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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필 Zho YP Jul 25. 2016

바둑의 기원 3 - 티벳 바둑

조영필

티벳에 바둑이 있다. 이것은 참으로 쇼킹한 사실이었다. 동양 삼국의 좁은 인식 밖의 우주 한 공간에서 티벳 바둑은 갑자기 타임캡슐처럼 그렇게 우리 한가운데 떨어졌다.


그런데 티벳에 바둑이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또한 당연한 것이었다. 중국에 바둑이 있는데, 중국에 인접한 티벳(현재는 중국의 땅)에 바둑이 없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은 또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바둑이라는 반상 유희는 이상하게도 딱 거기까지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장기나 기타의 오락의 경우에는 어디서 생성되든지, 그것의 변형과 유물들을 전 세계에서 다양한 시대로 확인할 수 있는데, 유독 바둑만은 동양 3국의 좁은 영역 바깥으로의 전파가 일어나지 않았고, 또 유물이 잘 확인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최근세에 접어들어서야,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이 반상 유희는 왜? 이러한 폐쇄성을 보이게 된 것일까? 게임 자체의 문법이 타문화권에서 이해되기 어려운 특수성이 내재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계속적인 탐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티벳의 바둑이 우리에게 던져준 가장 첫 번째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것을 자부심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우리가 항상 순장바둑을 떠올리게 되면 화점에 돌을 다 채운 다음에 바둑을 둔다.(예전에 순장바둑을 둘 때, 16점 또는 17점이나 먼저 두는지는 정말 몰랐다. 그냥 상식적으로 보이는 화점 9개에 돌을 먼저 두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전투를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 한국바둑은 전투적이다. 이것이 순장바둑에 대한 통상의 상식이자 관념이었다. (순장바둑만의 특별한 계가법이 따로 있는지 조차는 정말 몰랐다.)


그리고 이러한 순장바둑의 초기 포진은 바둑 공간과 효율에 대한 사고의 제한을 가져와 한국 바둑의 자생적인 실력 향상을 저해하였다고 생각해왔다. 따라서 고 조남철 선생에 의한 일본식 자유 치석제의 도입은 당연하면서도 처절한 선각자적인 결단이 아닐 수 없었다. 아마 그것이 한국 현대바둑의 뿌리가 되고 나무가 되어, 조훈현이 되고, 이창호가 되어 세계 바둑의 지평에 한국 바둑이라 할 만한 명패를 내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17줄 바둑판에 12 배자(排子, 配子)인 티벳의 바둑은 우리에게는 오히려 우리 바둑의 고유성을 다시 보게 해주었다. 바둑판에서 유사 이래 끝없이 16 배자의 전통을 고수해온 우리 선조들의 고집에 대해서, 기존에 가졌던 부정적인 느낌(순장바둑의 초반 배자의 규율을 우리 선조들 스스로 해제하여 바둑판에서의 자유를 쟁취하지 못하였을까? 하는 아쉬움)을 넘어서, 무언가? 우리 바둑의 혈통으로 소중한 자산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우리 바둑의 족보를 확인하는 차원을 넘어서, 바둑의 기원과 관련된 오래된 의문에 대한 어떤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를 우리에게 주었다. 아마 티벳 바둑이 그 지형적 환경으로 타임캡슐이 되었다면, 우리의 순장바둑은 우리의 정신적 보수성으로 인해 16 배자의 타임캡슐을 만들지 않았을까?


티벳 바둑의 특징과 그 시사점을 하나씩 검토해본다.


1) 티벳 바둑의 바둑판이 17줄이란 것은 티벳 바둑이 고대 바둑의 모습을 갖추고 있음을 반증한다.
 * 한단순의 예경에 17줄 기록이 있고, 망도의 바둑판이 17줄이다.


2) 티벳 바둑은 초반에 12 배자를 한다. 우리 순장바둑은 16 배자를 한다. 이것은 초반의 배자가 단지 국가별 바둑의 특징에서 그치는 것뿐이 아니라 바둑의 기원과 관련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 한국(순장바둑)이 16 배자인 반면, 중국은 4 배자, 일본은 0배자이다. 중국의 경우에는 꼭 4 배자의 대국만 있는 것은 아니고 자유 포석의 기보도 있다.


