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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 1. 집에서 폰을 분실하다

1장 : 계절보고서

by 양율




10년 전에 통영에서 선배 둘과 같이 자취한 적이 있었다.


선배 한 명은 클래식 음악계에서 일했고, 다른 한 명은 영어교사로 일하며 꽤 나른한 삶을 살고 있던 중이었다. 난 일 때문에 통영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 사정을 알게 된 선배의 권유로 그곳에 얹혀살게 되었다.


약 8평 정도 되는 작은 원룸이었는데, 그곳에 사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세 명이었다. 이곳에서 건장한 세 명의 장정이 살아낼 수 있을까 의심하던 차였다. 허나 잔잔한 바다가 코앞인 아름다운 마을 풍광을 휙 둘러보곤 나는 고민도 잊고 즐거운 상상을 하며 짐을 옮겨 놓고 있었다. 거기다 형들은 일주일에 몇 번은 집에 왔지만, 외박하는 나날들이 많았다.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을 으레 즐길 수 있는 시간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집이 좁았던 탓에 사물집기가 아무렇게 놓아져 있었고 택배며 소지품이며 온갖 것들이 우글거리며 엉켜 살아 있는 곳이었다.


하루는 세 형제는 집 근처 도남동 양꼬치 가게에서 음식을 먹었는데 하루가 안가 배탈이 났고 선배 둘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동네에서 문을 연 병원은 없었고 난 혼자 배를 앓은 채 그 정글 같은 방에서 밤을 지새웠다.


잠은 대체로 임차인 명의의 큰 형이 침대에서 잤고, 나머지는 바닥에 요를 깔고 잤으나 사실상 요랄 것도 없었다. 대충 널브러진 다양한 소유물의 숲 속 사이에서 엉켜 자는 것이었다고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집이 얼마나 번거로웠는지 하루는 아침에 깨어나 내 핸드폰을 찾으려 삼십 분을 방을 뒤졌으나 결국은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출근을 했던 날도 있었다. 그날은 핸드폰 없이 그 정글로 바로 퇴근했다. 유난하게도 그날은 세 남자(거기다 외국인 친구 한 명 더)가 같이 집에 있었고 나는 핸드폰을 찾기 위해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그 좁은 방에 얼마나 많은 의자와 가방과 옷, 책들과 선물들로 가득했는지 내 핸드폰을 찾기 위해선 일종의 수색작업을 벌여야 했는데 나는 핸드폰을 찾으려 애쓰면서도 한순간 형들의 만우절 장난은 아닐까 몇 번씩 되뇌일 수밖에 없었다.


난 형들을 추궁했으나 형들은 정말로 모른다는 표정으로 냉장고 위를 찾아보라던가, 라면 봉지 안을 확인해 보라던가라는 말들을 했다. 내가 발을 동동 굴러 이 시골에서 바깥 생활 하지도 않는 내가 7평 방 안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릴 수 있느냐 일장연설을 펴자 그들은 조금씩 내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마침 그때는 영어 교사로 근무하기 위해 미국 내쉬빌에서 온 백인 친구도 있었는데 그는 내가 화를 내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그때쯤 내 속에서 웅크리던 의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형들이 내 휴대폰을 숨긴 것은 아닐까.


하여 내가 A형에게 묻자. 그는 신발장을 찾아보는 게 어때. 라고 답했고, B형에게 묻자 그는 귤 봉지 밑을 찾아보지 그래. 라고 답했으며 외국인 친구는 형들 속옷 밑은 어때? 라고 말했다.


이것은 정말로 7평짜리 완벽한 미로와 같았다. 영화 <샤이닝>의 축소판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난 그날 좁은 방 안에서 사라진 휴대폰과 세 남자끼리 전쟁을 벌였다.


A형에게 내 번호로 전화를 걸어 줄 수 있느냐 물었다. 그 몇 초 간 잠시 모두 조용해졌다. 누군가의 숨소리만 들릴 정도였다. 하지만 어디서도 진동은 울리지 않았다.


모든 걸 포기하던 참 설마 싶어 작은 냉장고의 냉동고를 훅 열어보았다.


냉동실에 있던 휴대폰은 막 성에가 붙을 참이었다.


남의 휴대폰을 냉동고에 넣는 사람과 같이 살 수 있느냐는 두 번째 문제지만 내가 휴대폰을 찾았다는 것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내게는 퍽 웃음이 났다. 그 미국인 친구만이 다행이라는 듯 내게 눈썹을 치켜들었다. 속옷 안이 아니라 정말 다행이라고 읊조리는 그의 옆에서 나는 휴대폰의 작동을 싹싹하게 점검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서로의 휴대폰의 소재를 기억하기로 약속을 했다. 아니, 그러니까 결국 그 작은 정글 속에 어떻게든 살아남기로 약속을 한 것이다.


그것이 이 작은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든 첫 번째 생존 규칙이었다. 나른한 남자들과 산다는 것은 그런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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