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보도지침]
여러분은 이 방종한 시민들을 방종만 하며 지켜보지 말고 계속 생각하세요. 계속. 이들이 왜 이렇게 방종하게 되었는지. 우리는 어떡하면 이들과 달리 방종하지 않을 수 있는지, 계속 생각하세요, 계속.
연극이 시작되자마자 누군가 이렇게 오만하고 건방진 대사를 날린다. 관객을 개, 돼지로 보는 말투다. 곧이어 법복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온다. 그렇게 무대는 재판정이 된다. 월간 <독백>의 발행인 김정배와 대한일보 기자 김주혁의 행동이 ‘국가보안법 위반’, ‘외교상 기밀누설’, ‘국가모독에 대한 해당행위’에 해당하는지 판단하는 자리다. 무시무시한 죄목이다. 1965년 시리아 정부 최고위직으로 이스라엘 스파이 활동을 하다 붙잡힌 '엘리 코헨'의 재판이 이랬을까?
이 연극 [보도지침]은 실제 재판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실제 사건의 내용은 가져왔지만 인물들의 이름이나 관계는 허구다. 즉 자신이 다니는 신문사로 온 ‘보도지침’을 모은 ‘김주혁’이나 그 ‘보도지침’을 자신의 잡지 <독백>에 실은 ‘김정배’, 두 사람을 변호하는 변호사 ‘황승욱’과 두 사람과 대학 연극부에서 함께 활동했던 검사 ‘최돈결’, 네 사람의 대학 은사이자 연극부 선배인 재판장 ‘송원달’은 모두 허구의 인물이고 그들의 관계도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마냥 사실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오세혁 작가가 쓴 이 작품에는 보도지침 사건의 실제 주인공인 김주언과 사건의 변론을 맡았던 한승헌 변호사가 참여해 자문을 했다. 사실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작품이라는 말이다. 2016년 초연 이후 꾸준히 관객을 만나고 있다.
1986년이라면 먼 역사처럼 느껴지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거의 40년 전이니까. 군부독재와 고문, 언론탄압 같은 것들을 겪은 사람보다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많아졌다.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애써 찾아야 그 서사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즐겁고 재미있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특별히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눈길을 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은 경제학에서만 적용되는 문장이 아니다.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권력은 단 한 번도 자신들의 의지로 힘을 나눠준 적이 없다. 프랑스혁명이나 4.19, 5.18 같은 점심 값을 지불한 후 ‘시민들이 되찾아온 것’이다.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누군가가 지불한 점심값 덕분에 마치 우리가 공짜 점심을 먹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것도 아니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권력은 언제나 기다렸다는 듯 결실을 거둬가 버린다.
루이 16세를 처형할 정도로 강력했던 프랑스혁명은 나폴레옹 1세의 등장으로 묻혀 버렸고, 이승만 독재 정권이 사라져야 할 길을 알려 준 4.19 혁명은 권력을 탐한 군인들의 군사정변으로 눈물을 흘려야 했다. 도시 전체가 열흘 동안 자국 군대에게 유린당하면서도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아직도 틈만 나면 훼손당하고 폄하된다. 프랑스혁명을, 4.19를, 5.18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싸우고,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투쟁하여 오늘의 프랑스와 한국이 되었다.
그러니 지금, 우리는 이 1986년의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볼 필요가 있다. 언제든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너무도 쉽게 ‘언론의 자유’를 가져가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정에서 만난 인물들이 대학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연극은 보도지침에 관해 날카로운 견해를 주고받는 재판 사이 과거 연극부 회상이 삽입된다. 주제의 무거움 때문에 지구 반대편까지 가라앉으려는 분위기는 연극부의 회상 장면으로 다시 활기를 찾는다. 균형을 잘 잡는 저울처럼 재판 장면과 연극부 회상이 교차된다. 그 과정을 통해 각 인물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그들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도 짐작하게 된다. 그들의 대화 중 지금은 김주혁과 김정배를 고발하는 입장인 최돈결의 말이 마음 깊이 들어온다.
"나라가 틀렸어. 우리 헌법에는 표현의 자유도 있고 사상의 자유도 있어. 하는 안 되는 연극도 없고 보면 안 되는 책도 없어. 미국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이런 말을 했다. 신문 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라고 한다면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고."
이 말을 들은 정배가 대답한다.
이 새끼! 이 멋있는 새끼! 너같이 훌륭한 새끼가 판검사 새끼가 돼야 해!
다시 말하지만 이 연극, 가볍지 않다. 50대 이상 관객이라면 ‘그땐 그랬지’라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사건이지만 이전 세대들에겐 ‘도대체 뭐라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기 쉬운 소재다. 나라에서 신문 기사를 하나하나 수정하고 검열했다니 믿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불과 40년 전에 이런 일이 있었고, 앞으로 있을 수도 있으며, 절대 그렇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무거운 주제지만 가볍게 만드는 엄청난 솜씨를 부려 100분 내내 소소한 웃음이 끊이지 않으니 마음 놓고 한 번쯤 찾아보길 권한다. 친구 사이로 나오는 네 배우의 합도 훌륭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멀티맨으로 나온 배우 덕분에 낄낄거리다, 등골이 서늘하다 냉온탕을 번갈아 드나드는 기분이었다.
네 친구의 운명을 바꾼 브레히트의 ‘갈릴레이의 생애’ 중 한 문장이 이 극을 관통하는 마음을 잘 전달해 준다.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을 권력자들이 자유롭게 말하도록 내버려 둘 줄 아는가? 나는 망원경 앞에서 새로운 별을 보고 있는 자네의 모습이 화형의 장작더미 위에 서 있는 모습으로 보이네. 제발 진리를 말하지 말게, 갈릴레이."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안전할 수 있다. 하지만 진실을 말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사람들도 있다. 진실을 말하면 핍박받고 내쳐지고 조리돌림 당할 것을 알면서도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역사는 그런 사람들이 한 땀 한 땀 만들어 왔다. 그런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드는 연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