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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나다사는 마케터 Z Jan 15. 2024

내 퇴직금이 우버와 함께 떠났다

[D+1]식은땀나는 실수로 시작한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 말이 씨가 된다고요

"가방 잃어버리지말고."

가족들과 인사하던 시간, 아빠가 건넨 한마디...걱정하시는 마음이 전해져서 여상하게 알겠노라 대답했다.

그리고 그게 현실이 될 줄은 몰랐지.


허리디스크 환자의 13시간 비행

13시간의 비행이라는 걸 너무 우습게 봤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 눈물이 다 찔끔나더라.

허리벨트를 단단히 착용했고, 일부러 엑스트라 레그룸을 예매해 중간중간 자리에서 일어났는데도 그랬다.
토론토 피어슨 국제 공항(YYZ)에 도착했을 때는 아무것도 안했는데 이미 체력이 바닥을 치는 상태였다.
피곤하면 아무래도 실수가 늘어날 수 있으니 공항에 내렸을 때는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그나마 토론토 피어슨 국제 공항이 좋은 점은 옆으로 새서 여기가 어디지? 하고 헤맬 일이 없다는 것... 입국신고, 워크퍼밋신고, SIN넘버 발급까지 컨베이어 벨트타고 움직이듯 차례로 끝냈다.

짐도 SIN넘버까지 모두 발급받은 후에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짐이 없는 상태에서 영어로(신경쓰며) 대화를 해야한다는 건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달까.


인종차별적 대화를 못 알아들으면

영어로 여행을 하거나 기본적인 대화를 하는데는 무리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기보다 머리에 힘줘서 해석-대답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

그래서 입국 심사를 위해 정신을 빠짝 차리고 있는 것이었는데...막상 내 입국심사에 대한 인상은 딱히 어려운 질문은 안한다는 느낌.

워킹홀리데이를 하는 한국인은 매우 많기 때일까 심지어 가지고 간 보험서류와 통장잔고서류는 거들떠보지도않았다. 다행이긴한데 어쩐지 억울한 이 마음...
사관은 내게 캐나다가 처음인지, 워킹홀리데이에서 뭘 할 건지, 얼마나 머물건지, 한국에 있을 때는 뭘 했는지를 물었다. 아침이어서 그랬는지, 그 사람이 한국에 익숙한 사람이어서 그랬는지 포멀한 인터뷰라기보다 그냥 그 직원이 서류 작업하는 동안 말을 거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는 뭘 했어?"라기에

"마케터였어. 그래서 캐나다에서도 그런 잡을 잡으면 좋겠어"라는 대답 정도. 처음엔 말을 못 알아들었는데 그 사람이 이어서

"오 그래? 근데 너 중국 만두가게에서 만두 잘 빚을 것 같아."라더라.

아니, 이거 인종차별아니야?


약이 안 걸렸으니 봐준다

입국심사관이라서 뭐라고 쏴붙이지도 못하니 심지어 한국인 관리자를 불러다가 자기가 이렇게 말했다고 설명해주더라.

머릿속에 여러가지가 지나갔지만 결국 No way하고 넘기고 말았다.

사실 입국하면서 가장 걱정인 것은 내 디스크 진통제였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이 약들 가져가지 못하면 내 워킹홀리데이의 앞 날에 먹구름이 끼는 것이니까! 사전에 찾아보니 캐리어를 열어서 검사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처방약을 넣으려면 처방전을 받아야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결국 약으로 도박을 할 수는 없어서 일단 처방전부터 진단서까지, 받을 수 있는 서류는 다 받았다.(그리고 서류는 확인하지도않았다.)

약간의 문제가 있긴했지만 결과적으로 입국심사를 잘 통과하고 나니 기운이  빠졌다.


 넘어 산

사실 내가 넘어야 할 문제는 더 있었는데...

