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하던 날

엄마의 눈을 기억한다

by 재깅



나는 절대 엄마 처럼 살지 않을거야.


딸이라면 한 번 쯤 불을 끄고 누운 방 안에 누워 혼자 뇌까려봤을 문장을 곱씹는다.


한창 반항기인 10대 시절에도, 몇 번 찍어먹어 본 적도 없으면서 세상 쓴 맛, 단 맛을 다 본 척 하는 20대의 늦은 사춘기 시절에도 그런 밤이 몇 번인가 있었다. 감정이 과열되서 몸 속 어딘가가 잘못되서 뻥 터져 죽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밤들 말이다.


그럴때 사람들이 머릿속 압력게이지를 낮추려고 쉽게 돈 주고 살 수 있는 술과 담배다. 그건 뇌 어딘가에 위치한 이성이라는 곳에 구멍을 슬쩍 뚫어서 압력을 서서히 낮춰준다. 하지만 그 친구들은 증상을 조금 도와주는 척 하다가 점차 강도를 늘리지 않으면 마약처럼 약발이 곧 떨어졌다.


사람들이 자꾸 한강으로 떨어지던 시절이 있었다. 뉴스 앵커가 반복해서 말하던 IMF라는 알파벳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순 없었다. 어쨌든 저것 때문에 사람이 죽는다니 별로 좋은 건 아닐꺼야. 그정도는 어렴풋이 눈치 챌 수 있는 나이였다. 사람들은 젊음과 충성, 시간을 돈으로 바꿔주는 환전소가 문을 닫자 절망에 빠졌다.


나의 어머니는 그 시절 즈음 나를 가진 만삭의 몸으로 덥고 작은 가게의 튀김기 앞에서 닭을 튀겨 팔았다. 시댁에서 차려준 가게니 매출이 시원찮으면 시댁 눈치가 보였다. 무려 Y대 중퇴-실상은 고졸에 불과한-인 아버지는 '그런 일'을 하기엔 본인이 너무나 고결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제대로 일을 해서 월급 봉투 한 번 가져다 주지 않았지만 고고한 콧대는 도무지 꺾일 줄을 몰랐다. 어쨌든 그 코딱지 만 한 통닭 가게도 그가 아니었다면 감히 꿈도 못 꿨을 테니까. 그래서 나의 어머니는 군말 없이 몇마리고 닭을 튀겼다. 물론 아버지는 무를 식초에 절이지도 않았고 배달 한 번을 나가 본 적도 없다.


엄마는 내가 뱃속에 있을 때 자주 성당에 가서 기도를 했다고 했다. 엄마는 내게 한 번도 기도 제목에 대해 말 한 적 없지만 아마 그 기도는 아들을 달라는 기도였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아이의 건강과 무운도 빌었을 테지. 그래도 무엇보다 엄마가 원하는 것은 아들이었을 거야. 시댁에 갈 때 마다 사소한 것에도 눈치가 보이는 없는 집안의 임산부 며느리에게 가장 좋은 것은 고추 밖에 없으니까. 나의 성별을 알았던 날에 어머니는 많이 슬펐겠지.


우연히 아버지 앞으로 떼 본 증명서에서, 아버지가 사실은 이혼남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때도 많이 슬펐을까. 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선물로 준 도자기 코끼리가 아버지 손에 박살 날 때는? 엄마의 하늘거리는 여름 옷이 라이터 불에 녹아서 다 못 입게 됐을 땐?


난 엄마 입장을 한 번 도 제대로 들어 본 적이 없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내 입장 뿐이다. 나는 이 곳을 뛰쳐나가 트럭에라도 치이고 싶다.


나는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이건 내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는가와는 그닥 관계가 없는 문장이다. 나를 위해 치렀다는 그 모든 희생과, 나를 향한 사랑과도 관계가 없다.


나는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대부분의 딸 들이 한 번 쯤 머릿속으로 뇌까려보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그 문장을, 내가 마치 꽃병을 바닥에 깨 듯 엄마의 얼굴에 던졌을 때. 그 때 엄마의 눈을 기억한다. 나는 평소 사고를 치는 딸도 아니었고, 성적이나 품행이 뛰어나서 가족의 자랑으로 여겨지는 딸도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 내 속은 이렇게나 썩어 있어. 그게 엄마 탓은 아니야.


나를 바라 보던 그 눈. 살짝 갈색 빛을 띄고 약간 흐려진 듯한 동공 때문인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구멍이 나 있는 듯 했던 그 눈동자. 나를 이해 시키고 싶어 하는 듯, 혹은 나를 이해하려고 하는 듯 조금 일렁이던 눈.


엄마는 그저 조금 차분한 목소리로 그래, 라고 말하곤 조심스럽게 방문을 닫고 나갔다. 다시 적막이 흐르는 방. 나는 나도 모르게 멈췄던 손을 움직이며 다시 가방에 옷가지들을 쑤셔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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