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기후 비상사태 : 리허설]
전조도 없이 누군가 무대로 걸어 나온다. 자신을 ‘작가’라 소개한 후 관객들에게 쓴 편지를 읽는다. 갑자기 불이 꺼진다.
암전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이어진다.
“암전은 불이 꺼진 상태이며 어떤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다 지워진 상태입니다.”
목소리는 ‘불 꺼진 깜깜한 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왜 가만히 있는지’를 궁금해한다. 암전 속 숨죽여 앉아 있는 관객들을 향한 당돌한 질문이다. 관객들은 곧 불이 켜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연극은 계속될 수 없으니까. 하지만 목소리가 주장하는 것처럼 암전 되기 전 우리의 상태를 알아볼 수는 없다.
그런데 만약 영영 불이 켜지지 않는다면? ‘만약에’ 말이다. ‘기후변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주장처럼 ‘지구에 남은 시간이 1분밖에 없다’는 말이 맞다면,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그 1분을 다 사용해 버린 것이라면, 불은 켜지지 않을 것이다. 그대로 무대는 그리고 지구는 깜깜한 상태로 남아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문제 아닌가? 이 암전이야 말로 ‘어떤 행동’이라도 해야 할 마지막 남은 시간이 아닐까?
무대가 밝아지고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 연극은 다큐멘터리 형식을 끌어왔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떠올려 보면 된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날 것의 현실에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는 것처럼 이 연극은 갈등구조나 서사 없이 그래프와 사실들을 나열하고 보여준다.
‘기후비상사태’는 다른 표현으로 ‘기후 위기’, ‘기후 변화’라고도 불린다. 지구 온난화를 떠올리면 쉽다. 찰스 데이비드 킬링(Charles David Keeling)이 하와이 마우나로아에서 매일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해 ‘지구의 온도가 매년 상승하고 있음을 증명’ 한 것이 무려 1958년이다(우리는 그것을 ‘킬링 곡선’이라고 부른다. 과학자의 이름(Keeling)을 딴 것이지만, 어쩐지 가만히 있으면 ‘KILL’되는 곡선이라는 느낌이 들어 외우기는 쉽다).
지구의 나이는 대체로 44 - 46억 년 사이라고 말한다. 44억 년. 상상하기 어려운 몹시 긴 시간이다. 그중 인간 즉 현생 인류가 등장한 것은 20만 년 전이다. 그래서 지구의 나이를 24시간으로 표현한다면, “최초의 인간은 자정을 불과 40초 앞둔 23시 59분 20초”에 등장했다. 문제는 그 40초다. 약 39초도 지난 후 산업혁명이 시작되었고, 화석 연료에서 비롯된 엄청난 온실가스가 퍼져 나갔다. 이 가스층은 지구가 방출해야 하는 복사열을 흡수하고 지구의 온도를 높였다.
물론 44억 년이라는 긴 시간 중 태양이나 지구 자체의 영향으로 온도가 올랐던 적도 내려갔던 적도 있다. 빙하기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현대의 기후 변화는, ‘킬링 곡선’이 말하는 지구 온도 변화는 그런 범주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배출한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 가스 때문에 발생한 급격한 상승이며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기후 위기 혹은 기후 변화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말이다.
하지만 모두 이런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레타 툰베리가 2018년 유엔 기후변화 협약 당사국총회에 참석해 “당신들은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모습으로 자녀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다”는 발언을 했을 때 이 말에 발끈한 사람들이 있었다.
푸틴과 트럼프, 즉 당시 지구상 가장 막강한 권력을 차지한 두 인물이 공개적으로 이를 비난한 것이다. 푸틴은 “세상은 툰베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며, 가난한 사람들도 스웨덴 사람들만큼 부유해지고 싶은데 태양 발전 가지고는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사실 이 말에는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다. 화석 연료를 펑펑 사용해서 문명의 발전을 이미 누린 선진국들이 그로 인해 생긴 피해를 주장하며 개발도상국가들이 밟고 있는 발전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짓을 하고 있다는 말이니까. 선진국들이 배출한 이산화탄소 때문에 뜨거워진 지구를 지키기 위해 개발도상국가의 사람들은 자동차 대신 소달구지를 타고 다니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 가난한 국가들도 현재의 선진국과 같은 삶의 질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한편으로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이런 복잡한 문제 한가운데로 연극은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다.
