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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많은 소녀 현주

7화 : 여고생

by 이지아

미술실 안, 유리 태블릿 화면 위로 하얀빛이 번졌다.
현주는 허리를 잔뜩 구부린 채, 스타일러스 펜 끝을 눈동자 크기만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캐릭터의 표정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워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그렸다.

‘아니야, 이 웃음은 너무 얌전해. 조금 더 반짝여야 해.’
손목이 뻐근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화면 속 인물의 눈동자에 다시 하이라이트를 찍고, 색감을 조정했다.

작업대 옆에는 미지근해진 캔커피와 젓가락이 꽂힌 컵라면이 소녀의 밤을 같이하고 있었다.


공모전 마감 날이 다가올수록 현주의 예민함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아침마다 올라오는 알 수 없는 울렁거림

그리고 불쑥 찾아오는 한기 같은 것이 그녀를 끊임없이 옥죄는 듯했다.

애써 그림에 집중했지만, 무의식 깊은 곳에서 어떤 그림자가 드리워진 듯했다.


창밖 운동장은 이미 깜깜했고, 가로등 불빛만 희미하게 번졌다.
건물 전체가 조용해서, 태블릿 펜촉이 유리 위를 긁는 소리가 또각또각 울렸다.


시계가 11시를 가리키자, 현주는 펜을 놓았다.
손목을 몇 번 돌리고, 고개를 젖히자 뼈마디가 ‘뚝’ 하고 울렸다.
태블릿 전원을 끄고, 충전 케이블을 돌돌 말아 가방에 넣다가

멈칫하더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필 이렇게 늦게 끝나냐, 너는..."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스케치북과 펜, 보조배터리까지 챙기니 가방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미술실 불을 끄자, 복도 형광등 불빛이 길게 늘어졌다.
그 불빛 아래, 발소리를 최대한 줄여 정문으로 향했다.

문 손잡이를 잡는 순간, 괜히 천천히 열었다.

혹시나—아니, 그냥...

그냥 바람이 너무 차서, 잠깐만 서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누가 서 있길 바라는 묘한 기대가 고개를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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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콜중독인 엄마와의 관계에서 벗어나, 나를 알아가는 중입니다. ziansoo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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