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 계절보고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길거리에서 울리던 하얀 밤, 우린 옥탑 방 집에서 고기와 소주를 잔뜩 사놓은 뒤 그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내 면접 결과가 발표되는 날이었다.
나를 자주 타박하던 형들도 그 날 만큼은 내 눈치를 보며 침묵을 지켰다. 그렇다고 게임을 중단하는 건 아니었다. 형들은 평소와는 다르게 한 참을 입을 다물고 게임을 했다. 그러다가 한 번씩 날 보고는 아직 결과 안 나왔어? 물었고 형의 여자친구는 나오면 말하겠지라고 거들었다.
저녁 8시쯤 되었을 것이다. 밤이 되도록 회사로부터 연락이 없었다.
잠시 머리를 식히려 옥상에 올라갔다. 신길에서 찬바람 부는 여의도 빌딩 숲을 바라보며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았다.
다 같이 머리 맞대 철야하던 날들이었다. 사업에 논문 공모전에 기말고사에 봉사활동에. 그때는 그런 것이 매일의 일상이었다. 바라던 바가 있었기에 나태를 미래로 연체시킨 젊은 근육의 각오였다.
그때 문자가 왔다.
<XXX입니다. 합격 여부는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심장이 덜컹했다. 난 얼른 다시 방으로 돌아가 형들에게 말했다. 결과 나왔대. 이 집 사람들 모두 고요에 쌓였다.
그 집에서 살게 된 것은 운 좋게 여의도에 있는 한 공기업에 취업이 되면서부터였다.
신길동에 살던 고향 형 두 명이 거기 살았는데 그중 한 명은 통영에서 같이 살던 형과 같은 사람이었다. 내가 취업한 사정을 말하자 같이 살자 권하던 덕에 그곳에 무료로 숟가락 얹어 살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그 집으로 이사한 이유는 신길역에서 국회의사당역까지 구름다리를 통하면 걸어서 20분이어서 출퇴근이 가벼웠기 때문이었다. 퇴근길엔 형들의 카톡방 적힌 요구사항을 성실히 이행했다. 예를 들면 <오늘은 치킨>, <거기 맛있던데 떡볶이> 이런 류의 메시지가 공지로 올라왔고 어떤 날엔 <맥주>라고 간단한 지시로도 기꺼이 이를 수행하며 살았다.
야근 후 퇴근해 집에 오면 모르는 손님들이 몇 명은 있기 마련이었고 난 쑥스러운 마음에 내 방 안에 박혀 맥주를 들고 드라마 같은 것을 보거나 글을 쓰는 것이 일상이었다. 가끔씩 A형의 여자친구가 놀러 오곤 했는데 금세 친해져 그들이 오는 밤에는 동네 슈퍼에서 술을 사러 가는 일이 잦았다.
어떤 날은 술 심부름을 가다 말투가 한국어가 어눌한 남자 두 명이 날 불러 세워놓고는 내게 물었다. 가진 돈 있냐고. 가진 돈이야 있긴 하지만 술심부름하러 온 돈이라. 그러자 그들은 내게 험악한 표정으로 내놓으라고 했고 난 천삼백 원을 건넸다. 추운 밤이었고 지갑은 들고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은 옷을 벗으라고 요구했고 난 그들 품에 있는 것이 나이프인지 장난감인지 알 길이 없어 삼만 원짜리 잠바를 벗어 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고개를 계속 갸우뚱거리며 걸어갔고 나를 몇 번이나 뒤를 돌아 쳐다보았다.
터벅터벅 집에 돌아오자 그 집의 식구들은 내가 헐벗은 몸인지는 전혀 알지 못한 채 형과 여자친구의 임신과 결혼 발표를 하는 것이었다. 난 놀라 축하를 건넸고 그즈음 난 부지불식간에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26세의 나이에 결혼이란 너무도 진중한 일로 느껴졌는데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결혼에 대한 대비라곤 좀 더 나은 조건의 직장을 찾아보는 것뿐이었다. 그러다 무심결에 원서를 넣었던 회사는 당대 가장 높은 수준의 연봉을 주고 있었다. 운 좋게 필기고사 합격 통지를 받은 후 인생은 조금 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면접날 국회에서 중요한 행사가 잡혔고 휴가를 쓰기도 힘든 사정이었다.
그동안은 많은 고민으로 뒤척이는 밤들이었다. 난 결국 형들의 조언과 어머니의 믿음 끝에 어느 가을날 후임자에게 미리 인계인수를 하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 후 난 아침저녁으로 최종 면접을 준비했다.
최종면접을 보는 날은 오후 네 시쯤이었다. 내가 그렇게 카톡방에 올리자 형이 날 종로까지 데려다준다고 약속했다. 정장을 차려입고 거울을 한 참 보았다. 그러나 형은 세시 이십 분이 될 때까지 연락이 없었다. 큰일이었다. 차가 막혀 지금 출발해도 늦을 것은 자명했다.
형에게 전화하려던 찰나, 전화가 걸려 왔고 난 집 앞 형의 투싼을 타고 신길동에서 종로까지 향했다. 내가 사정을 말하자 형은 갑자기 욕을 뱉더니 앞차들의 공간을 레고처럼 종횡하며 단 한 번도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질주했다.
면접 시간 5분 전에 도착해 내리니 형은 차창을 내려 내게 엄지손가락을 내어 보였다.
그렇게 면접이 끝난 후 난 결과를 기다리던 참이었다.
<XXX에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합격 여부는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 이 집에서 살던 기억들이 몽땅 기억났다. 내가 11월 보졸레 누보는 매년 꼭 먹어야 한다며 우기며 형들을 이끌고 마트에서 와인과 카나페 재료를 사 새벽까지 파티를 하다 아래 집에서 항의하러 올라온 일, 음식 쓰레기 담당은 나였던 일, 한 달에 한번 대청소를 할 때 다 같이 춤추던 일.
날씨 좋은 저녁이면 옥상에서 삼겹살 구워 소주 마시다 여의도 야경을 안주 삼아 모두 결국 잘 살아내자 다짐했던 일.
난 문자를 본 후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 형에게 말했다. 대신 좀 봐줄래요.
그 말을 들은 형은 내 주민등록번호와 비밀번호를 묻고는 안방 문을 닫고 게임을 끄고 인터넷을 열었다.
그 5분은 내게 잊혀지지 않는 침묵과 자정과 회한의 시간이었다. 떨어지면 생활비는 어쩌지. 막막한 서울 백수 생활 어찌할까. 미래의 내 결혼은. 형들에게 미안해서 어쩌나.
5분 뒤 안방 문이 그윽이 열렸다. 난 그의 표정을 살폈으나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검은 피부, 찢어진 눈, 묵묵한 입술. 그가 천천히 나를 안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