이 연극을 쓰고 연출한 전윤환 연출가는 강화도에서 텃밭을 가꾸며 살고 있다. 텃밭에서 애지중지 키우던 수박 8통이 여름철 이상 폭우로 다 사라진 경험을 한 후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느꼈다. 연극에 출연하는 11명의 배우는 모두 ‘작가’의 다른 얼굴이며 분신으로, 기후 변화에 대해 ‘남 일’처럼 느끼던 작가가 어쩌다가 ‘기후 비상사태’에 대한 글을 쓰고 연출하게 됐는가를 직접 설명한다. 소박한 접근법이다.
"기후위기? 기후위기 어디 있어? 네 눈앞에 있어? 어디 있어? 저기 있으니까 여기 있어? 굉장히 이타적이네.”
랩 같은가? 맞다. 랩이다.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대화를 나누고, 관객과 대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랩도 하고, 노래도 한다. 말하자면 할 수 있는 모든 방식을 다 동원한다. ‘기후비상사태’에 관해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배우들은 흡사 퍼즐처럼 조율된 채 극을 이끌어간다. 하나가 빠지면 무너지는 젠가처럼 어느 목소리도 흘려들을 수 없다. 연인의 ‘선물공세’에서 애정을 느낄 수도 있지만, ‘츤데레’처럼 툭 던지는 말 한마디에 흔들려 본 적이 있지 않은가? 기승전결의 극적인 구조가 빠지고 남은 자리, 사실들이 배열되어 자칫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는 곳에 이런 ‘츤데레’ 연기들이 던져지며 마음을 흔든다.
작가는 대부분의 사람은 ‘기후비상사태’에 대해 ‘알고’ 있지만,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 자기 자신이 이 작품을 쓰기 전까지 그랬으니까.
“난 내 앞에 놓인 위기들이 더 크니까. 그게 진짜니까. 지금 당장 내 위기. 내가 죽겠는데 무슨 기후위기야.”
나 역시 이 연극을 ‘기후비상사태에 관심이 있어’ 보러 간 것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왔기 때문에 ‘그렇다면….’하는 마음으로 갔을 뿐이다. 당장 내일 출근할 일이 걱정이고, 먹고사는 일이 위협인데 무슨 기후 비상사태란 말인가. 그래, 그래. 다 좋다. 몇 걸음 뒤로 물러서서 기후비상사태가 정말 큰 위기라고 하자. 내가 무슨 수로 뿜어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막을 수 있고,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항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 같은 사람에게 작가는 말한다.
“지금처럼 관심 가져 주세요.”
가끔은 폭력보다 지긋한 눈길 한 번이 너 무서운 법이다. 소박하지만 결연한 목소리로 연극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전 세계 기상학자들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새로운 허리케인 때문이다. 허리케인은 해수면 온도가 최대 26.5도까지 올라가는 곳에서만 만들어진다는 것이 그때까지 알려진 정설이었다. 따뜻한 바다뿐 아니라 강하지 않은 바람이 필요하다. 높은 고도에서 불어 내리는 강력한 바람이 있어서는 허리케인이 생길 수 없다. 그런 이유로 허리케인은 열대 지역에서 만들어진다. 남대서양에서는 그때까지 단 한 건의 허리케인도 기록된 적이 없었다.
그런데 2004년 3월 20일 브라질 해안 가까이에서 이상한 소용돌이 구름이 만들어지더니 시속 150Km가 넘는 강풍과 폭우를 갖춘 허리케인 ‘카타리나’로 발전했다. 완전한 기상 이변이었다.
2023년 여름에도 유럽에 이례적인 고온 현상이 관측됐다. 이탈리아의 온도는 48도에 달했고 영국마저 40도를 넘어섰다. 7월 그리스에서는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보름동안 불은 그리스 전역을 활활 태웠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산불이 이어졌다. 동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가뭄이 지속되고 있고, 에티오피아는 줄어드는 나일강의 물을 가두기 위해 댐을 건설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하류지역에 해당하는 이집트는 물부족이 심해질 것이다. 두 나라 사이에는 냉랭한 기류가 흐른다.
