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 날씨라는 거대한 교감
어릴 적 부산 기장에 있는 작은 해변을 산책했을 때. 바다를 가지고 싶었다. 온통 내 소유로 하고 싶었다.
난 종종 바다를 움켜잡고 싶어질 때가 있다. 이 블루의 색과 짠 향, 넉넉한 구름이 있는 풍경을 베어 물어 내 위장으로 소화해내고 싶었다.
그럼 내 어리숙한 피와 뼈는 사연 많은 바다를 만나 하루 종일 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난 큰 바다를 훔쳐 내 인격 속으로 섭외하고 싶었다. 가히 몽환적 획책일 거외다. 허나 어릴 적부터 난 바다의 심오함을 동경했다. 통조림캔 속에 넣어 가끔 꺼내 넨다히 쓰다듬으며, 너 바다. 아직 있구나. 하는 일을 상상했다. 바다의 힘은 얼마나 강한가. 사소한 영혼이었던 난 그런 담대한 어른스러움을 갖고 싶었다. 진한 냄새가 나잖는가. 그러면 난, 야 얘 바다 가지고 있대. 에헴. 통조림을 꺼내며, 이거 보라고. 유향고래, 아귀, 베타, 갈매기들 보이지? 붉은 낙조 이거 이거 보라고. 죽이지?
무한함에 대해 말하자면, 내 현실 감각은 깨나 서툴렀는지 누군가 내게 장래희망을 말하면 정확히 10조 원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딱 10조 원. 그건 내가 어릴 적 계산해 본 바다의 입찰가였다. 지금 그때 친구를 만나면 그 10조 원 얘기가 자주 안주거리로 등장한다. 그때마다 난 부끄러워 뜨거운 낯으로 술잔을 비운다. 그 얘긴 그만하라며 손 흔들흔들.
독자들이야 믿기진 않겠지만 사실 난 대학에서 금융공학을 전공했다. 열심히 공학용 계산기를 두드리며 수학 문제들을 풀었다. 금융기관에서 오랫동안 일해오기도 했다. 돈이 어떻게 흐르는지 상식 정도는 알고 있을 법하다. 그럼에도 난 아직 많은 돈을 가지진 못했다. 당연히 남해 바다도 사 오지 못했고.
지갑 빈궁한 처지의 친구를 만날 때가 있다. 그러면 김 오르는 순댓국 휘휘 저으며 내가 슬그머니 계산대로 향한다. 그래서 내가 바다를 모으지 못했을까.
바다가 아니더라도, 사고 싶은 게 한 가득이다. 눈여겨 두었던 예쁜 청바지도, 파란 풀오버도, 마음 같아선 포르셰도, 강남의 좋은 집도 카지노에서 칩을 모으듯 내 팔 안으로 거두고 싶다.
그것뿐이랴. 아파하는 친구에겐 이 계절의 낭만을 몽땅 구입해 선물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에겐 시인들이 춤추는 첨예한 시간을 몽땅 사재기하고 싶다. 재능을 사고 싶다. 노래도, 글을 쓰는 법도, 행복도 몽땅 매점매석할 수 있을까. 우주 속 아름다운 별들을 내 속에 데려올 수 있을까.
로맨스에 수학 공식이 침범당하는 일이 마뜩잖다.
허나 돈은 냉랭한 법이요 헌법은 태연자약하다. 소유권은 바벨탑이요, 허물 수 없는 현대다. 그 와중에 돈은 나를 비웃을 방법만을 배운다. 어떻게 하면 더 골려주지? 어떻게 하면 더 몽니궃게 약 올릴까? 돈은 사실 낭만에 인색한 폭군이어서 탄압받는 음악과 시라는 고상한 선민이 탄생하는지도 모른다.
돈은 씩씩하게 삶을 독재해 나가나 예술은 억세게 반항한다. 중재도 불가한 저명한 원수지간이다.
나로 말하자면 몽상하며 시러베장단 따윌 두드리지만 아직도 인어처럼 내 심장 번쩍이는 보물함엔 바다가 있다.
내 계좌 속 펀드와 주식, 약삭빠른 계산들은, 소박한 너와 나의 소주 한잔도, 늦은 야근도 땀 낸 철야도, 몽땅 바다의 몽상을 위한 것이오, 이를 위해 머슴짓 감내하는 짓궂은 현실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