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DMZ IDFF 2일차. 하산과 가자에서.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죽음으로 시선이 흔들리는 와중에 이따금 포착하는 삶(3.0)
<하산과 가자에서>는 2001년 이스라엘군에 의해 폐허가 된 가자 지구의 모습을 담은 영화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외에 이스라엘의 도발을 시작으로 된 최근의 중동 분쟁은 3차 세계대전의 불씨 중 하나일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래 지속되어 왔던 분쟁임에도 최근의 중동 분쟁 격화가 이전보다 더 큰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차별적 공습으로 자행되는 민간인 학살을 하마스 격멸로 포장하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명분을 앞세워 지속적으로 중동 국가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다는 점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무차별적 공격의 가장 큰 문제는 관세 전쟁을 시작으로 중국 공산 정부의 양자 대결 구도에서 우위를 점하려 한 미국우선주의의 트럼프 정권에 대해서 반미 세력이 규합되는 가운데 동맹이라 여긴 이스라엘이 미국 정부의 영향력을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취한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5차 중동 전쟁의 서막이 아니라 다시 한 번 미국과 중국으로 대표되는 반미 세력의 대리전을 시작으로 세계대전으로 발전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연일 평화 협상과 무차별 공습이 반복되고 있는 가자 지구는 홀로코스트의 역사가 반복되는 현장이자 24년 전보다 더 지옥이 된 현장이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하산과 가자에서>의 감독 카말 알자파리가 가자 지구를 찾아온 이유가 교도소에서 만났던 수감자 친우를 찾으러 왔다는 점은 현재의 가자 지구를 떠오르게 한다. 이스라엘군에 의해 교도소에 투옥된 수감자 친우를 찾으러 감독이 가자 지구를 방문한 시기는 2차 인티파다 운동 직후 가자 지구에 대해 이스라엘군이 연일 공격하던 때이다. 감독이 끊임없이 수감자 친우를 찾는 것으로 봐서는 그가 교도소에서 만난 인연이 분명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인연이 반드시 있었을 것이라 생각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오히려 이스라엘군의 공격이 연일 이어져 폐허가 된 가자 지구에 친우를 찾으러 왔다는 사실이 오히려 대단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이렇듯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하산과 가자에서>의 카메라는 지옥과 같아 대단히 비현실적인 가자 지구의 현실을 담으면서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는 친우, 어쩌면 2차 인티파다 운동에 참여했을 팔레스타인 사람, 어쩌면 이스라엘군에 의해 희망과 미래 모두 박탈당한 팔레스타인 사람을 보여주고 있다. 즉, 수감자 친우는 <하산과 가자에서>에 이따금 화면을 수놓는 아랍어 시에서 느껴지듯 가자 지구에서 고통 받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 전체에 대한 실재이자 비유이다.
친우를 찾는 과정에서 담기는 가자 지구의 모습은 현재의 가자 지구와 비교해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감독의 카메라에서 느껴지는 공포감, 불안, 연민이 과거와 현재의 가자 지구가 큰 차이가 없음을 일깨운다. 영화의 카메라는 팔레스타인 도시, 난민촌, 폐허 등을 담는 와중에 이따금 그 현장을 직시하지 않고 고개를 떨구듯 흙과 모래를 찍는다. 그 와중에도 바로 어제도, 그제도, 그리고 아마도 내일도 있을 공습에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지옥도라 말하는 주민들과 난민들의 외침은 카메라를 타고 들어온다. 폐허를 돌아다니는 사람에게 인터뷰를 제안하며 아주 나중에 영화로 만들거나 할 것이기에 당신이 누구인지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가이드 하산과 감독의 말은 영화 제작의 불투명성만이 아니라 인터뷰 하는 난민 역시 살아남을지 알 수 없다는 죽음의 불안을 느끼게 한다. 그런 와중에도 카메라는 자신을 찍어달라는 아이들의 외침에 따라 지나가듯 하면서도 카메라로 신난 아이들의 표정을 담다 이리저리 흔들리기도 한다. 유일하게 시간과 관계없이 죽음이 만연한 공간에서 삶의 존재를 일깨우는 아이들의 미소와 웃음마저도 지속될지 알 수 없는 순간이라는 듯 지나간다. 하지만 그마저도 남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죽음의 불안과 공포에 버티지 못하리라. 삶의 순간을 포착할 수 없는 곳은 정말 아무런 희망도 없을 곳일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