에티오피아와 이집트는 아직 대화로 상황을 풀어가려고 노력하는 중이지만 그것이 곧 낙관적인 전망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2010년 전후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 닥친 시리아 대가뭄은 현재까지 지속되는 내전 발발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먹고살기 힘들어지면 법보다 주먹이 앞서게 된다.
계속되는 기상 이변 뉴스 때문에 이전에는 ‘설마’하고 고개를 돌리던 많은 사람들이 ‘혹시’하는 마음으로 지구 온난화라는 주장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지구가 점점 뜨거워진다는 주장은 얼핏 들어도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설명하자면 이런 것이다.
빛은 적외선, 가시광선, 자외선으로 나눌 수 있다. 가시광선은 우리가 볼 수 있는 영역의 파장이니 이해하기 쉽다. 문제는 보이지 않는 영역의 파장들인데, 우리는 자외선과 적외선을 볼 수는 없지만 느낄 수 있다.
UV숫자가 표시된 선크림을 바르는 이유는 자외선을 막기 위해서다. 자외선이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자외선에 오래 노출되면 피부가 상하고 심하면 화상을 입는 경험을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부암은 위험하다.
건물에 설치된 체온 감지용 열화상 카메라는 물체가 내뿜는 적외선을 이용한다. 불 꺼진 방에서 진행하는 좀비 게임을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줄 수 있는 이유는 어두운 곳에서도 적외선을 감지하는 특수한 카메라를 이용해 촬영하는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무시하면 곤란하다.
이렇게 적외선과 가시광선, 자외선으로 이루어진 태양빛이 지구에 도달하면 그중 30 퍼센트 정도는 대기층이나 지표면에 반사되어 곧바로 지구 밖으로 빠져나가고 약 70퍼센트 흡수된다고 중학교였는지 고등학교 때였는지 과학시간에 배운 기억이 있을 것이다(가물가물하다고 해도 이해한다. 나도 그렇다).
잘 닦인 유리가 빛을 그냥 통과사키는 것처럼 공기도 빛을 통과시킨다. 하지만 공기 중의 몇몇 성분 – 이산화탄소, 아산화질소, 메탄가스 등등 -은 적외선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 기체들은 지구가 우주로 뱉어 냈을 적외선을 흡수해 그 열기를 품는다. 이런 기체들이 차곡차곡 열기를 품어 만들어 낸 것이 지구의 옆 행성인 금성의 대기다.
자연 상태의 지구 대기에 이산화탄소나 아산화질소 등 흔히 온실기체라고 부르는 것들의 함유량이 0.1퍼센트도 되지 않는 것에 비해 금성 대기에는 90퍼센트가 넘는 이산화탄소가 존재한다. 이 이산화탄소가 온실 효과를 일으켜 한때는 생명이 살았을 것으로 추측되는 금성의 온도를 400도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이래서야 생명이 살아남는 것은커녕 흔적을 남기기도 힘들다. 금성을 연구하기 위해 보낸 탐사선조차 견디지 못했을 정도다. 지구의 온도가 금성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극단적인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런 기체의 성질을 이해하자는 것이다.
나도, 당신도, 당신의 귀여운 고양이도 호흡을 하면 이산화탄소를 내뿜는다. 하지만 이 정도 이산화탄소는 지구에 함께 존재하고 있는 식물이나, 광합성을 하는 미생물, 세균 따위가 빨아들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지구 공기 중 이산화탄소는 과거에는 0.03퍼센트대 수준으로 유지되었다.
그러던 어느 시점 인간은 미생물과 식물이 빨아들일 수 있는 양 이상으로 이산화탄소를 내뿜게 됐다. 많은 사람들은 18세기말 산업혁명이 시작되어 석탄이나 석유 같은 연료를 대량으로 태우게 된 때를 그 시점으로 보고 있다.
