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하 Apr 11. 2024

이상과 본능과 불륜

[소설] <도쿄타워> - 에쿠니 가오리


불륜. 참으로 껄끄러운 단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논한 것처럼 사랑은 인간의 근원적인 본성이기 때문에 배우자가 있어도 그 본능적인 끌림을 거부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에겐 동물과 구별되는 이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적 도덕과 윤리를 배반하면서까지 사랑을 추구하는 것 역시 어렵다. 때문에 좋게도, 나쁘게도 바라볼 수 없는 불륜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껄끄럽다.


그래서 그런지 문학에는 불륜을 테마로 한 작품이 굉장히 많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과거에도, 현재에도 불륜은 각종 작품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며 우리에게 익숙한 시사점을 던진다. 과연 불륜이란 무엇이며, 그것의 선악에 대해서 말이다. 이는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 Rosso>로 유명한 일본의 작가 에쿠니 가오리가 쓴 소설 <도쿄타워>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미지 출처 : Yes24


책은 연상과 불륜을 저지르는 20살의 두 대학생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엔티크 가게를 운영하는 유부녀 시후미와 연애하는 내성적 청년 토오루, 그리고 언제나 밝고 쾌활한 유부녀 키미코와 연애하는 플레이보이 코우지. 그들이 연상에 끌리며 밀회한다는 점은 같지만, 그 사랑을 대하는 자세는 다르다.


이처럼 작가는 연상의 유부녀와 불륜을 저지르는 20살의 청년들을 내세워 불륜과 사랑의 의미에 대해 독자에게 묻는다. 하지만 나는 이번 소설을 조금 다른 시각에서 해석해 보고자 한다. 유부녀와의 사랑에 대한 도덕과 윤리는 제하고 오직 인물의 심리상태와 변화를 분석하면서 말이다. 불륜과 사랑과의 관계는 이미 많은 사람이 이야기했으니 나는 왜 그들의 연상의 유부녀를 갈망하였는지, 그리고 20대 청년에게 불륜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토오루의 불륜 - 이상적 자아를 실현시키는 불륜녀


20살의 대학생 '토오루'는 3년 전 자기 어머니의 친구인 '시후미'와 우연히 함께 술자리를 갖게 된다. 그 자리에서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서로는 토오루의 어머니 몰래 연애를 시작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매우 일방적이다. 그들의 밀회는 언제나 오후 4시에 정확히 걸려 오는 시후미의 전화로 시작되고, 데이트 장소 역시 시후미의 단골 바에서만 이루어진다.


일방적인 순응–복종의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토오루는 이러한 연애에 전혀 불만을 갖지 않는다. 한 달 동안 그녀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어도, 남편과 함께 파티를 즐기며 행복한 모습을 보아도 토오루는 크게 좌절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시후미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에 집중하여 그녀를 열렬히 갈구한다. 호구 소리 듣기 딱 좋은 사람이다.

그래서 토오루는 또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볕이 가득 드는 거 실에서. 3시간 전인데도. (...) 기다리는 것은 힘들지만, 기다리지 않는 시간보다 훨씬 행복하다. 시후미와 연 결된 시간. 이곳에 시후미는 없지만 자신이 시후미에게 감싸여 있다고 느낀다. 지배당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P.115

  

토오루에게 시후미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켜주는 존재이자 삶을 살아가는 이유다. 여느 동급생이 그러듯 미팅에 나가도, 또래 친구들과 함께 놀아도 시후미와 함께 있는 시간이 아니면 토오루는 어떠한 행복도 느끼지 못한다. 시후미와 함께 하지 않는 시간은 토오루에게 멈춘 시간이며, 시후미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즉, 토오루에게 시후미는 ‘이상적 자아’를 실현시키는 존재다.


토오루는 드디어 자신도 자신만의 생활을 찾아냈다고 느낀다.
그것은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아버지와 있을 때의 자신도, 어머니와 있을 때의 자신도, 코우지와 있을 때의 자신도 아닌, 전혀 다른 자신이 존재했다.
집에 있는 시간도, 학교에 있는 시간도 아닌, 전혀 다른 시간을 발견한 것이기도 했다. 시후미와의 시간. P.58



