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해장국'이라고 부르는 음식들이 있습니다. 콩나물이나 북어, 고기 육수 등을 이용한 '국'의 형태가 많습니다. 지난밤 과음으로 속이 좋지 않을 때,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두통이나 피로감 등을 동반한 숙취 증세가 있을 때, 그것도 아니면 그저 맛이 좋아서 해장국을 먹습니다. 물론 '진정한 술꾼'들은 해장국을 먹으며 함께 반주를 드시기도 합니다만 저는 아직 그 경지에 오르지는 못했습니다. 저로 말하자면 술은 편안한 속일 때 시작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ㅎㅎ
외국에는 '해장 칵테일'이라는 음료의 종류가 있습니다. 토마토 주스와 맥주가 들어간 '레드 아이'나 브랜디와 베르무트를 섞어 만드는 '콥스 리바이버'등이 '해장 칵테일'에 들어갑니다. 오늘 이야기할 블러드 메리(Bloody Marry) 역시 해장 칵테일의 대표 주자입니다. 술 마신 다음날 또 술을 넣은 칵테일이라니.....
그곳은 진정한 술꾼들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멀쩡한 속으로 술을 마신다고 가정하면, 블러디 메리는 어쩐지 몸에 좋을 것 같은 인상마저 풍깁니다.
토마토란 몸에 좋기로 유명한 채소가 아니던가요. 보드카가 들어가긴 하지만 소량이라, 겉으로는 티도 안 납니다. 이 술에 '블러디'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토마토 특유의 빛깔 때문입니다. 붉은 색깔에서 '피'가 떠올라 '영국 여왕 '메리 1세'의 별명인 Bloody Marry를 이 칵테일의 이름으로 정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렇다면 '메리 1세'는 누구일까요?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길래 'Bloody Marry'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이 붙었을까요?
영국 역사에서 '메리 1세'로 불리는 사람은 2명입니다. 1543년부터 1567년까지 스코틀랜드의 왕으로 살았던 '메리 1세'와 1553년부터 1558년까지 잉글랜드의 왕이었던 '메리 1세'가 있습니다. 헷갈리지요? 분명 다른 사람이지만 모두 '엘리자베스 1세'왕과 관계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메리 1세는 엘리자베스 1세의 5촌 조카이고, 잉글랜드의 메리 1세는 엘리자베스 1세의 친언니입니다.
그리고 이 칵테일의 유래가 되는 Bloody Marry라는 별명이 붙은 인물은 두 번째, 엘리자베스의 언니인 잉글랜드의 '메리 1세'입니다.
'잉글랜드의 왕 메리 1세'는 '헨리 8세'와 스페인의 공주였던 '캐서린'이 결혼하여 낳은 딸입니다. 헨리 8세는 잉글랜드의 왕이자 아일랜드의 영주였습니다. 메리가 출생할 당시, 영국과 스페인은 모두 교황의 말을 잘 듣는 가톨릭 국가였습니다. 메리는 첫째 딸이라 나름 관심을 받기는 했지만, 시대가 그렇듯 왕이 원했던 것은 '아들'이었습니다.
캐서린이 아들을 낳지 못하고 계속 유산하는 사이, 왕은 왕비의 시녀였던 '앤 불린'과 사랑에 빠집니다. 이 스토리는 워낙 유명해서 '천일의 앤'이나 '천일의 스캔들' 등 영화로도 몇 번이나 만들어졌습니다.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 불린과 결혼하려는 헨리 8세를 교황이 막아섭니다. 교황은 이혼을 허락해주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자 헨리 8세는 '교황과의 이별'을 선언하고 영국 국교회를 만들어 제 갈 길을 가버립니다. 헨리 8세는 당당하게 케서린과 이혼합니다.
이혼만으로는 성에 안 찼는지, 케서린을 지방으로 내쫓고, 유일한 딸인 '메리'를 만날 수 없게 만듭니다. 딸 메리의 신분도 '공주'에서 '사생아'로 바뀌고 왕위 서열에서도 밀려나게 됩니다. 메리가 영국 국교회나 신교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었겠죠. 헨리 8세와 앤불린이 결혼하여 얻은 딸이 훗날 엘리자베스 1세가 되는 '엘리자베스'입니다. 메리는 엘리자베스의 시녀로 살아가는 수모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 제목이 '천일의 앤'인 것처럼, 앤불린과의 사랑도 짧게 끝납니다. 헨리 8세는 그녀와의 결혼이 '마법'에 의한 것이었다고 선언하고, 앤불린을 처형해버립니다. 이제 엘리자베스도 언니 메리와 비슷한 처지가 됩니다. 영국 국민들이 앤 불린을 '창녀'라고 불렀다고 하니 오히려 메리보다 더 열악한 처지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헨리 8세는 앤 불린의 시종이었던 제인 시무어와 결혼하여 결국 '에드워드'왕자를 얻습니다. 안타깝지만 제인 시무어는 출산 후유증으로 죽습니다. 헨리 8세는 3번 더 결혼합니다만 자녀는 메리, 엘리자베스, 에드워드뿐이었습니다.