석탄이나 석유(아, 그리고 다이아몬드에도) 속에는 탄소 원자(C로 표현한다)가 많이 들어 있어서 이런 연료들이 산소(O다)와 만나 불타게 되면 이산화탄소(CO2)를 만들어낸다. 석유나 석탄을 태워 전기를 생산하는 화력 발전소나 석유를 정제해 만든 기름을 태워 움직이는 자동차나 배, 비행기 등 눈을 돌리면 볼 수 있는 것에서 이산화탄소가 만들어진다. 당신이 이별을 슬퍼하며 반지 속 다이아몬드를 태워도 이산화탄소는 생성된다. 이런 일련의 행위들 때문에 한동안 0.03으로 유지되던 이산화탄소 농도는 한참 전에 0.04를 넘어섰다.
메탄가스 문제도 있다. 메탄가스는 대부분 미생물이나 살아있는 생물체 때문에 만들어지기 때문에 외계 생명체가 존재하는 지표 중 하나로 사용된다. 미지의 행성을 조사했는데 대기 중 메탄가스가 기준치 이상으로 포함되어 있다면 천문학자들의 마음이 기대로 들썩들썩하기 시작할 것이다.
대체로 미생물의 활동으로 뭔가가 썩을 때 메탄가스가 나온다. 플라스틱은 미생물이 분해하지 못한다(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미생물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이라는데 잘 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썩지도 않는다. 그것이 문제다. 난지도 쓰레기장을 매립해 만든 상암동 하늘공원에는 아직도 메탄가스가 나온다. 하늘공원을 걷다 보면 메탄가스를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소화는 ‘썩는 것’과는 좀 다른 일처럼 느껴지지만, 음식물이 썩거나 발효되는 과정이 외부가 아니라 동물의 배 속에서 벌어진다는 것이 다를 뿐 동일한 메커니즘이다. 당연히 소화 과정 중에 메탄가스가 나온다. 트림 속에는 배 속 미생물들이 뿜어낸 기체와 함께 메탄가스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아무 곳에서나 불쑥불쑥 트림하는 사람들을 메탄가스를 내뿜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소화 정도는 빨리 아무도 모르게 해 주길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소나 염소, 양처럼 되새김질하는 동물들에게 빨리 아무도 모르게 소화시키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이 동물들은 일단 삼킨 풀을 미생물의 도움을 받아 발효시킨 후 다시 게워내 잘게 부숴 삼킨다. 빨리 할 수도 몰래 하기도 힘든 방식이다. 문제는 이런 동물들의 배 속에 사는 미생물들 역시 메탄가스를 꾸준히 뿜어낸다는 것이다.
소나 양 같은 동물들이 메탄가스를 뿜어내 봐야 그게 얼마나 된다고 호들갑일까 싶지만 적은 양으로도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강한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것이 메탄가스의 성질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지구 온난화 이야기를 하면서 채식 이야기가 함께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어찌 된 일인지 ‘기후 위기’를 말하는 쪽과 ‘기후 위기는 헛소리다’라는 주장이 아직도 팽팽하게 맞서는 느낌이다. 도대체 문제가 뭘까?
["지구온난화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이냐? 제발 빨리 돌아오라. 우리는 지구 온난화가 필요하다.(What the hell is going on with Global Warning? Please come back fast, we need you!)”]
2019년 1월 28일,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도널드 트럼프는 이런 트위터를 날린다. 우리나라의 1월 추위가 매서운 것과 마찬가지로 북반구에 위치한 미국의 1월 추위도 만만하지는 않다.
그런 어느 추운 겨울 트럼프 대통령은 이렇게 세계를 향해, 기후 변화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인 것이다. 왜 이런 말을 트위터에까지 써야 했는지 알려면 잠깐 미국의 과거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1997년 12월 일본 교토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제3차 당사국 총회에서 지구 온난화의 규제 및 방지를 위한 기후변화협약인 [교토 의정서]가 채택된다. 앞으로는 1990년에 배출한 이산화탄소 배출량 보다 적게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목표’를 설정한 것이다. 190개국이 넘는 나라들이 뜻을 함께 했다. 물론 [교토 의정서]에서 정한 목표가 기후 변화를 멈추거나 되돌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일단 기후 변화를 인정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을 뗀다는 의미는 있었다.
그런데 2001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해서 기후 변화 문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던 미국이 [교토 의정서]를 승인하지 않겠다고 발표한다. 모든 일이 물 건너간 것이다. 그 이후로도 자연재해는 발생했고, 기후 위기가 아니면 설명하지 못할 수치들이 계속 공개되었다. 미국을 향한 비난도 계속된다.
