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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란 흥행작

1장 : 계절보고서

by 양율

[봄에 작성한 글입니다.]




올해도 봄은 호락호락 오지 않았습니다.


창문 여니 겨울이 가셨나 하여 옷을 정리해 보다가도 다시 코트를 꺼내 입다를 반복한 3월입니다. 설레발치며 언제 오나 마중 나가있다 결국 봄이 옴을 알게 된 것은 순전히 집 앞 나무들 덕분입니다.


집 근처 걸어 다니던 대로변 심어진 나무의 정체도 모르고 마른 삭정이 밑을 무심히 지나가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닌데 기어코 가지에 움튼 노랑을 보고서야 아차, 그것이 그 나무의 명함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멋쩍은 벚꽃의 분홍색과 목련의 아이보리색이 작게 움튼 걸 보니 곧 총천연색으로 땅을 물들이려는 지구의 명령이 임박해져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봄이 오셨다 압니다.


얼마 전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카페에 갔습니다.


얘기를 하고 있자면 같이 자라온 친구 사이이지만 이렇게 사람이 다를 수 있을까 싶습니다. 한 친구는 여전히 말을 잘하고요. 눈과 손은 현란합니다. 쉼 없이 주변 손님들을 구경하고 수다를 떱니다. 입담은 어찌나 재미난지 한 마디 한 마디에 우리는 박수를 치고 웃습니다.


한 친구는 과묵한 편이었고요. 이 사연, 저 사연을 듣던 그는 몇 번은 숙려 끝에 지은 속 깊은 단어를 몇 개 내놓아 우리 마음 앞에 정성껏 진심을 배달합니다.


서로 얘기 들어주며 위로도 하고요. 옛날 얘기도 내일 계획도 알립니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우린 반가운 마음에 한참을 떠들며 눈빛을 거래했습니다.


그렇게 봄이 왔다 압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흰색 봉우리가 움튼 나무, 노란색 봉우리가 움튼 나무를 한참을 봤습니다. 두 친구 중 누가 매화일까요, 누가 개나리이며 벚꽃일까요.


사람에겐 타고난 본래의 성정이란 것이 있을 것입니다. 가끔 생각해 보면 내가 만나는 사람들 모두 각자 어떠한 캐릭터를 떠올리게 됩니다.


영화를 보면 음흉한 악역도 있고 음험하고 어두운 캐릭터도 있습니다. 살아온 사연이 많아 주인공을 위로하고 감명을 주는 캐릭터. 날 사랑하지만 질투해 모종의 음모를 가진 캐릭터. 아무 생각 없이 보이는 멍한 눈의 캐릭터.


살아가며 이 세상의 모든 인간 군상 타입을 발굴하려면 수백만 년이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탓에 인간을 무대로 한 영화가 문학이 예술이 영원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속사정을 잘 알고 지내는 사람들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캐릭터가 쉬운 작법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어떤 형이 고독을 좋아하는 것은 아버지를 닮은 탓이며, 몇 개의 학원 숙제 점수가 80점이 넘지 않으면 쉽게 체벌하던 집안의 무뚝뚝한 공기 탓이겠습니다.


취업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매번 이직을 하며 자유를 꿈꾸던 그녀는 넉넉한 집안 형편과 마음 썩힐 일 없었던 청년 시절 때문일지도, 만고풍상에도 가능성의 일체를 체험해 든든한 일련의 삶의 통밥을 준공해 내려는 아버지의 기세를 닮아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길거리에서 캐리커쳐 그림을 그려내는 화가를 보면 참 신기한 마음이 듭니다. 어떻게 순식간의 붓질로 그렇게 사람 얼굴 특징을 잘 그려내는지 입이 벌어져 서로 웃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도 서로의 성정에 품은 캐릭터를 쉽게 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떤 사람은 오래 걸려야 압니다. 어떤 사람은 쉽게 알아차려지고요.


난 내가 어떤 캐릭터인지 고민해 보았습니다.


내 마음의 캐리커쳐는 쉽게 그려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걸로 좋겠습니다. 내 영혼의 스케치를 오래 고민할 수 있는 것도 행운입니다. 친구들의 그림은 어떨까요.


오랜 시간 고민해 봅니다만 어떤 그림이든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영화감독이라면 내 영화 속 캐릭터는 모두 승리해 내는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쿠로사와의 <란>에서 형제들 그 누구도 불운이 죽어가지 않고요. <쇼생크 탈출>의 엘리스도 세상을 악착같이 견디어 내 살다 살다 질겅질겅이라도 살아남는 그런 작품이요.


희망이 몽상 같아 슬픕니다. 모두가 행복한 엔딩은 꿈속에서만 개봉 중인 걸까요.


봄이 옴을 압니다. 본래의 씨앗에 따라 흰 봉우리와 분홍색 봉우리가 움틉니다.


머지않아 봄은 흥행할 겁니다.


내 친구들도 본래의 성질대로 잘 살기를 기원합니다. 그렇게 제 멋 따라 제 꽃을 피워 한참을 흥행하길. 한참은 거창한 소신 없이 알록달록한 봄의 명령에 충실하길. 그렇게 당신이 살길 소망합니다. 허면 어딘가 내가 피워낸 꽃도 작게 피어 봄을 함께 생명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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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