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0일
엄마는 국립암센터 전원을 위해 초진을 보기 전날, 부산에서 서울로 홀로 ktx를 타고 올라오셨다.
언니가 같이 올라가자고 했지만, 엄마는 혼자 가고 싶다고 하셨다 한다.
아마 엄마 혼자 생각하실 게 많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복수가 많이 찬 상태라 몸이 버거울뿐더러, 엄마가 홀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 불안감을 가질까 생각했다
서울에 도착하면, 이제 시작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실감이 들겠고,
텅 빈 우리 집에 혼자 앉아 퇴근할 나를 기다리기까지 엄마가 얼마나 공허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친구인 지훈이가 떠올랐다.
부탁을 해볼까..? 싶었다.
아픈 엄마가 지금 상황에 내 남자친구를 처음, 그것도 내가 없는 상황에서 처음 만난다는 건 어떻게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고 나혼자만의 시나리오라고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지훈이라면 엄마를 잘 케어해 줄거란 생각이 들었다.
지훈이라면 엄마도 만나고싶어 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지훈이와 나는 2년 만난 연인관계로, 엄마가 아프기 전부터 지훈이 얘기는 수시로 해왔다.
엄마는 지훈이를 언제 한번 보고 싶어 했고, 얘기만 들어도 “지훈이 참 괜찮은 친구다”라고 곧잘 말하셨었다.
“지훈아. 나.. 일요일 데이 근무라, 지훈이가 혹시 나 퇴근할 때까지 엄마 서울역에서 모시고 같이 점심 먹어 줄 수 있어?”
“그럼! 너무 잘 모실 자신 있어! 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잘 에스코트해드릴게요”
“엄마. 지훈이가 엄마 서울역에 데리러간대, 괜찮아..?"
“이왕 볼 거, 좀 쌩쌩할 때 보고 싶었는데, 초면이 지금 같은 상태라 좀 그렇네.. 그래도 지훈이만 괜찮으면 엄만 괜찮아”
지훈이라 믿음이 갔다.
엄마 혼자 올라오셔서 우리 집에 홀로 계실 거 생각하니 마음이 안 좋았다.
그저 이 두 가지 이유였다.
그렇게 둘은 내가 없는 상태에서 처음 만났다.
내가 일하는 동안, 지훈이는 정말 잘 엄마를 모신 듯했다.
같이 밥도 먹고 맛있는 디저트도 포장해 왔다.
내가 퇴근할 시간에 맞춰서, 엄마와 지훈이는 나의 직장인 성모병원 앞에 차를 주차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와 내가 뒷좌석에 타서 조잘조잘 병원 관련 얘기를 하는 동안
지훈이는 묵묵히 운전에 집중했다.
한 번쯤 끼어들고 대화에 참석할만한데, 지훈이는 모녀의 은밀한 이야기를 지켜주려는 듯, 조용히 운전만 했다.
알고 보니 엄마를 만난 이후부터 쭉 엄마가 아픈 거에 대한 얘기는 먼저 안 꺼내더란다.
분명 알고 있을 건데, 먼저 얘기하면 괜히 서로 어색해질 거란 생각이었는지
엄마한테 다른 유쾌한 얘기, 본인의 얘기를 들려줄 뿐, 병원얘기, 엄마가 아픈 얘기는 하지 않았고
그 모습이 엄마는 참 기특했다고 한다.
배려심이 남다른 아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 와중에, 같이 길을 걸을 때면
엄마를 온몸으로 에워싸고 누군가에게 부딪히지 않게,
먼저 길을 개척해서 엄마는 편안하게 걷기만 하면 되게끔 에스코트했다고 한다.
그의 유쾌한듯 섬세한 배려 덕에 잠시나마 웃은 하루였다.
진심으로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