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CGV. 미러 넘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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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가는 도플갱어의 환영으로 이어지는 따뜻한 인연(3.5)
2025 칸영화제 감독 주간 초청작이자 2025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국내에 소개된 <미러 넘버 3>는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의 작품 중 처음 본 작품이다. 물의 원소이자 정령인 운디네 설화를 바탕으로 한 <운디네>(2020), 불을 모티브로 했다고 하는 <어파이어>(2023)에 이어 <미러 넘버 3>는 공기 혹은 바람을 모티브로 한, 원소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하지만 페촐트 감독을 들어보기만 하고 처음 접한 관객으로서 이러한 배경들을 모르고 보는 것이 영화를 이해하는 것에 더 도움이 되지 않나 싶다. 애초에 영화의 제목이자 주인공 '라우라(파울라 베어 분)'가 연주하는 피아노곡이 '모리스 라벨'이라는 음악가의 피아노 '거울 모음곡 M. 43'의 3번 곡 '바다 위의 작은 배'라는 사실을 아는 관객은 많지 않을 것이다. 원소 3부작 중 마지막이자 바람을 모티브로 했다는 배경이나 제목이자 라우라의 연주곡이 모리스 라벨의 '거울 모음곡 M. 43' 중 '바다 위의 작은 배'라는 배경은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곱씹을 때 영화를 더 풍부하게 해주는 듯하다. 오히려 영화를 보던 중 떠오른 이미지는 바람보다 도플갱어였기도 했으니 말이다.
영화 시작부에서 시골 마을로 연인과 함께 휴가를 가다 사고를 당한 '라우라(파울라 베어 분)'는 온전한 사람이기 보다 시체와 같다. 베를린에서 음악을 공부하며 졸업을 앞둔 상태이나 연인에 대한 그의 말과 마을의 중년 여인 '베티(바르바라 아우어 분)'와 지내는 동안 가족에게 자신의 상황을 알리지 않던 정황을 보면 그의 베를린 생활이 순탄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가족과 떨어진 채 생활해야 했던 베를린에서 자신의 곁에 유일하게 있는 연인에 대해서 터놓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정당한 관계는 아니었다는 라우라의 말은 프로듀서이기도 했던 연인과 관계가 연인하면 떠올리는 긍정적인 이미지와 관계보다 오히려 수직적이자 묘한 권력 관계를 상상하게 한다. 좀비처럼 초점 없이 베를린 거리를 헤매고 가방을 잃어버렸음에도 인지하지 못한 라우라에게 다른 프로듀서 커플과 가기로 한 휴가 계획을 그대로 종용하는 연인의 모습은 그들의 관계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뿐만 아니라 라우라가 사고를 당했음에도 가족에게 알리는 것이 아니라 사고 목격자인 베티와 지내고 싶다 말하는 모습은 가족과 어떤 문제가 있었든, 베를린 생활 중 문제가 있었든, 연인과 관계로 삶이 크게 망가졌든 어떤 사연이 있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다만 <미러 넘버 3>는 이러한 라우라의 과거를 암시할 뿐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음으로서 라우라와 베티의 관계에 전설, 설화, 신화와 같은 판타지적 이미지를 생성한다. 이러한 판타지적 이미지는 재밌게도 라우라와 베티의 관계에 따뜻한 분위기와 함께 미스터리의 서사로 서스펜스를 유발한다.
<미러 넘버 3>에서 가장 처음 미스터리를 느끼게 하는 장면은 차를 타고 가던 라우라와 집의 정문에서 지나가는 차를 본 베티가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순간적으로 남남인 것이 분명한 두 사람이 마치 엄마와 딸과 같은 혈연 관계, 즉 가족인 것처럼 비슷해보이는 착각을 느꼈다. 사고 이후 베티와 함께 있겠다는 라우라, 그런 라우라를 뭔가 갈등하는 것 같으면서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베티의 모습은 이러한 착각에 더 큰 착각을 쌓으며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가중시킨다. 아들 '막스(엔노 트렙스 분)'를 통해서 베티가 라우라에게서 자살한 딸을 혹은 자살한 딸의 그림자라도 바랐다는 사실은 비슷해보이는 두 사람과 미스터리한 분위기에 대한 충격과 함께 도플갱어의 이미지가 영화 전체에 드리워졌다. 라우라를 처음 본 베티처럼 식사 자리에서 처음 라우라를 본 남편 '리하르트(마티아스 브란트 분)'와 막스의 표정에서도 자살한 딸 혹은 누이가 살아돌아온 것처럼 놀라는 것과 동시에 베티가 라우라와 함께 지낸 것을 자신들에게 숨겼다는 사실에 걱정과 당혹감이 묻어있다. 베티, 리하르트, 막스에게 라우라는 자신의 딸을 닮은 도플갱어 같은 존재이지 않았을까?
영화를 보고 난 뒤 공기 혹은 바람을 모티브로 한 원소 3부작 중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는 도플갱어와 공기가 뒤섞여 삶에서 커다란 슬픔을 겪은 이들의 아픔, 그러한 아픔을 극복하고자 한 몸부림, 몸부림 이후 서로를 향한 인정과 이별로 이어지는 영화에서 따스함이 느껴졌다. 라우라, 베티, 리하르트, 막스 모두 삶에서 깊은 좌절과 슬픔을 겪은 이들이다. 남들에게 말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떠오르는 생각을 억누르는 것만 해도 버거운 트라우마이다. 각자였으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이들. 그런 네 사람이 어느 날 바람처럼 스쳐가는 인연을 통해서 만나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남인 것이 분명한 이를 딸처럼 대하면서. 그런 아내의 곁에서 기다리며 함께 견디면서. 그런 엄마를 보며 응어리를 꾹꾹 누르고 참으면서. 돌아가야 하는 베를린과 피아노를 잊으려 애쓰면서. 드러난 진실에 파탄이 나 트라우마에 다시 잠식된 듯한 관계는 서로를 인정하면서 이별하는 것으로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한다. 피아노를 쳤던 딸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졸업 공연을 하는 라우라를 보러 가 그의 연주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베티의 가족. 공연을 마치고 가족이 공연을 보러 왔는지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관객으로 온 베티의 가족을 보며 무대 뒤에서 미소 짓는 라우라. 이들의 모습은 대단히 기묘해 보이지만 동시에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트라우마로부터 극복할 수 있는 잠재적 관계성을 갖게 되었음을 느끼게 한다. 다시 마주할 날이 올지는 모르겠으나 동시에 서로 함께 했던 날들의 기억은 떠오르는 트라우마에 저항할 수 있는 여유를 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스치듯 흘러가는 바람의 이미지가 우리에게 주는 위안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