헨리 8세는 에드워드를 스코틀랜드의 왕 '메리 스튜어트'와 결혼시키려 합니다. 그렇게 되면 에드워드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왕이자 아일랜드의 영주가 되는 것이죠. 여기에 등장하는 '메리 스튜어트'가 앞에서 말한 '스코틀랜드의 메리 1세'입니다. 하지만 헨리 8세의 계획은 실패하고, 스코틀랜드의 메리는 프랑스의 왕과 결혼합니다.
아들 '에드워드'는 헨리 8세 사망 후 9살의 나이로 '에드워드 6세' 왕이 됩니다. 어린 에드워드 6세 주위에는 섭정을 통해 권력을 나누려는 사람들로 가득 찹니다. 그들은 에드워드 6세의 후임으로 헨리 8세의 친척인 '제인 그레이'라는 여성을 선택합니다. 에드워드 6세가 16세의 나이로 죽었을 때, 제인 그레이의 나이는 15살이었습니다. 하지만 원숙한 30대 후반의 메리가 이 상황을 가만히 두고 봤을 리가 없습니다. 제인 그레이는 즉위한 지 9일 만에 메리에 의해 폐위되고, 이듬해 참수당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왕위에 오른 이가 잉글랜드의 '메리 1세'입니다.
메리가 왕위에 오르자마자 한 일은 '가톨릭으로 복귀'였습니다. 그녀는 성공회 성직자들과 개신교 신자들을 체포하여 처형해버리는데, 그 숫자가 300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별명이 Bloody Mary가 되는 순간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배우자도 가톨릭 국가의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설에는 스페인의 '펠리페 2세'의 초상화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모든 잉글랜드 사람들이 이 결혼을 반대한 것은 확실합니다.
당시 결혼 풍습에 따르면 남자의 재산은 남자의 것, 여자의 재산도 남자의 것 아닙니까? 당연히 메리 1세의 잉글랜드가 스페인 펠리페 2세의 것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메리는 물러서지 않았고, 잉글랜드를 넘보지 않겠다는 계약서에 펠리페 2세가 서명하는 조건으로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됩니다.
펠리페 2세는 결혼식 후 스페인으로 돌아가 왕이 되었고, 두 사람이 함께 한 것은 채 몇 달이 되지 않았습니다. 4년 후 메리 1세는 병으로 죽고, 뒤를 이어 왕이 된 사람이 '엘리자베스 1세'입니다.
메리의 삶을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아름답고 행복하고 희망에 찬 인생은 아닙니다. 제가 왕이라는 자리에 올라보지 못해 아무 말이나 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메리 1세와 같은 인생을 살아야 왕이 될 수 있다면
그 왕, 사양하고 싶어 집니다.
그렇다면 스코틀랜드의 메리 1세는 행복했을까요? 스코트랜드의 왕이었던 그녀는 이복 오빠 및 귀족들의 반란으로 왕에서 쫓겨납니다. 5촌 언니 엘리자베스를 믿고 망명한 메리 1세는 결국 잉글랜드에서 반역죄로 처형당합니다.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지요?
이쯤 되면 '메리'라는 이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기분도 들긴 합니다. 권력은 무엇일까요? 인간의 삶에서 권력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인생 전체가 암울해지더라도 권력을 가질 수만 있다면 좋은, 그런 것일까요? 평범한 시민인 저는 다음 생에 왕으로 다시 태어나기 전까지는 결코 알 수 없겠지요.
아무튼 불행했던 '메리'를 떠올리며 블러디 메리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1. 텀블러에 얼음을 넣어주세요.
2. 보드카를 1 소주잔 넣어 주세요.
3. 토마토 주스를 가득 부어주시고 잘 저어서 즐겨주세요.
3. 저는 간단하게 보드카와 토마토 주스로만 마십니다만
외국에서는 소금, 후추, 타바스코, 우스타 소스, 샐러리 등등 여러 가지를 첨가해 즐기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