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결함투성이

3장 : 날씨라는 거대한 교감

by 양율




나는 결함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곳저곳이 흠집입니다. 인정하기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노을은 왜 좋을까요. 고속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본 잘린 통나무 더미는 왜 쓸쓸할까요. 겨울의 건조한 공기는 왜 흑백 같을까요. 내가 만지작거리는 호주머니 속 립밤과 지갑, 오래된 옷은 왜 가끔 날 부끄럽게 할까요. 어찌 이토록 만사에 짙은 감상들이 괴롭힐까요. 지난날 실수와 후회는 언제까지 날 따라다니게 될까요.


난 결함이 많은 사람입니다. 종종 예민하구요. 어쩔땐 거칠고요. 때때로 살갑지도 않으면서 사랑만 받길 바라는 이기주의자가 됩니다. 그러다 내 심성 들통이라도 나면 억지로 내가 부른 노래들 덕택에 눈치채지 못하게 몰래 아무도 없는 불모지에 내 본성을 연착시키곤 했습니다.

어릴 적엔 어찌나 솔직하기가 어렵던지 매번 내가 잘하는 일들만 찾아다녔습니다. 싫은 소리 듣지 않고 사는 게 제일가는 일이었습니다. 하여 내 흠결을 잘 알아주는 사람들 보단 애써 외면해 주는 사람들만 옆에 두었습니다.


기이한 일을 많이 하고 살았지만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는 이십 대 말에 있었던 일입니다. 요상한 결심 끝에 한 달 동안 만나는 사람들 마다 내 단점이 무엇이냐 얘기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술잔을 따르고 말을 꺼내자마자 당혹해하는 표정들이 눈에 아직도 선명합니다. 그 질문을 듣는 사람들 심정은 난처하였겠으나 제겐 나름 앞으로는 진실되게 살아가기 위한 절실한 고충 끝에 나온 수단이었습니다.


결과는 짐작하다시피, 아무도 이에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내 흠을 말해주지 않은 사람들과 사귀어왔던 탓이었을까요. 내 흠을 몰래 감춰왔던 내게 이를 굳이 들추어내지 않는 사람들과 친우로 지냈던 내 몽롱한 사교 정책이 소기의 성과를 낸 것이었을까요.


그런 귀한 성정을 가진 일들과 사는 게 행운이겠습니다만 내 비릿한 곳을 알고도 모른 척하는 그들의 고난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사람의 영혼을 해부하면 추한 버릇들과 몇몇 고운 성정으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양식되지 않은 탓에 영혼의 모양은 제각각이겠습니다. 그럴싸한 부위도 있고 그렇지 않을 마음도 있을 것이겠습니다.


어릴 때의 그 질문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난 그렇게 난처한 질문 따윌 하고 다니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 이후로 난 누구에게도 마음을 쓰이게 하는 말을 잘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결코 변하지 않는 걸까요. 제겐 몇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잘 사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랑을 잘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나는 어떤 흠결을 가리고 있는 걸까요. 살다가 아예 내 흠집을 망각해 버린 건 아닌 것일까요.


끊임없이 내 동굴을 탐색해 지도로 그려 남깁니다. 절 미워하는 사람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와 안고 부대끼면서. 그러다 제 지구본이 완성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겨울엔 어떤 기후인지, 봄일 땐 어떤 식생의 꽃이 피는지, 또 어떤 색의 웃음 짓는지 따위의 일입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알아차리게 되지 않을까요. 내가 어떤 사랑을 해야 하는지, 어떤 바다를 좋아하는지를요.


사는 것이 참 고달픕니다. 그래서 날 묻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날 흉보는 사람에게 난처한 일 하나를 묻고 싶습니다.


서로의 흠집을 알고 노래나 불렀으면 하는 마음에 하는 말입니다. 서로 잘난 곳보단 이러쿵저러쿵 못난 곳, 몹쓸 곳 자랑해 보는 일도 안주로 좋겠다 모시는 말입니다.


서로 허무한 곳 손으로 바세린 따위 둥글게 발라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하는 말입니다.


내 몹쓸 곳 드러내면 당신의 어두운 그곳 감쌀 수 있게 허락해 줄까 하여 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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