코우지의 불륜 - 본능에 잠식당한 불륜녀와의 사랑


토오루의 고등학교 동창인 또 다른 주인공 ‘코우지’ 역시 ‘키미코’라는 유부녀와 사랑을 나눈다. 아르바이트 도중 우연한 계기로 인해 둘은 연애를 시작했지만, 코우지에겐 이미 ‘유리’라는 여자 친구가 존재했다. 그는 과거에도 3명의 유부녀와 교제한 전적이 있으며, 진지한 관계가 아님에도 함께 잠자리를 갖는 전형적인 플레이보이다. 즉, 오직 본능적인 끌림에서 사랑을 느끼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두 여성과 교제하며 코우지는 자신이 연상과 사랑을 나눌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것을 깨닫는데, 특히 육체적 사랑을 의미하는 잠자리를 갖게 될 때 그 깨달음은 더욱 선명해진다. 게다가 코우지는 스스로를 어른스럽다고 생각하는 면이 있어서 자신의 또래 여자 친구인 ‘유리’를 어린애 취급하며 얼마든지 자신의 애인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버리는 것은 이쪽이다, 라고 정해 놓았다. 그러나, 버리는 것은 언제나 아픔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P.296


그런 코우지의 사랑이 (사랑이라기보단 코우지에겐 당위, 혹은 자아라는 느낌이 더 가깝겠다) 부정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코우지의 내연녀 키미코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그에게 3만 엔을 건네준 것. 원조교제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키미코의 행동에 코우지는 키미코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화를 낸다. 자신 있게 믿었던 자신의 사랑의 방식이 부정당한 것이다.


코우지에게 키미코는 ‘원초적 본능’이다. 코우지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키미코와의 관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무리 이성적인 측면이 뛰어난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완벽히 제어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지만, 키미코를 잃었다기보다 자기 자신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아츠코와 헤어졌을 때, 두 번 다시 맛보지 않겠노라 결심한 바로 그 기분이었다. P.302


현실에 정착한 자와 떠도는 자


두 인물의 공통점은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어린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어른의 연애를 추구한다는 점, 그리고 현실과 동떨어진 불륜이라는 연애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작품 후반부 그들이 마주하는 결과와 현실은 극명하게 갈린다. 앞서 말했듯 토오루에게 시후미를 ’이상적 자아‘ 코우지에게 키미코를 ’원초적 본능‘이라고 바라본다면 이야기의 결말에 비추어 그들의 내면을 프로이트의 심리학적 이론으로 분석해볼 수 있다.


프로이트의 성격 구조론에 따르면 인간의 의식은 원초아(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의 3가지 측면으로 나뉜다. 원초아는 본능적 욕구의 충족을 추구하는 의식이고, 자아는 현실의 여건이 허락할 때까지 만족을 지연시키는 인성의 현실적 차원이다. 그리고 초자아는 부모로부터 내면화한 사회문화적 규범과 가치를 뜻하는데, 쉽게 말해 인간 사회의 관습적 도덕원칙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연상의 유부녀와 불륜을 시작한 당시에는 토오루와 코우지 모두 자아가 쾌락이라는 원초아에 지배당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소설의 결말부에선 그들이 이상과 본능을 현실에 결합하는 방식의 차이로 인해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토오루는 남편으로부터 시후미를 빼앗으려는 비현실적 이상을 추구하지 않고 그녀의 가게에 취직하는 것으로 현실과 타협한다. 언젠가 시후미가 내뱉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닌 함께 살아가기 때문이다’라는 말에 토오루는 자신의 원초아인 이상을 완벽하게 현실과 결합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즉, 원초아적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을 추구함으로써 어느 정도의 이상을 실현한 것이다.


이에 반해 코우지는 자신의 본능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만심과 함께 과거의 과오를 수정하지 않고 현실을 외면하며 원초아에 잠식된다. 과거 교제했던 유부녀 ‘아츠코’의 딸 ‘요시다’의 등장과 그녀의 복수로 인해 코우지는 현재 여자 친구인 ‘유리’와 헤어지게 되고, ‘키미코’ 역시 ‘유리의 존재로 인해 코우지와 결별을 선언한다. 코우지는 모든 여성(코우지의 본능)에게 버림받고 건강한 자아를 영성하지 못한 채 현실에서 방황하게 된 것이다.



두 청년의 연애가 사회적으로 그리 건강해 보이지 않은 것은 맞지만 어찌 됐든 한 사람이라도 그 사랑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설은 소설일 뿐. 현실에서 불륜으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불륜을 지속하다 보면 마치 코우지처럼 원초적 본능에 잡아먹힐 수 있으니 혹시라도 불륜에서 사랑을 발견하고 싶은 분들은 이성적으로 잘 생각해 보길 바란다. 인간이 짐승과 구별될 수 있음은 이성적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인 것도 말이다.


불륜에 대한 소설을 ’불륜이 윤리/도덕적으로 옳은가‘에 대해 바라보지 않고 인물에게 초점을 맞춰 심리학적으로 문학을 분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이제 막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의 해석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문학 작품을 다양한 방향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는 스스로에게 칭찬해 줄 만하다. 다양한 학문을 공부함으로써 문학작품을 다채롭게 바라볼 수 있음을 깨달았으니, 앞으로도 편식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여야겠다.

이전 01화 지금은 찌라시 시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