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생물 시간에 ‘원시 수프’에 대해 배운 기억이 있습니다. 약 40억 년 전 아미노산이나 당과 같은 유기 화합물로 가득 찬 원시 수프(soup) 안에서 생명이 탄생했다는 이론입니다. 이때 탄생한 단세포가 진화를 거치고, 반복하고, 거듭하여 지금의 복잡한 생명체까지 이어졌다는 겁니다. 심해 열수구 가설, 작은 연못 가설, 암석 가설 등 생명의 탄생을 주장하는 엄청나게 많은 가설 중 하나입니다.
술을 만들 때 사용하는 효모(‘누룩’이라고도 하죠)를 떠올려 봅시다. 효모는 단세포 생물입니다. 익힌 쌀에 효모와 물을 섞어 발효 과정을 거치면 ‘막걸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막걸리를 몇 번에 걸쳐 증류한 것이 ‘전통 소주’입니다. 이처럼 과일 속에 들어간 효모는 와인이나 브랜디를 만들고, 익은 보리 안에 침투한 효모는 맥주나 위스키를 내놓습니다. 즉 우리는 아주 원시적인 세포 단계일 때부터 이미 술을 배설하고, 그 안에서 즐겁게 떠다니던 생명체였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음주가 너무 당연하고 당당해지지 않습니까? 아니라고요? 인간만 술을 마실 뿐 다른 생물들은 그렇지 않다고요?
초파리 연구자들은 ‘정말 다양한’ 연구를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초파리의 특성상 생의 주기도 짧고 자손도 많은 데다가 감정 이입도 잘 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예를 들어 개나 고양이에게 술 먹이는 실험을 했다고 하면, 누군가는 언짢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초파리 실험에선 별 탈이 없습니다. 그래서 초파리에게 무려 ‘술을 먹이는’ 실험을 한 연구자도 있었습니다.
초파리에게 술을 먹였을 때 어떤 식으로 ‘취하는’것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초파리가 했던 이야기를 또 하거나, 울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엊그제 헤어진 애인에게 문자를 보낼 리는 없으니까요. 다만 초파리 수컷이 암컷에게 구애를 하다 거절당하면 알코올 섭취량을 급속하게 늘린다는 결과가 밝혀졌습니다. 그렇게 계속 마시면 구애의 확률이 더 떨어질 것이란 안타까운 사실을 알려줄 방법이 없어 제 마음이 다 무거워집니다. 초파리들, 정신 차려, 그럴 때가 아니라고!
이미 진화해버린 우리와는 별개로 효모는 아직도 과일이나 곡식 안에 있는 당분을 섭취하고 에탄올과 이산화탄소라는 부산물을 내놓습니다. 술을 빚을 때 거품이 올라오는 이유는 이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때문이고, 이들이 배설한 (으~) 에탄올이 바로 ‘술’입니다.
문제는 과일이나 곡식이 순수한 당분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탄닌, 산, 그 외 효모가 소화할 수 없는 형태의 당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탁주나 와인이 담긴 통 안에서 거품이 뽀글거릴 때, 효모가 미처 소화하지 못한 것들은 자신들끼리 결합하거나, 심하면 독성이 강한 성분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걸 마신 인간이 느끼는 것을 ‘숙취’라고 부릅니다.
솜씨 좋은 양조업자는 증류 과정 중 이 문제의 성분들을 제거합니다. 위스키의 경우 증류기의 처음과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술맛은 좋지 않고, 불순물도 비교적 많이 섞여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그것들을 다 버리고 나면 결과물의 양이 너무 적고 풍미도 사라집니다. 맛과 풍미는 좋지만 숙취 없는 위스키를 가능한 한 많이 만드는 것이 양조업자의 기술인 겁니다.
스코틀랜드 인들은 1490년대부터 이미 술을 증류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산 아래 윌리엄네 증류소의 술은 비싸긴 하지만 맛이 기가 막히고, 강 아래 토마스의 증류소 술은 숙취가 없고, 건너 마을 제임스네 증류소의 술은 저렴하긴 한데 먹고 나면 3일 정도 일도 못하게 된다는 등 가게마다 평판이 달랐을 겁니다. 저라면 토마스의 가게의 술을 마셨지만, 동네잔치에는 제임스 증류소의 술이 사용됐을 수도 있습니다.
