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때맞춰 물 주면 사는 애들이야
식물을 또 죽였다.
화분을 비우는 것은 익숙하다. 이번에 죽은 식물은 고양이들에게 주려고 3번째로 기르기를 시도한 귀리싹이다. 남편이 심고 싹을 틔운 후 잘 자라서 고양이들이 야금야금 뜯어먹었는데, 담당이 나로 바뀌면서 결국 말라 죽었다.
귀리화분 키우기 키트에 같이 동봉된 설명서에는 해야 할 일이 명확히 써져 있다.
1. 비닐에 담긴 까만색 흙을 조잡한 싸구려 플라스틱 화분에 담는다.
2. 볍씨같이 밝은 황토색을 띈 귀리 씨앗을 흙을 담은 화분에 뿌려준다. 사춘기 애들 처럼 서로 거리를 좀 두게 해야지 싹을 피울 때 서로를 귀찮게 하지 않을 것이다.
3. 뿌린 씨앗 위로 흙을 1-2cm 두께로 덮어준다.
4. 물을 충분히 주고 2-3일 정도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 두면 싹이 나온다.
모든 것을 설명대로 했다. 하지만 씨앗을 심은 후 화분의 위치를 3번이나 옮겨주고 나서야 녀석은 7일 만에 솜털같은 싹을 겨우 틔웠다. 너무 가늘어서,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이게 먼지인지 싹인지 구분도 안가게끔 생긴 귀리싹.
다행히 게으름을 부리며 싹을 낸 것 치고 녀석은 무섭게 자라기 시작했다. 아침에 출근할 때와 밤에 잠들기 전에 확인하면 자란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쑥쑥 컸다.
식물 학살자로 악명이 높은 나도 이번 만큼은 마음을 놓았다. 다른 때와 다르게 물도 넉넉히 주었는데, 결국 그 넉넉히가 결국 식물을 죽였다. 흙 속에 곰팡이가 핀 것을 발견했다. 무관심도 지나친 관심도 살아있는 것들에겐 독이 되는 것일까. 곰팡이로 뒤덮인 뿌리들이 나를 비난한다. 죽어버린 식물들의 섬이 있다면 그 피해자들은 모여서 나를 욕하고 있겠지. 내 손에 운명을 달리한 식물들은 나의 죄를 증명하려 법정에 서서 증언을 시작할 것이고 머지않아 재판장은 내게 사형을 선고하라는 성난 식물들의 아우성으로 가득찰 것이다.
내가 가장 처음 죽인 식물은 학창시절에 반 전체가 각자 하나씩 맡아 기르기로 한 스파티필름이라는 수경재배가 가능한 식물이었다. 쭉 뻗은 줄기와 반질거리는 잎사귀를 가진, 공기정화 능력이 있는 녀석이었다. 큰 개체에서 줄기를 잘라 물에만 넣어두는 것으로 단순하게 분양이 끝났다. 우리반 아이들은 등교할 때 전날 사서 마신 1.8L 콜라병을 뚝 잘라 만든 화분을 가지고 와서, 각자 스파티필름 한 뿌리씩을 받아 이름을 써서 창가에 놓아두었다.
한창 감수성이 강한 10대 소녀들은 그 식물에 이름을 붙여주고, 보잘 것 없는 투명한 PET병에 리본을 달거나 장난삼아 실내화를 리폼하듯이 루이비통의 패턴을 그려 넣었다. 하지만 나는 2일에 한 번 물 주는 것도 잃어버리는 애였고 내가 1학기에만 그 단순한 식물을 3번이나 죽였다.
식물은 때맞춰 물 주면 사는 애들이야.
담임 선생인 '봉'은 내게 그렇게 말했다. 평소 친구같은 선생님을 자처하는 사람인지라 봉은 권위의식따위 버린 목소리로 한 말이었지만 책임은 오롯이 나에게 있다는 뜻이 따갑게 전해져왔다.
봉은 자신의 화분과 내 화분 총 2개를 돌보라는 미션을 내렸다. 방학이 끝날 때 까지 살려두는 것이 목표였지만(고교생은 방학에도 보충수업으로 등교가 의무였다) 내가 결국 봉의 것과 내 것 까지 죽이자 그는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나를 2, 3초정도 바라보다 더 이상은 나에게 다른 학우가 가진 식물을 잘라서 분양해 주지 않았다.
여름 방학이 가고 머지않아 다른 아이들의 화분에서는 하얀 꽃이 피어났고, 그것은 은근 보이지 않는 교실안의 경쟁이 되었다. 같은 콜라병 화분에 같은 수돗물. 같은 식물인데 꽃은 다 다르게 핀다는 게 신기할 나이였다. 가장 크고 싱그러워보이는 화분을 가진 아이가 내게 분양을 권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2학기엔 다들 하나씩 가진 콜라병 화분이 내게만 없었고, 나는 어쩐지 그게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내게 식물 같은 것은 어울리지 않았다. 내가 딱히 단체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반사회적 인간이라서나 사춘기의 반항심이 가득한 애라서가 아니라고, 다만 나 이 외의 다른 것의 생존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는 10대를 보내고 있었을 뿐이라고 애써 나의 입장을 화가 난 식물들에게 항변해본다.
그렇게 얼마가 지난 오늘은 다시 봄이고, 나는 여전히 식물학살자다. 긴 겨울이 지나고 햇살이 좋은 날 광화문을 걸어도 나의 마음 한 구석에는 빛이 들어오지 않는 음지가 있다. 그 응달을 만들어내는, 빛을 가리고 떡하니 서서 비키지 않는 무언가가 분명 거기 있다.
햇빛이 우울증에 도움이 된다고들 하던데, 요즘은 그냥 의사들이 만든 헛소리 같다. 사람들이 무턱대고 신봉하는 무슨 연구결과 같은 건 나날이 업데이트 되고, 단체나 이익에 따라서 자주 얼굴을 바꾼다. 몸에 좋다고 선전하는 것들이 부작용을 일으키거나 효과가 아주 미비한 경우도 많다. 햇빛의 효능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초록식물도 아니고 비타민 D 그거 합성 좀 한다고 뭐가 어쨌다는거야. 나는 죽은 화분의 흙을 화단에 처박았다. 시들어버린 내 어딘가도 함께 묻고싶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