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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궁리인 Jul 31. 2022

너 아니어도 돼

무엇을 위해 했을까?


#1  검토 한 번 해봐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늘 위기상황이라 한다. 몇 세기에 걸쳐 변화될 일들이 불과 몇십 년 사이에 일어나고 급변하는 환경 변화로 장기 성장은커녕, 생존이 쉽지 않은 상시 경쟁의 파고 속에 놓여있으니 당연하기도 하다.


 OO사업이 태동한 지 얼마 안 되어 O사, Y사가 시장을 개척하고 놀라울 정도로 매출이 신장되던 때였다. 당시 고객 대상 온라인 쇼핑 업무를 했는데, 새로운 일을 벌이는 성향에도 맞았고 매출 신장도 재미가 있어서 신나게 일하던 때였다.


 어느 날 영업총괄 임원이 방으로 들어오라 한다. 자신의 말이 법이어서 팀장들이 힘들어하는지라 긴장하며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요즈음 OO사업이 각광받는 거 알지? 우리도 해 봐야 하지 않겠어?”하고 말을 던진다.


 느닷없는 이야기에 당혹해하면서도, O사나 Y사나 벌써 몇 년이 흘러 시장에서 나름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었고 비용, 인력 등 투입 대비 효과도 뻔하기에,


 

“예,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비용 대비 효과 등을 고려할 때, 우리 회사로서는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그래? 한 번 살펴봐” 한다. 수긍한 거 같기도 해서, 그냥 던지는 말인 줄 알았다.


 ‘전문성이나 비용 등 누가 봐도 아닌데’, 하며 물러났다.



#2  뻔한 일을 왜?         


 한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P임원이 자리로 오더니,


 “OO사업 검토하라는 것 왜 말이 없어?” 한다. 지난번 임원실에서 우리와는 맞지 않다고 이야기해서 끝난 거 아닌가 했는데, P임원은 여전히 미련이 있었나 보다. 답답했지만,


 “예, 내일 바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고객 대상 타깃 마케팅이 가능한 점과 혜택 제공을 통한 로열티 증대, 매출과 예상 손익 등 긍정적 측면과 함께 제품의 소싱과 가격 경쟁력의 한계, 운영에 필요한 인력과 비용, 사업 운영에 따른 상담 등 제반 리스크, 사업 지속 가능성 등을 정리했다.


 

 사업 추진 검토 안을 보던 P임원이 눈을 치켜뜬다.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 거 아니야? 우리 직원들 역량이 얼마나 우수한데…”


 “현실적인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력, 비용, 운영 대비 효과를 종합적으로 봤을 때, 사업 참여가 적절치 않은 것으로 사료됩니다.”


 기획, 상품 소싱, 운영 등만 해도 본부 단위 인력이 필요해 보였다. 금융 회사로서 지속적으로 막대한 적자가 뻔한데, 론칭 이후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인력, 비용 등의 지원 문제도 쉽지 않아 보였고, 승산 없는 싸움에 휘둘려 직원들 고생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내용을 보고 만만하지는 않구나 생각했는지 나가 보라 한다.


‘너무 뻔한 일인데 굳이 보고서로…, 이 건은 이제 끝났구나’ 싶었다.



#3 뒤통수 제대로 맞았네요


 몇 주가 흘렀다. 본부의 팀별 주간회의 내용을 보던 중, 눈을 의심했다.


 같은 본부 C팀의 업무계획 항목에 "OO업무 추진 및 운영”이라는 내용이 있었던 것이다. ‘어렵다고 이야기 끝난 내용인데’, 하며 어찌 된 내용인지 알아보라 했다.


 “부장님 아무래도 M팀장한테 우리가 뒤통수 맞은 거 같아요. 어렵다고 하니, P임원이 자신과 죽이 잘 맞는 M팀장한테 그나마 연관성 있다고 시킨 거 같아요. C팀 직원들도 M팀장이 안 되는 일 가져왔다고 패닉이랍니다” 한다. ‘말로만 듣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구나’ 싶었다.


 ”M팀장 이 건 어떻게 된 일이지요?” 나의 말에,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말씀 못 드렸습니다.” M의 스타일을 잘 아는지라 더 이상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엄연히 주무부서가 있는데 이렇게까지 하면서 추진해야 할 일인가? 하는 회의감에 울분이 치밀었다.



 결국, 사업을 론칭하고 언론홍보도 그럴 듯이 했다. 2, 3년 사업을 미미하게, 가까스로 운영하기는 했다. 상품 소싱, 가격, 운영 등 역량이 부족하고 지원도 거의 없으니 소규모 대행업체를 끼고 상당한 회사 비용을 써가며 할인 이벤트를 하는, 간신히 유지하는 수준이었다.


 고객 문의 등 운영하는 직원만 고생하고 결국 유야무야 끝나고 말았다. 그릇된 의사결정에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직장생활을 고지식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시 같은 상황이 와도 적절하지 않다고 윗분에게 보고 했을 것이다. 실익이 없는 일을 자신의 업적으로 어필하기 위해서 하거나 위에서 시킨다고 무조건 하는 일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위치가 올라간다고 의사결정 수준이 비례한다고는 할 수 없다.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걸맞은 책임감을 갖고 영향력과 파급효과를 고려해 심사숙고할 일이다. 자신에게 유불리만을 따지는 경우도 있는데 더 큰 문제이다. 의사결정의 오류로 회사에 손실을 입히거나 직원들이 불필요한 일로 장시간 수고를 하는 일이 거듭되어서야 되겠는가?


 의사결정 능력이 미흡하면 책이나 유튜브, 교육 등을 통해서 보완해야 하는데, 권력에 취해 이런 노력들을 백안시하는데 안타까운 현실이다.





 의사 결정 이렇게 하면 어떨까?


 열린 마음으로 부하직원들의 의견을 두루 경청해 상식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하자. 또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을 짚어줄 수 있는 통찰력과 선견력을 함양하자. 의사 결정 이후 실제로 사안이 진행되었을 때, 구체 운영 등 몇 수 뒤까지 보는 종합적 시각도 중요하다.


 때로는 신선한 발상으로 과감한 도전 테마도 제시해 직원의 역량을 키우고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자. 먼 훗날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직원들이 먼저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멋있는 상사로 자리하지 않을까?  

 


이미지 출처 : 제목 #1 #2 - SBS 스토브리그, #3 - SBS 스토브리그,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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