마침내 2015년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당사국 총회에서 기후 변화에 세계 많은 나라가 힘을 모아 대응하자는 [파리 협정]이 채택된다. [파리 협정]의 목표는 이산화탄소나 온실 기체를 구체적으로 얼마 줄이자는 수치를 명시한 것이 아니라,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 정도를 ‘섭씨 2도보다 현저하게 낮게’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번엔 미국도 동참했다. 쨍쨍 내리쬐는 햇빛 아래 서 있다 마침내 찾아 들어간 나무 그늘처럼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기후 위기 문제 위로 불어온 듯했다.
그리고 2017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 해인 2017년 6월 “파리 협약은 미국에 가장 부당하며 각종 규제로 미국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공장들이 문을 닫고 있다. 미국과 미국 시민들을 보호할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파리 협정에서 탈퇴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파리 협정]이 ‘가입 후 3년 안에는 탈퇴할 수 없도록’ 규제 조항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당장은 탈퇴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트위터가 시작된다. 2019년 1월 28일 이전에도 비슷한 내용의 트위터는 더 있었다. 당장 탈퇴하지 못한 것의 분풀이였는지도 모르겠다.
마침내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 협약]이 정한 3년 시점이 끝나는 날인 2019년 11월 4일이 되자마자 탈퇴를 통보한다. 하지만 문제가 아직 남았다. [파리 협약]에는 탈퇴를 통보한 후 1년이 되어야 공식 탈퇴를 인정하는 조항도 들어 있었다. 아무리 [파리 협약]이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도 임기가 끝나는 2020년 11월까지 묵묵히 참을 수밖에 없었다.
2021년 1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선 첫날 [파리 협약] 재가입 절차를 시작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한다. 기후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와 비웃는 주장의 충돌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기후 위기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우린 그런 거 몰라’라며 외면하는 정도로 끝내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열심히 부지런히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기후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를 지우려 노력한다.
2009년 11월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이스트앵글리아 대학교 기후연구소의 서버를 해킹했다. 1000개 이상의 이메일과 2000개 이상의 문건을 포함한 160MB의 파일이 이들의 손에 들어갔다. 몹시 열정적이다.
이 파일에는 1996년부터 2009년까지 기후변화 연구에 포함된 소스 코드와 기후변화를 지지하고 걱정하는 과학자들 -예를 들어 이산화탄소 농도와 기온이 1900년 이후 급격히 상승함을 밝힌 ‘하키스틱 커브’로 유명한 마이클 만(Michael E. Mann)- 사이에 오고 간 이메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이메일의 일부를 편집해 인터넷에 공개했다. 이 해킹사건은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회의 직전에 벌어졌는데 아마도 기후변화를 주장하는 과학자들의 정당성을 훼손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였다. 이들이 공개한 메일 내용 중 일부를 옮겨보자면 이렇다.
“나는 키이스의 연구에서 나타난 하락을 감추기 위해 (hide the decline) 최근 20여 년과 1961년부터의 각 시리즈에 실제 온도를 추가하여 마이크의 트릭(Trick)을 활용했습니다.”
“…를 감추기 위해…. 트릭을 사용한다”라는 문장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딱 좋다. 덕분에 이 사건에는 기후게이트 (Climategate)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문장에서 나온 ‘하락’이 ‘기온’의 하락이 아닌 ‘수목 성장세’의 하락이었으며, 트릭이라는 단어는 과학계에서 흔히 사용하는 기발하고 정교한 해결책을 뜻하는 말이라고 설명했지만 소용없었다. 3차례의 대대적인 조사가 벌어진 후 문제없음으로 결론이 났을 때도 기류는 변하지 않았다. 마이클 만은 살해 위협에 시달렸을 정도다.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일만 있었을까? 전문가들은 오늘날의 지구온난화 논쟁이 1950년대 벌어진 담배 논쟁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한다.
