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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Mar 28. 2024

지금은 찌라시 시대

[소설] <백설공주 살인사건> - 미나토 가나에


최근 철학과 사회학, 심리학 따위를 공부하다 보니 실시간으로 머리털이 빠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인문학을 읽다 보면 안개가 자욱한 호수에서 정처 없이 표류하는 듯 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이렇게 머리가 복잡할 때는 가벼운 소설을 읽는 게 최고다. 평소 잘 방문하지 않는 추리소설 코너를 오랜만에 찾았다. 오늘 집어 들은 책은 미나토 카나에의 <백설공주 살인사건>이다.



<백설공주 살인사건> - 미나토 가나에 (Yes24)


이전에 미나토 가나에가 쓴 소설 <고백>을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어 이 책을 집어 들었다만, 머리를 비우겠다는 목표는 완벽한 실패다. 가벼운 추리소설에도 시사점을 남기는 작가라는 것을 벌써 까먹었던 것인가. <고백> 때도 대차게 나의 머리를 흔들더니...역시 섬세하고 날카로운 작가다.


https://brunch.co.kr/@zihayaa/79

 *이전에 쓴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 <고백>에 대한 서평



억측이 만들어낸 끔찍한 비극


소설은 한 화장품 회사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프리랜서 기자인 ‘아카호시 유지’는 화장품 회사에 근무하는 지인이 전해준 이야기를 통해 살인사건을 취재하게 되는데, 그 방법이 상당히 독특하다. 바로 소설 속 가상 SNS인 ‘만마로’에 일기처럼 자신의 취재 내용을 게시하는 것인데, 이 행동은 후에 돌이킬 수 없는 큰 문제를 야기한다.


그는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자신의 만마로 계정에 진위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내용들을 가감 없이 게시한다. 게다가 그가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고 있는 주간지 <주간 태양>에는 자신의 추측만으로 누군가를 특정하여 범인으로 몰아간다. 개인 SNS의 파급력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은 실제 현실에서 큰 영향을 받았고, <주간 태양>은 꽤나 파급력이 있는 잡지였기 때문에 미디어에서도 이를 주목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해당 기사는 사실이 아니었고, 아카호시 유지가 지목한 용의자는 범인이 아니었다. 소설 결말부에서는 그가 더 이상 <주간 태양>에서 기자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고, 잡지사에서도 독자에게 사과를 전하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이미 해당 기사로 인해 여러 사람의 일상이 붕괴된 상태였다.


책을 깊이 분석하지 않는 사람이더라도 이 책이 단순히 재미를 위한 추리 소설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직장 내 빈번한 성희롱,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 그리고 미디어의 정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일본 사회를 꼬집은 사회풍자 소설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비단 일본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가짜 뉴스가 만연한 시대 : 진실된 정보는 존재하는가?


미디어의 무한한 정보를 뜻하는 ‘정보의 바다’라는 표현은 이제 진부하다. 과거에는 수 많은 정보들을 빠르게 탐색하고, 배열하고, 습득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지만, 이제는 정보의 양이 아닌 질이 더 중요한 시대다. 어느 정보가 진짜이고, 어느 정보가 가짜인지 판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능력이 된 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정보는 무엇이고, 가짜 정보는 무엇일까? 소설 속 기자 아카호시 유지가 자신의 개인 SNS에 올린 정보는 어느 쪽에 속할까? 또, 그가 주간지에 게시한 기사를 보고 독자들은 어떻게 그것의 진위를 판별할 수 있을까? 즉, 정보의 진위여부는 누가 판별할 수 있는 것이며, 정보에 대한 책임은 제공하는 쪽과 받아들이는 쪽 중 누가 더 큰 것일까?


나 역시도 책을 읽고 책에 대한 내용과 감상을 전달하는 글을 쓰고 있으므로 정보를 제공하는 ‘공급자’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제공한 정보가 진짜이냐, 가짜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쉽게 대답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글에는 나의 주관이 들어있고, ‘수요자’의 판단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신문이나 뉴스, 지식을 전달하는 도서도 모두 마찬가지다. 어떠한 정보를 완벽히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모든 글에는 글쓴이의 주관이 조금씩 들어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소설 속 주간지의 기사 뿐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기사와 도서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사실에 근접한 정보전달은 가능할 수 있어도, 글쓴이의 주관이 들어가지 않은 글은 존재할 수 없다. 생각과 말을 글자로 옮기는 그 순간부터 글은 객관성을 상실한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찌라시가 판치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이러한 문제의 힌트를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한 데카르트의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 데카르트는 스스로가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외한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말했다.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모든 현상과 본질을 끝없이 의심하라는 것이다.


데카르트가 자신의 존재를 제외한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한 말은 의심병에 빠져 세상과 담을 쌓으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특히, 현재 미디어에서 급격하게 쏟아져나오고 있는 ‘진짜’처럼 보이는 정보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모든 정보에는 주관성이 어느 정도 개입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시각으로 그 정보를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라는 말이다.


나는 이 책이 추리소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반전’이 필연적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내가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이 책을 읽었더라면 과연 내가 소설 속 기자가 쓴 내용을 의심하려고 했었을까? 기자가 전해준 정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진 않았을까? 그리고 만약 이러한 사건이 현실에서 일어났다면 과연 나는 미디어 속 정보를 의심할 수 있었을까? SNS와 미디어의 우주에서 떠도는 수많은 정보먼지들. 무의식 속 마저도 의심을 잃어버린 우리들은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끝없이 백설공주를 만들어내고 죽이길 반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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