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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좋아요'

1장 : 계절보고서

by 양율

[겨울에 작성한 글입니다.]




험한 꿈을 꾸다 잠에 깬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신다. 휴대폰의 시간은 7시. 꿈의 여운은 쉽게 사라지기에 칫솔을 입에 물고 밤새의 황당한 여행을 휴대폰에 메모해 본다.


샤워하고 옷을 입는다. 간밤 꿈의 잔열이 남아 있는 집을 떠나 문을 닫는다. 겨울바람을 얼굴에 맞고 나니 그제야 내가 제자리에 와있나 안도한다.


1호선을 탄다.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숙여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쌀알 머금은 나락처럼 머리는 중력에 이끌려 땅을 향해 있다.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승객들 어깨가 몸이 들썩인다. 나는 가방을 다시 멘다.


꿈은 대체로 지리멸렬하여 진지하게 여겨지지 않고 쉽게 폐기되지만 유독 헛웃음을 짓게 하는 꿈들이 있다. 그날의 꿈은 이랬다.


내가 어느 날 SNS를 열었는데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미지의 계정에서 내 얼굴 사진, 일상이 지속해서 업로드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간 술집, 카페, 내가 작업 중인 모습들도. 그 계정은 나를 행사하며 내 일거수일투족을 세상에 공유하고 있었다.


곧 그 계정은 성실한 업로드로 많은 인기를 얻게 되어 나를 알아보는 사람까지 생기게 되었다. 그러다 난 어느 순간 그 계정의 나처럼 행동하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 매 분 매 초 그 계정을 체크해 난 내가 아닌 날 흉내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춤추면 나도 모래밭에서 춤췄고, 그가 노래하면 나도 따라 불렀다. 그러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난 점점 그 가짜에 동화되었고 그 가짜가 엄하게 날 조종하게 된 꼴이었다.


어느 날 그 계정 주인에게 내게 연락이 왔다. 그는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난 그와 카페에 만나게 되었는데 모자를 벗은 그를 본 순간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영락없이 나였다. 나와 복제인간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가 나였을까. 내가 그였을까. 그는 내게 입을 열었고 그때 알람이 울렸다.


그런 시시껄렁한 꿈이었다. 난 다시 고개를 돌려보았다. 거의 모든 승객들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단 한 명만이 멍하니 전철의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도 지난밤의 꿈을 곱씹어보고 있는 것이었을까.


전철에 내리기까지 난 휴대폰만을 바라보았다. 이 작은 기계가 나일까, 화면 속의 내 프로필이 나일까. 뒤숭숭한 생각들만 한가득 쏟아진다. 아직 꿈을 깨지 못하고 있는 걸까.


난 중학교 때부터 휴대폰을 썼다. 그때는 스마트폰이라는 개념조차 없을 시절이었다. 세상에 나온 최초의 스마트폰은 내가 대학생 때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난 문자, 카카오톡의 활용에 미숙한 편이었다. 항상 내게 연락이 적다며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면 나는 짧게 실은 마음으로 어떠한 정성을 전할 수 있을지 곧잘 시무룩해지는 것이었다.


다만 난 유독 손 편지를 자주 쓰던 편이었는데 일종의 적막한 시절에 대한 동경이 있은 까닭이었다. 고흐나 니체 같은 작가들의 서한을 탐독하면서 그들의 사상 속 속사정과 감정을 훔쳐보는 묘한 기쁨이 있었다. 이는 호롱불, 카바이드램프 혹은 창문으로 뻗어 나오는 조각달의 이지러진 빛깔 아래 잉크 묻힌 깃펜으로 정성을 다해 이런저런 진심을 내어 놓는 글과 편지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졌다.


난 그 시절의 우체부들을 사랑했다. 폰트보단 꾹꾹 눌러쓴 그리움의 필체를 배달한 자들. 뜨거운 체온을 고스란히 제 자리에 옮겨준 그들. 사랑의 비참함, 질투와 기다리는 긴 밤의 시간을 정성스레 금실로 이어준 자들.


지금 세상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난 한 번씩 이 세상의 모든 휴대폰이 일시에 사라지면 좋겠다는 상상을 한다. 모든 문자 메시지, 카카오톡 메시지가 정성스러운 편지 종이들이 차곡차곡 쌓인 편지 상자로 대체되는 날들.


