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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 불고기 단상

2025 DMZ IDFF 1일차. 도라지 불고기.

by Gozetto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보이는 것과 보는 것으로 가늠하는 정체성의 정체성(3.5)


재일 교포 중 자이니치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것에 있어서 중요한 영화가 될 듯하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관람할 영화를 고르는 중 제목부터 눈에 들어온 영화인 <도라지 불고기>는 보는 내내 이전에 봤던 <조선인 여공의 노래>(2024)와 <호루몽>을 떠오르게 했다. 세 영화 모두 일제강점기 당시 각자의 이유로 일본으로 이민을 가야 했던 조선인들의 이야기이며 특히 이중 <호루몽>과 <도라지 불고기>는 이민을 간 조선인들의 후인들, 즉 자이니치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영화이다. 세대와 소재로 구분하면 <조선인 여공의 노래>는 이민을 간 1세대 조선인 노동자들의 차별적인 노동 현실, <호루몽>은 자이니치 3세대이자 성공한 여성 사업가요, 사회운동가인 '신숙옥'을 중심으로 일본 사회의 혐오와 그에 대한 저항 운동, <도라지 불고기>는 그 이후 세대의 자이니치의 정체성을 다루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을 듯하다. 특히 정체성과 관련해서 <도라지 불고기>와 <호루몽>이 세대에 따라 상당히 의미있는 차이점을 보이는 것처럼 느껴져 보는 내내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나중에 다시 정리해 풀어보도록 하겠다.


별개로 <도라지 불고기>는 현재 2, 30대 청년 자이니치들의 정체성에 주목한다. 양지훈 감독은 이전 자이니치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서 자이니치의 정체성을 일제의 탄압을 피해 혹은 일제에 저항하고자 일본으로 간 이민자들의 후손으로만 표현하는 것 같아 그러한 정체성 담론을 해체하고 새롭게 자이니치의 정체성을 보고자 하는 목적으로 영화를 제작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양지훈 감독은 영화에서도 드러나듯 관객이 자이니치의 정체성을 이중 삼중으로 보게 한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블러 처리되고 이름도 익명으로 제시되는 자이니치들은 카메라로 촬영되어 1차로 스크린에 떠오른다. 그런데 이렇게 촬영된 자이니치들은 1부 도라지에서 'XX'라는 감독의 아는 자이니치 형의 집 TV에서 떠오른다. 관객은 TV에서 떠오르는 자이니치만이 아니라 TV에서 떠오르는 본인의 모습을 보는 자이니치 XX의 모습도 보게 되는 것이다.

출처. 왓챠피디아

이중 삼중으로 관객이 자이니치를 보게 하는 것에 더해서 영화에서 그들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정보 역시 대단히 제한적이다. 영화에서 자이니치들은 모두 익명에 블러 처리가 되어 있어 관객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감독의 질문에 대한 그들의 대답과 한숨, 목소리의 고저, 말을 끄는 정도, 카메라 앞에서 그들이 취하는 제스처 등 비언어적 반응 뿐이다. 이중 청각 정보인 대답과 연동해 인물의 감정을 파악할 수 있게 하는 비언어적 반응은 가장 직접적으로 인물의 감정을 파악하게 해주는 표정이 가려져 있어 알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다. 이런 점에서 관객은 2, 30대 현 청년 세대에 해당하는 자이니치의 정체성을 파악하기 위해 질문에 대한 그들의 대답에 더해 그들의 생활상을 '보는' 것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청년 세대의 자이니치가 지닌 정체성을 이해하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의 질문을 꼽으라고 하면 조선 학교와 일본 학교 중 선택해야 하는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혹은 선택하는 때로 돌아간다면 어느 학교를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일 것이다. 이에 대해 영화에 출연한 자이니치들은 모두 거기에 친구가 있기 때문에 조선 학교를 선택할 것이라고 답한다. 이러한 답변을 국적에 대한 자이니치들의 인식과 연결해보면 자이니치의 정체성은 한국, 북한, 일본 중 어느 하나가 아니라 자이니치라는 공동체 집단으로 귀속되는 구심적 정체성에 가까워 보인다. 국적과 관련해서 자이니치는 공간적으로 한반도, 즉 조선으로 자신들의 공간적 정체성을 내세우면서도 제도적으로 실질적 한국인으로 보호나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점, 그들의 생활은 일본이라는 문화적 정체성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구심적 정체성은 대단히 제삼의 경계인 정체성처럼 느껴진다. 특히 이러한 제삼의 경계인 정체성이 세대가 지남에 따라 더욱 짙게 형성될 것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도라지 불고기>는 자이니치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에 있어서 어떤 의미에서는 편견을 강화할 수 있을 요소들은 최대한 제한해 보여주는 듯하다. 제한되어 나타나는 자이니치의 모습은 정체성의 신화를 깨닫게 한다. 양지훈 감독은 GV에서 관객에게 스크린을 통해 보는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진 것이라는 감각을 갖게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를 본다는 감각을 일깨우면서 지속적으로 제한되어 있는 자이니치의 정보를 통해 정체성 역시 만들어진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려 한 듯하다. 그러한 점에서 <도라지 불고기>는 자이니치만이 아니라 조선인 이민자들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자체의 정체성을 다시 인식하게 한다. 앞서 언급했듯 제삼의 경계인 정체성으로 느껴지는 자이니치의 정체성에 대해서 향후 한국 사회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생각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개인적으로든 국가적으로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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