을 해대면서도 침대와 책상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정상인 같지가 않다며 농을 던졌지만, 내가 봐도 나는 진심 정상은 아닌 것 같았다.
1인 출판사.
한바탕 앓고 나서야 말 그대로 1인이 일당백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현실로 깨달았다. 마음은 분주한데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그것만큼 답답한 일도 없었다. 내게 지금 중요한 건 다른 무엇보다 체력을 기르는 일이란 걸 몸소 알게 됐다.
병원 주사 한 방에 며칠간 스스로를 괴롭히던 오한과 근육통이 슬슬 사그라들자 나는 오랫동안 내 책장에 있던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일 때문이 아니라 쉬고 싶어서였다. 달리다 멈출 때마다 한 번씩 꺼내보게 되는 책,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고 싶었다.
이 책이 쓰인 것은 2007년 즈음이다. 그러니 벌써 17년 전의 이야기인 셈.
표지에 선명한 하루키의 마라톤 사진을 볼 때마다 종종 생각하게 된다.
작가는 아직도 달리고 있을까?
거리는 단축되었어도 여전할 거란 생각을 했다.
어떤 일을 시작하고, 지속하는 데 있어서 '무아'의 상태가 되려면 단순한 열정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는 마라톤을 할 때 '달려가면서 그저 달리려 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일 일정한 거리를 달리면서 매일 일정한 분량의 소설을 썼다. 언젠가 밑줄 그은 그 문장은 지금 시점의 내게 '매일 내가 정한 시간과 분량에 맞게 할 일을 차근차근해나가면 될 뿐'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어떤 바람이나 터부도 없이. 한꺼번에 모든 일을 다 차리 해내려고 하지 말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그저 해나가면 된다고.
'달리는 소설가'라는 별칭까지 가진 무라카미 하루키가 마라톤을 계속하고, 소설을 계속 쓸 수 있었던 동인은 그저 그걸 지속했기 때문이었다. 거장이라고 해서 큰 비법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도 사람 아닌가.
말이 쉽지. 지속한다는 건 끈기이고, 노력이기도 하다. 억지로 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오랜 세월, 하나의 일이 관성이 되어가기까지 지속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 일은 그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스스로 마음이 움직여 몸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을 체화하기까지 들인 시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중에서
책 속에서 작가는 50세 후반까지도 마라톤을 지속하고 있었다. 나 역시 지금의 일을 오래도록 지속하려면 체력부터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적어도 체력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몸이 좀 회복되면, 다음 책을 만들기 위해 한동안 중단했던 운동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