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날벌레> 1회
배우는 5년 만에 다시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무대 위로 올라서자마자 장전되어 있던 화려한 조명이 그녀의 온몸에 화살촉같이 내리 꽂혔다. 뼈를 깎는 수술로 만들어낸 작은 얼굴과 앙상하고 긴 팔다리, 소녀같이 빈약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에서 갑자기 큰 골반으로 이어진 배우의 몸은 흰 피부색에 가까운 상아색 인조가죽 바디 슈트로 목부터 발목까지 팽팽하게 감싸여 있었고, 신고 있는 힐조차 같은 색이었다. 배우는 마치 군중 앞에 선 벌거벗은 여왕이 된 기분이었다.
저게 입은 거야, 벗은 거야?
나 기절할 뻔했잖아.
근데 누구야?
리나?
정말 '리나'가 맞아?
얼마나 고친 거야. 완전히 작정했네.
배우는 사람들의 반응을 예상한 듯 낮은 심호흡 후 힘껏 골반을 꺾어 몸 선이 더욱 돋보일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순간, 기다렸다는 듯 폭죽 같은 플래시들이 다시 배우를 향해 마구 쏟아졌다.
바깥은 아직 불볕더위였고 조명의 열기까지 더해져 슈트 속 피부가 녹아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배우는 있는 힘껏 입꼬리를 끌어올려 밀랍 인형 같은 딱딱한 미소를 지었다.
붉은 입술 사이로 건반처럼 가지런히 재단된 새하얀 치아가 드러났다. 입가에서 시작된 미세한 경련은 볼에서 귀까지 번져 얼굴 전체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배우는 불안해졌다. 시작된 떨림이 얼마나 더 커질지, 이번에는 멈출 수 있을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때, 배우의 뒤쪽에 있던 한 무리가 돌아봐달라고 소리쳤다. 긴장감에 숨을 참고 겨우 돌아선 그녀는 아찔해져 중심을 잃을 뻔했다.
곤충의 눈처럼 초점 없는 새까만 렌즈들이 자신만을 쏘아보고 있었다. 배우는 멈춘 숨을 내뱉을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이대로 숨이 멎는다고 해도 여기서는 누구도 자신을 구해줄 수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이미 알았다. 배우는 희미하고 낮은 숨을 내뱉으며 카메라들 너머 한 벽으로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 '그것'이 있었다.
개미 떼처럼 새까맣게 몰려든 사람들 뒤로 날아든 정체 모를 날벌레 한 마리.
5cm 남짓한 크기의 그것은 양옆으로 완만하게 펼쳐진 4장의 가냘픈 날개 덕분에 얼핏 나비나 나방처럼 보였고, 통통한 몸집은 매미 혹은 파리를 닮아 보이기도 했다. 빛에 따라 연녹색으로도, 연보랏빛으로도 보이는 여린 날개는 부채질하듯 상하로 유유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배우에게 발견된 순간부터 어느 수집가의 액자 속에 진열된 곤충 표본처럼 그 자리에 딱 붙어있었다. 한 치수 작은 힐에 억지로 구겨 넣은 발끝은 몇 초만 더 버텨도 중심을 잃고 무너질 것 같았지만, 그것에게 집중하면서부터 안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새 배우는 이곳을 당장 벗어날 수 없는 자신처럼 한 자리에 붙박인 그것을 보며 위안을 얻고 있었다.
저 아름다운 걸 아무도 못 본 거야. 나만 본 거라고.
배우는 묘한 우월감마저 느꼈다. 비로소 굳어 있던 얼굴 위로 이전 그녀를 빛나게 했던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에게 몰두한 강렬하고 당당한 눈빛 때문에 그 미소는 더욱 매혹적으로 보였다. 순간, 다시 한번 살충제 같은 불빛들이 배우를 향해 마구 분사되었다.
배우는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그녀를 에워싸던 사정없던 빛은 그녀 뒤에 올라온 또 다른 배우를 향해 곧장 방향을 바꿨다. 어둠 속에 들어온 배우는 '그것'이 아직 거기 그대로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긴장이 풀리자, 구두 속에 갇힌 발이 찢어질 듯 고통스러워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힘이 실린 매니저의 손이 배우의 가느다란 팔을 꽉 움켜쥐었다. 이 손을 뿌리친다면 그대로 맥없이 주저앉을지도 몰랐다. 아까부터 온몸에 퍼진 흥분에 가까운 떨림도 여전히 남아있었다. 어차피 지금 배우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몸에 걸친 어느 것 하나, 그녀의 것은 없었으니까. 어쩌면 그녀 자신조차도.
이미지 출처 - 핀터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