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CGV 씨네라이브러리. 린다 린다 린다.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연기되는 중에도 풋풋함은 완숙으로 서서히 익어간다(4.0)
소마이 신지 감독의 <태풍클럽>(1985)과 비슷한 이미지와 방향성이 보이지만 <태풍클럽>과는 반대로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한가득 품고 있는 청춘 영화이다. 일본 방송을 담고 있는 릴스를 통해 영화의 수록곡인 「린다 린다」를 들어본 적이 있다. 릴스는 이제 어린이집, 많이 쳐줘야 유치원을 갔을 것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를 방송국 PD가 인터뷰를 하는 내용이었다. 아이에게 PD가 요즘 빠져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고민도 없이 록밴드 '블루하츠'라 답한 아이가 바로 거침없이 노래 한 곡 해도 되냐고 묻고 된다고 하자 아이는 다시 기다릴 것도 없다는 듯 「린다 린다」를 부른다. 앳된 목소리로 하지만 힘 있게 뻗어나가는 목소리로 노래를 다 부른 아이는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끝내주는 무대 매너로 노래를 마무리한다. 아이의 모습이 뇌에 거의 각인되다시피해서 본 적 없는 영화임에도 제목을 보자마자 일본 아이의 마무리 무대 매너까지 재생된 뒤 바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기억이 난다. <린다 린다 린다>는 청춘을 짓누르는 듯한 세기말적 이미지, 세기말에 도달하지 않으려는 유예의 연속, 마지막으로 릴스에서 본 아이처럼 풋풋하고 생명력 넘치는 열정으로 세기말에 저항한다는 점에서 <태풍클럽>과 비슷하다.
졸업 전 학교 생활의 마무리라 할 수 있는 축제를 맞이한 고등학교 3학년 여고생 4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린다 린다 린다>는 <태풍클럽>과 전혀 다른 이미지이지만 동시에 비슷한 세기말적 이미지를 담고 있다. <태풍클럽>의 세계는 아이들의 미래 방향성을 잡아줄 어른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다. 어른이라고 하는 이들은 겉으로 위엄있고 지대한 관심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자신들의 욕망의 대상으로 이용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그런 아이들에게 폭풍우로 세상을 쓸어버릴 듯한 태풍은 욕망으로 가득한 세계를 쓸어버릴 것 같고 반대로 원시 사회의 순수한 욕망이 충만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과 같다. 즉, <태풍클럽>의 세계는 기득권이라 할 수 있는 기존 세대에게서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찾을 수 없는 세계이다. 그렇기에 <태풍클럽>은 그 뒤를 잇는 차세대에게서 기존 세대에 의해 뒤틀린 지점을 모두 씻어버리고 그들이 가진 순수한 욕망 혹은 생명력을 일깨울 수 있는 태풍이라는 거대한 원동력, 다르게 말하면 기존 세대를 쓸어버릴 수 있는 거대한 종말적 재난을 희망하는 영화로 느껴진다.
<린다 린다 린다>의 밴드 부원들의 상황은 <태풍클럽>의 학생들과 비슷하다. 축제에서 공연을 위해 결성된 밴드가 기타 '모에(유카와 시오네 분)'의 부상과 이를 두고 키보드 '케이(카시이 유우 분)'와 보컬 '린코(미무라 타카요 분)'가 싸워 보컬, 기타, 키보드 모두 없는 상황.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 졸업을 앞둔 여고생들의 다툼은 단순한 다툼이 아니다. 한국인 유학생이자 보컬 '송(배두나 분)', 드럼 '쿄코(마에다 아키 분)', 베이스 '노조미(세키네 시오리 분)', 키보드 대신 기타 케이는 모두 졸업 이후 삶의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다. 겉으로 보기에 이들이 준비하는 학교 축제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성대해 보이지만 실상은 졸업이라는 세기말을 잊고 마지막으로 즐기는 카니발이다. 불안의 종착지로 드러서기 전 현재의 자신을 모두 쏟아내어 다시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이다. 즉, 학교 생활의 종언을 의미하는 졸업을 앞두고 유종지미를 거두기 위한 축제 공연마저 불가능할지도 모를 상황은 학생들 입장에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세기말스러운 상황이다.
이러한 종말스러운 상황에 대해 어찌저찌 밴드를 구성해 축제를 준비하는 여고생들의 모습은 좋게 말하면 풋풋하다. 즉, 어설프다. 공연 준비를 위해 몰래 부실로 숨어들어 연습을 하다 새어나온 소리로 축제 공연 담당 선생 '코야마(코모토 마사히로 분)'에게 들키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좋아하는 남학생 '카즈야(코바야시 카츠야 분)'에게 호감을 표현하지 못하던 마키는 자신이 만든 기회가 찾아왔을 때 끝내 전하지 못하고 린코와 화해해야 하지만 케이는 자존심 때문에 제대로 사과하지 못하며 전 남자친구 '토모키(미우라 마사키 분)'와는 어딘가 어정쩡한 관계로 남아 있다. 연습하면서 합주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공연날 자다가 다들 지각해 쏟아지는 폭우를 뚫으며 학교로 돌아온다. 4명의 여고생이 공연을 준비하며 겪는 일들은 일상의 아주 작은 소동처럼 잔잔히 흘러가 좌충우돌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과장된 것 같으나 어쨌든 그 작은 소동 속에서 여고생들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어설프게 즉, 풋풋한 청춘의 에너지로 극복하며 나아간다.
이처럼 여고생 4명의 풋풋한 청춘의 에너지는 대단히 잔잔하게 흘러가 <린다 린다 린다>에서 세기말스러운 상황인 공연을 할 수 없는 상황 혹은 공연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은 대단한 위기처럼 보이지 않는다. 세기말스러운 상황은 풋풋한 여고생들의 청춘이 조금씩은 완숙해지는 과정의 끄트머리에서 여고생들이 각자 어느 정도 완숙할 수 있을 때까지 연기되고 있는 듯하다. 여고생 밴드의 연습 일탈을 알지만 오히려 모른 척 넘어가는 코야마와 같은 어른이, 잠자다 지각한 이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공연을 하며 시간을 끌어주는 모에와 '다카코(야마자키 유코 분)'와 같은 친구들이 있다. 여고생들이 어설프긴 하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천천히 성숙해질 수 있도록 주변 사람들이 상냥하게 시간을 유예해주며 기다려준다. 그런 그들에게 화답하듯 블루 하츠를 그대로 한국어로 번역한 밴드 '파란 마음'이 부르는 「린다 린다」는 언제고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과 만나 이야기할 때 사랑의 의미를 알아달라며 자신의 마음을 지금 전하지 않고 다시 만날 날로 연기하며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는 상냥한 노래이다. 감정을 전하는 것이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든 서툴러 오해를 일으키기도 하고 목표는 명확하지 않으며 삶의 과정은 삐걱대는 것 같지만 마음의 상냥함을 품은 채 조금씩 나아가는 청춘은 조금씩 완숙해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