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비오는날은 지옥이었다.

10화 : 결핍이라는 폭력

by 이지아

밤 열 시, 골목 가로등이 노란 빛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편의점 불빛이 환하게 새어 나왔다.

문 앞에서 현주는 몇 번이고 들어갈까 말까 발끝으로 바닥을 긁었다.

안에는 학생들이 과자를 고르며 깔깔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무심한 척 자판기 커피 값을 확인하듯 주머니를 뒤적였지만,

마음속엔 전혀 다른 계산이 맴돌았다.


눈길은 계산대 뒤편, 작은 선반 위—얇은 포장지에 담긴 생리대 쪽을 스치다 곧 얼른 발을 돌렸다.

차갑게 밀려오는 공기가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현주는 주머니 속 동전을 세어봤다.

손바닥에 펼쳐진 건 구겨진 천 원짜리 한 장과 동전 몇 개. 웃음이 났다.

컵라면 하나 겨우 사먹을 수 있었다.

아빠 얼굴이 떠올랐다.


"또? 용돈 다 어디다 쓰고…."


잔소리를 퍼붓다가도 결국 몇 장 내밀겠지. 그걸 모르는 게 아니다.

현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목까지 차오르는 그 기분이 싫었다.

돈을 받는 순간, 꼭 잘못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한참을 앉아있다, 작게 중얼거렸다.


"엄마가 있었으면…."


말끝은 금방 허공에 흩어졌다. 대답해줄 사람은 없었다.


현주는 현관 앞에 서서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 찼다.

문 손잡이를 잡았다가 놓고, 다시 잡았다.
안은 고요했다.
깜깜한 집 안, 스위치를 올리면 하얀 형광등 불빛이 번질 것이다.
그 순간, 공기가 달라진다.
아무도 없는 공간의 냄새가, 시리게 스며든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이지아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알콜중독인 엄마와의 관계에서 벗어나, 나를 알아가는 중입니다. ziansoop@gmail.com

2,002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26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9화괴물 같은 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