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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미래 단상

2025 DMZ IDFF 2일차. 밝은 미래.

by Gozetto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퇴보와 진보를 갈팡질팡 하는 사이 도달한 미래(3.5)


<밝은 미래>는 좋은 의미에서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영화이다. 냉전 시대의 역사적 사실 중 동구권, 사회주의, 청년 운동 등에 대해서 깊이 알고 있는 전공자라면 더욱 의미가 깊을 영화일 것이다. 영화는 1989년 북한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배경으로 공산 국가인 북한에서 모순적인 순간들이 부딪히는 모습을 보여준다. 1989년 한반도가 배경이라는 점에서 기억하면 좋을 사실은 88년 서울 올림픽이 남한에서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서 봤을 때 89년 여름, 평양의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은 라이벌 의식을 넘어선 남북한의 대립 구도에서 비롯된 행사라는 점이다. 영화에서도 언급되듯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은 전세계의 약 2만명 가량의 청년들이 모여 다채로운 신념과 이상을 교류한 행사이면서도 반대로 북한 체제의 건재함과 위대함을 보이기 위한 행사였다. 그렇기에 겉으로 보기에 대규모 군중이 모인 화려하고 성대한 행사이나 행사 진행에는 상당한 차질만이 아니라 여러 갈등도 있었던 듯하다.

출처. 왓챠피디아

하지만 영화에서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이러한 국제적 행사 자체가 평양에서 열렸다는 사실과 상당히 보수적일 것으로 생각된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에서 대단히 진보적 성향의 의제들이 제기되었다는 점이다. 처음 개막식 영상에서 동구권 국가들만의 행사일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서구권의 미국, 프랑스 등을 비롯해 제3세계인 아프리카, 동남아 국가의 청년 단체들이 참가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임수경 단 한 명의 방북 형태이나 남한 역시도 참가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정권에 의해 상당히 억압 받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과 다르게 동구권 청년 단체에서 축전 행사 한 달 전 발생한 중국의 천안문 사태를 비판하며 중국 청년 단체와 연대를 주장했다는 점, 동성애와 여성 인권에 대한 진보적 의제들이 제기되었다는 점 등은 단편적으로만 배운 역사와 다르게 동구권 정치 단체가 굉장히 진보적이고 활발한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이러한 진보적이면서 반체제적 주장과 활동과 반대로 북한 체제의 건재함을 강조하는 듯한 집단 무용이나 당시 김일성 수령이 국제 사회에서 북한 체제가 인정 받고 있음을 알리는 선포 등은 진보라는 커다란 흐름에 대한 반체제로서 오히려 빛바랜 과거의 망령처럼 보인다.


하지만 <밝은 미래>의 매력(?)은 레닌 동상을 세우는 루마니아의 도시와 차우셰스쿠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며 공산주의 체제를 종식시킨 혁명이 교차하면서 드러난다. 세계청년학생축전이라는 무대에서 알 수 있듯 냉전 시대의 이면에는 오늘날 봐도 대단히 진보적인 의제와 그에 대한 청년 세대의 열기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다르게 말하면 냉전은 결국 자유에 대한 청년 세대의 열망으로 인해 끝날 결말이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러한 시대적, 세대적 열망은 레닌 동상을 세우는 시기에도, 차우셰스쿠 독재 정권에 대한 민중 혁명 시기에도 똑같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레닌 동상을 세우며 사회주의 혁명을 이룩해 진정으로 평등한 국가를 이룩하겠다는 열망과 차우셰스쿠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진정 자유로운 사회를 달성하겠다는 열망. 두 열망 중 무엇이 더 진보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도리어 그렇게 진보적인 열망으로 보수적 혹은 복고적인 움직임에 저항하며 도달한 미래가 정말 진보한 밝은 미래가 맞느냐는 결말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한 과거의 현재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는 일갈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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