그러니까 그 문제는, 내가 단기 룸렌트를 계약하면서 체크인 시간 전에 짐을 맡기는 것이 가능한지 확인하질 못한 죄로부터 시작한다.
"?
23kg×2+10kg, 도합 56kg의 무게를 들고 오전 9시에 도착하는데, 오후 4시 30분에 체크인이 가능하다고요?"
처음엔 많이 당황했는데 이미 벌어진 일을 어쩌겠나.
아무튼 우버를 부르는 데에도 결제를 하는 데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비록 숙소가 아니라 근처 짐 맡기는 곳으로 향해야했지만. 처음 만난 우버기사는 무척 친절한 사람이었다. 짐을 옮겨주고 무거워보이는 백팩을 뒷자리에 둬도 된다고 안내해주고.

가는 길은 조용했던데다 마을마다 뛰어다니는 Squirrel(내가 영어를 쓰고싶은게 아니라 원래 다람쥐도 청솔모도 아닌 종이라고했다)은 귀여웠다.

짐맡기는 곳에 도착해서도 문제 하나 없었다. 보관소는 내 숙소와 가까웠고 직원도 친절해서, 웃으며 "다른 물건은 더 없어?" 하고 물었을 때, "없어~ 고마워."하고 대답하다가, 어라?내 백팩은?


우버에 태워보낸 내 퇴직금

아뿔싸, 우버기사가 친절하게 "백팩은 뒷좌석에 둬~" 라고 한 말을 아무 생각없이 들어버린게 문제였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쳐버린 사고에 순간 머리가 하얗게 비었다. 백팩 안에는 내 카드들과 지갑, 신분증까지 전부 들어있었으니까! 물론 당장 쓸 카드와 환전해 온 현금은 몸에서 떼어놓지않았지만, 한국 계좌와 연결된 현금 인출 용 카드들이 문제였다.

한국카드는 캐나다 현지에서 발급 받을 수가 없으니, 이걸 잃어버리면 내 생활자금이 묶이는 상황. 내가 어떻게 받아온 퇴직금인데!

잃어버리고 잊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게다가 우버라는게 정식으로 회사에 등록된 사람들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이용하는 서비스라서 이 가방을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 단 순간에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실제로 우버의 서비스 정책에도 잃어버린 물건을 돌려주는 것에 대해 책임 소재가 없다고 명시되어있다.
​쌀쌀한 도로 위에 서서 허망하게 우버가 떠나버린 장소를 바라보던 기분이란...!


일단은 침착(?)하게

일단 정신을 차리고 나서 우버 서비스 쪽에 연락을 넣었는데 연락이 닿질 않았다.(우버기사에게 직접 연락하기는 쉽지않다)

그렇게 전화 세 번, 우버기사에게 내 물건을 두고내렸다는 소식을 남겨달라는 메시지 세 번.

숙소였다면 안에 들어가서라도 기다렸을 텐데, 내린 곳이 짐보관소라 물건을 받아달라고 할 수도, 추운 바람을 피할 데도 없었다. 찬바람을 그냥 맞으며 거리에서 발을 구르길 한참.

네번째 메시지를 보내려는 순간 '그 차'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 그때의 안도감이란!

물건을 돌려주러 온 우버 기사에게 팁을 주고 (나는 $15를 요구받았는데, 잔돈이 없어서 그냥 $20를 줬다.)나의 멍청 비용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쉬운 길을 잃어버리고 1년을 힘들게 살 뻔했는데 이정도는 양호하지, 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우버 탈 때, 아니 어떤 운송기기를 타더라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큰 러기지가 아니라면 꼭 뒷좌석에 짐을 놓는 나같은 바보 짓을 하지 말길.

이게 진땀나는 하루의 끝이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이후부터도 은행 계좌만드는 일부터 이사까지 진땀나는 일이 가득 펼쳐져있었다, 아이고.

이거 꿈과 희망이 가득한 워킹홀리데이가 맞겠지?

그냥 내돈내산 고생길인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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