그것은 확실히 꿈이다.


유럽에 머물던 학생 시절, 귀국 전 스위스 마테호른에 가기로 했다. 그리고 산에 오르기 전날 숙소에서 친구들에게 긴 편지를 썼다. 그리고 한 편은 나에 대한 파란색 편지였다. 그 파란 편지는 본질적으로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읽히게 된다면 그것만으로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난 친구들에게 편지를 발송한 뒤 후련한 마음으로 나에게 편지를 보내기 위해 그 푸른 편지를 꾸깃꾸깃 코트 속 포켓에 넣고 마테호른 정상에 올랐다.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꼭대기 옆 작은 교회가 있었는데 난 그 편지를 꺼내 제단 뒤에다 몰래 숨겨놓았다. 누군가 그 편지를 읽었든, 관리인이 버렸든 그 편지의 운명은 이미 내 손에서 떠난 일이었다. 편지는 이제 내 마음에서 벗어나 우연이라는 새로운 우주 안에 던져진 것이다.


난 여전히 지하철에서 두리번거린다. 사람들은 고개를 더욱더 숙이고 있다. 몽롱한 눈으로 천정을 바라보는 사람이 한두 명 존재해내고 있겠다.


메신저에 답장을 하다 문득 유럽에서 방랑 중일 파란 편지를 떠올렸다. 그 편지는 일종의 진심을 다해 세상을 마주하려는 객쩍은 순수의 상징이었다. 그러자 문득 내가 할 답장들이 침묵했다. 메시지는 잘 오가고 있는걸까. 유튜브던 뭐던, 사랑한다는 카톡이던, 인스타그램의 "좋아요"던 나는 사랑을 전달받고 있을까. 휴대폰은 내 사랑을 잘 전달하고 있을까.


10여 년 전 어느 날이었다. 난 누군가와 이별을 하려 카톡을 보냈었다. 애써 고단한 마음을 숨기며 <잘 지내>라 보냈다. 이것이 손편지였다면 요동치는 내 마음이 황망하고 흔들리는 필체로 분명히 드러날 것이라 생각했었다. 차라리 그렇게라도 내 상심을 고지하고 싶었다. 그러나 흰색 디스플레이에 표시된 문자는 그 심경과는 달리 세 음절의 검은 고딕 폰트의 자음과 모음의 조합만을 표시했다.


지금도 내 마음은 다소 엉성하고 흐트러지는 글씨체인데, 화면 속 정갈한 폰트는 날 잘 배달해주고 있는 것일까.


퇴근 한 저녁 난 명란버터밥을 해 먹었고 디킨스의 오래된 소설을 읽었다. 와인을 먹는 날은 와인을 먹는다 SNS에 업로드를 해두었다. 같은 색깔로 물들여져 삶을 스치듯 공유해 내는 나는 당신의 “좋아요”들을 바라며 꿈에 머문다.


어느 일요일이었다. 드디어 휴대폰이 고장 났다. 어쩌지 우왕좌왕하다 바로 신도림으로 가 휴대폰을 바꾸었는데 일요일이라 개통이 되지 않았다. 집에 인터넷 회선도 없던 참에 나는 일요일 하루와 다음 날 정오까지 외톨이가 되었다.


잘되었다 싶어 그날 저녁엔 오랜만에 편지들을 썼다. 그런 중에 몇 번은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는데 오프라인인 나는 세계에 접속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명백히 살아있었다.


다음 날, 점심을 먹을 때쯤 개통이 되었단 문자가 왔다. 밀린 전화와 카톡이 쌓여왔다. 쓰던 편지를 멈췄다. 손은 나를 바라보았다. 휴대폰의 빛은 어찌나 밝고 유혹적이던지.


펜을 다시 쥐었다. 꾹꾹 눌러써야지. 다시 파랗게 너를 쓰고 또 써야지. 그날 밤 난 세상에 빌딩들을 치우고 별들을 불렀다.


난 이틀간 꿈을 꿨다. 아니 내일도 꿈을 꿀 것이다. 무엇이 꿈인지도, 나인지도 너인지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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