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엔 가출을 했습니다.

1장 : 계절보고서

by 양율

[겨울에 작성한 글입니다.]



겨울입니다.


시린 추위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18살 때의 일입니다. 삶이 허기져 무작정 서울로 가출을 했습니다. 계획에 없었던 일입니다.


가지고 있던 돈에 차비를 지불하니 남은 건 2천 원이었습니다. 그해 1월의 강남은 제가 기억하는 겨울 중에 가장 추웠습니다. 영하 20도 보다 더 가혹했던 것이, 일주일 동안의 나의 처절한 생존이었기에 그런지도 모릅니다.


서울에 도착한 밤 따뜻한 곳을 찾기 위해 걷고 걸었습니다. 서초 지하상가도 갔고요, 대학 병원도 쏘다녔습니다. 검은색 얇은 코트는 참담한 계절을 수비해 주긴 역부족이었습니다.


잘 곳을 찾지 못해 새벽엔 공중화장실에 라디에이터를 끌어안고 잠을 잤습니다. 따뜻함에 노그라져 쓰러진 순간, 라디에이터도 꺼지더군요. 난처한 마음에 고개를 돌려보니 장애인 칸 한켠 라디에이터에 온기가 남아있었습니다. 그 온기를 부모처럼 품고 밤을 버텼습니다. 꼬르륵 소리는 새벽의 화장실 안에서 팀파니처럼 울렸고요.


그 일주일 동안의 혹한이 어찌나 길던지요. 전 낮 동안엔 아무 성당에 들어가 가방 속에 오선지를 꺼내 작곡에 열중했습니다. 추위와 배고픔의 고통에 시달리면 꿈이 주는 선율이라도 등장할 줄 알았거든요.


방랑 중에 제게 말을 걸었던 사람은 네 명이었습니다.


어느 날 밤 흑석동의 중앙대병원 벤치 한편에 몰래 누워 잠을 잤습니다. 경비원이 여기서 자면 안 된다며 물었습니다. <학생, 집이 어디야?> 대답을 안 하자 가출을 한 거냐 다시 다그쳤습니다. 경찰을 부르려는 것 같았습니다. 전 부리나케 도망갔겠고요.


두 번째는 예술의 전당 마르크 샤갈 전 앞에서 서성거리던 내게 다가온 사람입니다.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제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입을 열자 사투리를 듣고는, 부산에서 왔구만? 나도 고향이 부산인데. 전시 보러 왔어? 근데 돈이 없어요 아저씨. 아저씨가 들여보내 줄게. 피의 온도가 20도 정도는 올라간 기분이었습니다. 안온한 봄에 안겨 그토록 보고 싶었던 그림들을 눈에 담았습니다.


세 번째는 서초 성모병원에서 잠을 자고는 성당에서 한 참을 앉아 있다 한강다리를 맨다리로 건너 도착한 용산역 지하에서였습니다. 벤치에 앉아 있자 할머니가 길을 묻더군요. 저 서울 사람 아니에요. 근데 학생, 얼굴이 참 곱네. 중학생? 고등학생? 집에서 나온 거야?


여름처럼 미소 짓던 할머니는 자리를 떠나는 저를 한참이나 바라보는 것 같았습니다.


배를 곪으며 두 발로 쏘다녔습니다. 마로니에의 바람도 스쳤고요, 홍대 거리를 밟고 버스킹 무대도 구경했습니다. 한 밴드의 남자 멤버가 제게 묻더군요. <학생 집 나왔지>. <네>. 일단 집으로 같이 가자. 일주일 만에 밥을 먹었어요. 김이 나는 따끈한 라면이 잊히지 않습니다. 제 쓴 곡도 들려줬었고요.


일주일 동안 야만을 견뎌내 보니 가난을 알았습니다.


비극마저 각오한 방랑에서 온 생을 점령한 건 거나한 사상이었습니다. 혼신의 힘으로 지척지척 걷다 보면 나는 순수의 잉크에 푹닥 빠진 기분이었습니다. 그 잉크가 내 심장에 웅혼한 문장을 문신해 냈길 바랍니다.


저는 가끔 글을 쓸 때 그때의 맑은 추위를 생각합니다. 난 홀로 살았고 외로이 땅에 문의했으며 혼자 대답을 들었습니다. 어쩌면 추위는 쉽사리 농담해 보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배고픔은 저체온증은 생 따윌 역주행해보는 반항과 청춘과 같은 단어일 수도 있겠습니다.


마지막 날 나는 공중전화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머니는 말없이 차비를 송금해 주었구요. 차를 타기 전 남은 2천 원으로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었습니다. 그때서야 떠오르더군요. 어머니의 침묵은 불안함을 담고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오히려 다정했음을. 침묵으로 긴 통화였습니다.


서울에서 내려오던 버스에서 잠이 깬 아침, 난 문득 생각했습니다.


목도리를 한 사람들, 두꺼운 코트를 입은 사람들 모두 계절의 침략에 민병대처럼 저항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 시절엔 떨고 있는 소년에게 미소 같은 것으로 온기를 조금 떼어주려는 마음도 있었겠고요. 새벽 장애인 화장실에 켜진 라디에이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심이었습니다.


난 청춘 한가운데에 겨울의 돌풍 안으로 여행했습니다. 묵계 속에 절대적 계절은 레드카펫 밟듯 출두합니다. 겨울은 익숙하고 눈보라는 당연합니다.


그러나 난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날의 난 고난 했으니 당신의 겨울은 꽃잎을 받으며 보호받기를. 영화처럼 구경하는 겨울로, 손 비비는 핫팩으로, 두꺼운 코트로, 사람들의 온화한 미소로 고독의 불안을 켜켜이 수비하기를. 살다가 그날의 기억을 지운 당신이 내 비참했던 영하에 위안하기를요.


오늘 난 내 미래를 향해 그렇게 토닥여야 할 것 같습니다.


꽤 무모하게 살았던 것이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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