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 계절보고서
아홉 살 때 처음 여자에게 꽃을 선물했다.
그 시절 엄마는 내게 간식비를 용돈 삼아 주셨다. 난 천 원씩 주는 간식비를 몰래 모아 책 사이에 숨겨뒀다. 또 내가 이야기를 짓거나 멜로디를 만들어 오면 보너스로 천 원을 더 얹어 주시곤 했다. 아껴 써라 덧붙이며.
간식비와 보너스를 차곡차곡 모아냈다. 오락실도 간식도 꾹 참으며 한 달을 지냈다. 친구가 벙싯 웃으며 놀러 가자고 보채도 바쁘다며 거절했다.
난 한참을 그녀가 무엇을 좋아할지 고민했다. 꽃이 좋을 것 같았다.
목표로 한 돈이 모였을 무렵이었다. 잠이 들기 전 선물을 할 설레임에 한참이나 그 장면을 상상했다. 그녀가 얼마나 행복해할까.
다음 날 난 지나다니며 인사하던 동네 꽃집에서 하얀 안개꽃으로 장식한 화려한 꽃다발을 샀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꽃이 젖으랴 품에 푹 끌어안았다.
꽃다발을 집 앞마당에 숨겨놓고 집 안으로 들어오니 어른들이 많았다. 친척들이 모인 것 같았다. 외가와 친가. 꾹 닫힌 안방에선 무언가 큰 소리가 났고 와르릉하고 무언가 깨지는 소리도 났다.
누군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 방문이 열리고 어른들이 어두운 표정을 하고선 나왔다. 아빠는 성난 모습으로 무어라 고함을 외치며 성큼성큼 집 밖으로 나갔다. 슬쩍 방안을 보니 엄마가 앉아 소리 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난 뛰어가 마당에 숨겨 놓은 꽃다발을 집 안으로 들고 왔다. 그리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생일 축하해. 내가 꽃다발 사 왔어. 예쁘지. 그니까 울지 마.
그녀는 날 보더니 두 손으로 꽃다발을 받고선 긴 밤을 더 많이 울었다.
생에 처음 누군가에게 꽃을 선물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