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7일
어제 교수님 회진을 돌면서 전이가 많이 진행된 상태라 수술은 바로 어렵다며 항암을 먼저 시작하자고 했다.
항암을 시작하기 전 복수먼저 빼야하는데, '피그테일'이란 관을 엄마의 허리 양옆에 꽂을거라고 했다.
피그테일 삽관을 진행하면서, 복수를 일부 채취해 조직검사를 나갈거라고 했다.
'피그테일'이라니... 내가 일하는 병동에서도 피그테일을 꽂고 있는 환자들은 많다.
피그테일은 이름그대로 돼지꼬리처럼 생겨서 잘 막히기도 막히고, 삽관이후에도 지속적인 통증 때문에 환자들이 진통제를 많이 찾는다.
언제까지 관을 갖고있어야 하냐고 물으니, 의사는 "복수가 안나올때까지 계속 갖고있을건데, 암덩어리가 배안에 존재하는 이상, 빼도 결국 또 다시 계속 찰것"이라고 했다.
이 불편한 관을 한쪽도 아니고 양쪽에다 꽂은 채로 그 힘든 항암을 견뎌야한다고..?
엄마에게 놓여진 숙제들 하나하나가 큰 산을 넘는것 마냥 너무 험난하게 느껴지고 마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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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병원에선 "내일(12/7) 피그테일 꼽고 조직검사 결과 나온뒤 항암을 시작할건데,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2주 가량 소요되니, 그동안은 할게없으니 집에 잠시 가있어도 된다" 라는 스케줄 설명을 들었다.
엄마와 나는 의사에게 앞으로의 치료 방향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병원 로비를 걸었다.
"병원이 왜이리 썰렁하노.. 너거 둘째이모 유방암 여기서 치료받을 때가 10년도 더 지났는데, 어째 병원이 그때보다 더썰렁한거 같노.. 그래도 항암하면 컨디션도 많이 떨어질건데, 내 고향인 부산에서 치료받는게 맘 편하겠지. 너거 이모들도 다 근처에 있고 친구들도 다 부산살고. 집에서 병원 왔다갔다 하기도 좋고. 그래도 주원이 니가 서울 큰병원에서 일하는데 서울가야하나 싶기도 하고.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하네.."
딜레마였다.
전국 유명한 명의를 찾아서 지금이라도 전원하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엄마를 빨리 안받아줄지 모른다.
괜히 병원을 옮기려다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한 채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까봐 더 망설여졌던것 같다.
난소암은 진행속도가 빠른 암이라 하루빨리 치료를 시작해야했다.
항암은 이미 짜여진 프로토콜이 있어, 어느 병원이든 똑같다고 했다.
수술이 강권이다.
고민의 무게에 비해 고민할 시간이 너무 없었다.
피그테일 삽관까지 하루도 안남은 상황.
새벽내내 가족모두가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은 일단 예정대로 피그테일 삽관은 진행하자. 어차피 해야하는 거면 병원을 옮겨서도 해야하는것 아니냐. 조직검사 결과나오기까지 2주 가량의 시간이 남으니 그동안 명의가 있는 병원에 예약을 해서 진료를 보자고 얘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렇게 12월 7일 아침이 됐고,
엄마는 피그테일 삽관을 앞두고 겁이 났는지 나에게 빨리 병원으로 와서 잠시나마 엄마 곁을 지켜달라고 했다.
급하게 병원으로 향하는 택시안에서, 문득 의문 하나가 머릿속에 번쩍 들어 국립암센터(난소암 명의가 있는 곳 중 하나)에 전화를 했다.
거기서 충격적인 말을 들었는데 조직검사를 타병원에서 진행을 하게 되면, 그 결과가 나오는동안 진료예약이 아예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왠만하면 치료중간에 전원을 하는것보다, 치료를 시작하기전에 옮기는게 빠른 진료 예약을 하는데 있어 조금더 유리하다고 했다.
그때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지금 피그테일 삽관 내려간다고. 너 어디냐고 그러셨다.
"엄마!!! 일단 중단!!!! 일단 오늘 안한다고 해!!!! 나 병원 거의 다왔어. 가서 얘기하자!!!!! "
엄마는 당황하며 "왜 .. 그냥 여기서 하자.. 간호사 옆에서 기다리고 있고 준비다됐대.. 미안하게 어떻게 오늘안한다고 그래..."
"아니 엄마 나 거의 다왔어!!! 일단 나랑 먼저 얘기해 제발!!!!"
그렇게 병원에 허겁지겁 도착했고 마침 회진시간이였다.
우리가 전원을 고려해 피그테일 삽관을 미뤘다는 것은 이미 교수님, 병동 수간호사 귀에 들어갔다.
"아 진짜 죄송해요.. 제가 엄마를 포기할수가 없어서... 아 진짜 너무 죄송해요.. 조금만 시간을 주시면 안될까요? "라고 교수님께 말하며 그자리에서 울어버렸다. 엄마도 그런 나를 보면서 눈시울이 빨개졌다.
병원 측도 우리 심정을 이해하고 고민할 시간을 하루 더 주기로했다.
엄마가 점심까지 병원 로비로, 보호자가되는 가족인 나, 언니, 이모 둘(정임이모와 막내이모) 모두 모여서
다같이 얘기하고 최종결정을 내리자고 했다.
그렇게 급히 병원 로비 1층에서 우리는 가족회의를 했다.
지금은 무엇보다 엄마의 의사가 제일 중요하다.
"솔직히 나 서울가고싶어. 나 진짜 명의란 명의한테가서 치료받고 싶어. 안그러면 내가 너무 억울해서 미칠거 같아. 근데 문제는 돈이야. 서울까지 왔다갔다하면 다 돈인데. 내 처지에 무슨 서울까지 왔다갔다해.. "라고말하며 평소 잘 울지 않는 엄마가 가슴을 치며 울부짖었다.
너무 괴로웠다.
아픈것도 서러운데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엄마가 불쌍했고 엄마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서 괴로웠다.
나도 가진것 하나 없지만,
안그래도 억울한 우리엄마를 더 억울하게 하고 싶지않았다.
빨리, 최대한 빨리 명의에게 진료를 볼수있도록 예약해야한다.
그것이 내가 할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