15-16세기까지 대부분의 증류소는 개인적으로 운영되었고 당연히 세금도 없었습니다. 1644년 스코틀랜드 의회는 드디어 세금을 매기기 시작합니다. 완성품뿐 아니라 맥아, 증류기에도 세금을 붙입니다. 1781년 영국 의회는 세무 당국에게 위스키 제조에 사용되는 물품뿐 아니라 말과 마차 등 위스키 운반에 사용되는 것까지 압수할 수 있는 권한을 줍니다. 그야말로 세금을 내지 않으면 집안 물품에 빨간딱지가 붙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세금을 감당할 수 없었던 많은 증류소가 문을 닫았고, 나머지는 감시의 눈을 피해 불법적으로 위스키를 생산합니다. 산속에 굴을 파서 술을 숨기기도 하고 다른 가게로 위장하기도 합니다만 기본적으로 양조업은 몰래 할 수 있는 업종이 아닙니다. 발효와 증류 과정에서 냄새가 나는 데다 오크 통에 몇 년씩 묵혀 둬야 제 맛이 나는 술을 계속 숨기는 일이 쉬웠을 리 없습니다. 게다가 뛰는 증류업자 위에는 나는 세금 감시원도 있었겠죠. 이들은 혹독한 매의 눈을 한 채 증류업자들을 찾아다닙니다. 이때 등장한 전설적인 인물이 헬렌 커밍(Helen Cumming)입니다.
헬렌의 남편 찰스 커밍은 농사일을 하는 평범한 농부였다고 합니다. 밀주를 만들어 판 쪽은 아내 헬렌이었습니다. 그녀의 집에는 언제나 빵을 굽는 구수한 냄새가 넘쳤다고 합니다. 발효 과정에서 나는 효모의 시큼한 냄새를 빵 냄새 안에 감추는 수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모름지기 갓 구운 빵 냄새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이고, 당장 해야할 일을 잊을 만큼 감미롭지 않습니까?
세금 조사원들이 감시의 눈을 번뜩이며 집에 찾아올 때면, 그녀는 향 좋은 빵뿐 아니라 손 맛 좋은 맛있는 음식을 대접했다고 합니다. 조사원들이 식사를 하는 사이 그녀가 뒷 문으로 빠져나가 깃발을 흔들면, 계곡에 숨어 있던 양조업자들은 마치 봉화처럼 주변 증류소로 신호를 전파해 세금 조사원들의 방문에 대비할 수 있었습니다. 헬렌이 운영했던 카듀(Cardhu) 증류소는 이런 과정을 거쳐 몇십 년 동안이나 단속을 피해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사는 근방의 증류소들도 큰 덕을 보았음은 물론입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멋진 분들이 계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우를 보자면 세금은 되도록 적게 내고 싶은 심정입니다. 뭐 월급이 얼마 되어야 말이지요. 이것저것 세금을 먼저 떼 버리고 받은 월급 명세서를 보고 있자면 한숨이 나옵니다. 과도한 세금을 부과해 양조업자들의 집안 뿌리를 아예 뽑으려고 했던 영국 정부보다야 지금이 훨씬 낫겠지만 말입니다. 헬렌 커밍은 극악스러운 정부에 대항해 아주 상큼하고 구수한 방법으로 대결을 펼쳤습니다. 마침내 정부는 정책을 철회합니다.
1823년 영국 의회는 세금을 대폭 낮추고 위스키 생산업자들이 합법적인 면허를 취득하도록 독려합니다. 1824년부터 헬렌의 증류소도 면허를 취득하고 합법적인 영업을 하게 됩니다. 헬렌은 가업을 며느리 엘리자베스 커밍에게 물려줍니다. 1893년 엘리자베스는 가족들이 계속 운영하는 조건으로 카듀 증류소를 워커사에 매각합니다. 흔히 ‘조니 워커’로 알려진 그 위스키 회사 말입니다.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가 나를 억압할 때 드러내놓고 반대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18세기 스코틀랜드로 가 본다면 세금 반대 민란이나 봉기 정도로 말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이 경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듭니다. 진압을 당하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입니다. 그럴 때는 헬렌 커밍처럼 상큼한 반격을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생각보다 꽤 효율적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짜증스러운 권위에 상큼하게 반항하는’ 방법을 생각하며 위스키 샤워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위스키에 레몬주스를 사용하는 것이라 도수도 낮고, 목 넘김도 쉬운 칵테일입니다. 위스키 대신 진, 브랜디, 럼, 테킬라 등 어떤 술을 사용해도 괜찮습니다.
1. 플라스틱 통에 위스키 1 소주잔, 레몬주스 1/2 소주잔, 설탕 1ts, 얼음을 넣고 흔들어 주세요. 설탕이 다 녹으려면 꽤 흔들어야 합니다.
2. 얼음이 쏟아지지 않도록 잘 따른 후 즐겨 주세요. 그래도 독하다 싶은 분들은 소다수를 더 섞어도 괜찮습니다. 술이 꼭 진할 필요는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