1950년대 과학적으로 담배의 유해성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담배회사들은 돈을 퍼부어 위기를 비껴갔다. 담배와 암과의 관계를 밝히는 많은 논문에 대해 ‘직접적이고 확실한 연결고리’를 제시하지 못했다며 대대적인 광고를 퍼부어 담배의 유해성 문제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물론 담배회사 관계자들이 담배의 유해성에 대해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음은 이후 내부 문건을 통해 밝혀졌다!
그러나 이런 광고와 캠페인으로 여론을 호도하며 담배회사는 더 이상 변명이 불가능한 순간까지 담배의 유해성을 부정하며 담배를 팔았다. 오늘날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이 모여 있는 연구소를 후원하는 기업은 엑슨 모빌과 같은 석유기업들이다. 석유기업은 화석연료를 팔아야 이익을 얻는 곳이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지 않는가?
하지만 기후 변화를 믿건 그렇지 않건 위험한 일은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다. 호주 동쪽 폴리네시아의 섬나라 중 하나인 투발루는 2001년 국가포기를 선언했다. 해안선이 물아래로 잠기면서 국토의 삼분의 일이 침수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투발루가 사라진다면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그야말로 ‘기후 난민’이 되는 것이다. 이미 투발루는 주변국에 환경난민으로 받아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문제는 투발루가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파스칼(Pascal)은 사람들에게 신을 믿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만약 신이 없다면 천국도 지옥도 없다. 믿는 사람도 믿지 않는 사람도 만족한 상황이다. 만약 신이 있다면 믿은 사람은 천국에 가고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갈 것이다. 그렇다면 확률적으로 봤을 때 신을 믿어 두는 쪽이 유리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기후 위기가 존재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 기후 위기가 없다면 기후위기를 믿는 쪽도 그렇지 않은 쪽도 만족할 것이다. 하지만 만일 기후 위기가 생긴다면 기후 위기를 믿고 대비를 하는 쪽은 타격이 덜하지만 대비를 하지 못하는 쪽은 멸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확률적으로 봤을 때 기후 위기를 받아들이고 우리의 생활을 되돌아보는 것이 유리하지 않을까?
물론 매일을 사는 것만으로도 바쁜 우리가 기후변화를 위기로 느끼고 생활 패턴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배가 고플 때는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배달음식이 쉽고 한여름 에어컨 없이 반나절을 보낸다는 상상만 해도 식은땀이 나기 때문이다. 즉 먼 미래에 발생할 크지만 불확실한 손실을 경감하기 위해 현재의 편리를 내려놓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것만이 인간이란 종이 멸망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조지 마셜이 쓴 [기후변화의 심리학]이란 책에는 작고한 코미디언 조지 칼린 (George Cartin)의 말을 옮겨 놓았다.
“지구를 구하자고! 뭐? 이 어이없는 사람들이 지금 나를 놀리나? 지구는 어디 가지 않아. 문제는 우리야! 우리가 사라지고 있어. 그러니 여러분, 짐을 꾸려. 우리는 살다 간 흔적조차 많이 남기지 않을 거야. 그저 그렇고 그런 실패한 돌연변이 끝장난 생물학적 실수에 불과하지. 지구는 우리를 지독하게 들끓는 벼룩처럼 털어낼 거야. 표면에 기생하는 골칫거리처럼."
<참고문헌>
기후변화의 심리학, 조지 마셜 지음, 이은경 옮김, 갈마바람, 2018
누가 왜 기후변화를 부정하는가, 마이클 만. 톨스 지음, 정태영 옮김, 미래인, 2017
6도의 멸종, 마크 라이너스 지음, 이한중 옮김, 세종, 2008
우리는 결국 지구를 위한 답을 찾을 것이다, 김백민 지음, 블랙피쉬, 2021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곽재식 지음, 어크로스, 2022
포스트 트루스, 리 매킨타이어 지음, 김재경 옮김, 두리반, 2019.
<참고논문>
기후게이트와 기후과학 논쟁, 김명심.박희제, ECO 2011년 제 15권 1호.
<참고기사>
해수면 상승에 국토가 바다 아래로… 투발루 외무장관 ‘수중연설’, 한겨레 신문, 2021년 11월 10일
기후변화로 '살인 한파' 맞은 美에 트럼프 "지구 온난화 빨리 돌아와라", 세계일보, 2019년 1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