3) 티벳 바둑의 바둑판에는 배자가 되는 교점에 꽃무늬가 그려져 있다. 우리 순장 바둑판의 화점에도 꽃무늬가 그려져 있다. 보통 우리가 쓰는 바둑판의 화점에는 9개의 교점이 조금 굵게 되어있어, 원래가 꽃무늬인 줄은 몰랐다. 꽃이 있기 때문에 화점(花點)이라 할 이 교점은 순장 바둑판에서는 제4선에 16개, 중앙에 1개 도합 17개가 그려져 있다. (중앙의 사방에 4개가 더 있어, 21점인 바둑판도 있다.)
 * 화점(花點)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만의 용어이다. 이를 가리켜 중국은 성점(星點), 일본은 호시(星)라 하고, 영어로는 star point라고 한다.


4) 보통 티벳 바둑을 소개하는 글에서 보통 그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는 사실인데, 티벳 바둑에는 바둑돌의 크기가 두 가지이다. 초반에 배자하는 바둑돌은 보통 바둑알보다 더 크다. 이 돌은 'Bo'(또는 Spo)라고 하는데, Peter Shotwell은  'Scarecrows'(허수아비) 또는 'Protectors (of your field) ' (보호자)의 뜻이라 채록하였고, Dralha Dawa Sangpo는 'Markers'(표지)라고 하고 있다.


'Protectors (of your field)'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필자에게는 이것이 또 다른 뜻 'Markers'와 합하여 통상 우리가 순장바둑에서 화점의 다른 표현으로 장점(將點, 丈點)이라고 하는 것이 쉽게 떠올랐다. 이것을 왜 장점이라고 하는지도 모른 채, 장점이라고 하고 있는데, 중국문명의 서쪽 끝 티벳에서 그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다.


5) 배자 후에 착수되는 돌은 Bo(Spo)에 비해 작은 돌인데, 'Diu'(또는 Ju)라고 한다. 그 뜻은 'Small, tough rocks'(작은 거친 돌)이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바로 이제부터이다. 이 돌들은 현대바둑에서처럼 아무 곳에나 자유롭게 착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착점의 제한이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Play always begins at the corners, and you must play within one intersection of a previous play or bo (a knight’s move is OK)(!)" (Peter Shotwell, 'Go in Tibet')


여기서 'within one intersection'(한 교차점 이내)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일단, 한 칸으로 타협하여 해석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날일자 간격(馬의 행마)이 또한 인정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Diu(ju)의 착수는 선행 점 또는 Bo(Spo)의 주변에 착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배자 이후의 착수 규칙에 대해서 일부 학자들은 바둑을 잘 모르는 사람이 옆에서 구경하여 이러한 증언을 한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옆에서 구경한 것에 불과한 문외한들이 어떻게 사활의 특수 규정이나, 계가법을 잘 알 수 있단 말일까? 필자는 이것이 바둑의 초기 형태를 밝혀줄 결정적인 단서라고 생각한다.


월간바둑 2003년 11월호에 나오는 남치형의 번역글(Peter Shotwell, 'Go in Tibet')에 보면,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다.


"몽골 지방에서는 큰 돌들을 '황소(bulls)'라고 부르고, 작은 돌들을 '개(dogs)'라고 부르며, 이로 인해 그 지역의 바둑은 아씨아 포포바(Assia Popova)가 그의 몽골지역의 놀음에 관한 논문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문자 그대로 개들이 그들의 소중한 황소를 지키기 위해 울타리를 치는(surrounding) 게임이 된다."


화점에 먼저 놓인 큰 돌들은 그 이후에 놓이는 작은 돌들과 서로 상응하여 게임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즉 화점에의 배자는 단순히 포석의 역할을 하는 수준만은 아닐 것이며, 그 이상의 게임적 기능이 있는 것이다.


사전 배자는 바둑의 초기 형태의 유제가 틀림없다. 마치 우리 몸속에 맹장이 흔적 기관처럼 남아 있듯이. 초기에는 배자가 게임의 진행에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어느 시점에 게임의 목적과 규칙이 변화하였다. 더 재미있고, 더 보편적인 방향으로 게임의 목표가 조금씩 변화해 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화점의 배자는 게임의 진행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쉽게 스스로의 습관을 바꾸지 않는다. 어떤 의식처럼. 티벳에서는 그 지형적 고립뿐만 아니라, 뵌교(Bon, 本敎)라는 전통 종교에 의해 이의 합리적 변형이 자각되지 않았을 것이다. 티벳이라는 제한된 지역 내에서는 모두가 동일한 조건이었고 또한 지적 유희를 즐기는 것에 불과하였기 때문에 규칙을 바꾸어야 할 이유가 분명치 않았을 수도 있다.


규칙의 변화는 또 그 합리적인 진화는 무한 경쟁의 사회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다음 편에 계속)


(201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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