곗돈 3천이 터진 날, 내 인생도 무너졌다.

아파트 한 채를 날렸고, 남편은 그날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렸다

by 이지아

떨어진 건 전화기였는데, 깨진 건 내 인생이었다.


그날, 그 전화를 받지 않았더라면
아마 아직도 나는
시장 골목에 작은 떡볶이 가게를 꿈꾸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곗돈이 터졌고,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아무도 묻지 않았을까.
왜 그날, 누구도 나를 안아주지 않았을까.




# 가끔, 내 이름이 없는 집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살림살이는 차고 넘친다.
전기밥솥에, 최신형 냉장고.
화장대엔 수입 화장품 샘플이 줄지어 섰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중 어느 하나도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진 않았다.


밥을 짓고, 빨래를 널고, 아이를 돌보지만

남편은 점점 말이 없어졌다.
그의 고요는 벽지처럼 방 안에 붙어 있었고,
나는 점점,
집 안의 공기 같은 사람이 되었다.


그의 귀에는 내 하루의 이야기가 닿지 않았다.


그와 대화한 마지막 문장을 떠올리려면
일주일은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누가 "명순아" 하고

불러주는 순간은 하루에 한 번도 없다.

이상하게도,

그럴수록 나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이름을 되찾기 위한 일.
혼자서도 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몸부림.


어쩌면 그 모든 시작은
사랑받고 싶다는 갈망에서 비롯된 거였다.


어릴 적부터 나는,
누군가의 사랑을 기다리는 어른아이였다.
누구라도 나를 꼭 껴안아주기를,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기를 바라며 자랐다.


그래서, 곗돈을 모으고, 일수도 시작했다.
그게, 내 이름을 세상에 한 번쯤 내밀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같았으니까.


나는 명함도 만들어 돌렸고,

고리에 열쇠처럼 장부도 매달고 다녔다.
곗돈을 돌리면서부터는
하루가 금처럼 느껴졌다.


' 다음 달만 잘 넘기면, 시장 골목에 작은 가게 하나 내는 거야.

내 이름 딴 간판도 달고, 엄마 손맛 그대로.

내가 만든 떡볶이 먹고 싶다고 줄 서는 사람들...'


그 상상 하나로 버텼다
한 평짜리라도 좋으니까. 내 이름으로 하는 가게.

그게, 나의 마지막 꿈이었다.

딸이 되고,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된 다음에
비로소 '나 자신'으로 사는 상상.


그 상상이 무너진 건,
한 통의 전화 때문이었다.


"그 집이 연락이 안 된다네."
"큰일 났어~ 그 집 야반도주했어. 얼른 가봐"


수화기 너머에서 누군가 계속 무어라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손에서 수화기가 미끄러졌고,

바닥에 떨어져 내팽겨진 전화기와 함께 내 꿈이 부서지는 듯했다.


그 소리를 들은 남편이 안방에서 나왔다.
떨어진 전화기를 한번 흘끗 보더니,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묻지도 않았다. 왜 전화기를 떨어뜨렸는지, 무슨 일인지.

방 안 공기처럼 스쳐 지나간 그 순간,
나는 무너진 건 돈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말 한마디 없는 고요.
그 고요가, 곗돈 3천보다 더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무너진 건 곗돈만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쌓은 관계, 체면, 희망, 전부였다.


곗돈 3천이 터졌다.

그 돈이면 해운대 조그만 아파트 한 채 값이었다.


#도라지꽃 #명순이 #곗돈 # 외로움


『도라지꽃』 시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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곗돈 3천만 원이 날아간 '명순이'


시장 한켠. 자그만한 공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식당하나 차리는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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