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하 May 12. 2024

여한 없는 삶

#5번째 단상 - 여한에 대하여

달콤한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며 언젠가 친구에게 물었다.


"내일 당자 죽는다면 뭐가 제일 후회될 것 같아?"

"딱히. 나는 당장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그런 생각은 단 한 순간도 해본 적이 없다.

달콤한 액상으로 가득 찬 전자담배였지만 그날의 담배는 매웠다.

타인의 불순한 날숨이 나의 폐에 가득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욕심이 많았다.

아니, 생각해 보면 그건 욕심이 아니다. 욕망이었다.

남들보다 더 높은 권력을 갖거나, 남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싶다는 그런 욕심이 아닌

절대로 다가설 수 없는 지식의 마지막 페이지,

혹은 시공간이 뒤틀려도 변하지 않는 절대적 가치와 진리를 찾고 싶은 욕망.

실현 불가능한 욕망은 나에게 평생 만족할 수 없는 불안을,

죽음에 대해 초연해질 수 없는 여한을 심어주었다.


무엇이 내 삶의 끈을 형성하는지 모르겠다.

무엇이 나의 죽음을 미루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디에서 행복을 느끼는지는 대략적으로 느낄 수 있지만,

이런 것들을 자각하고 있음과 삶의 여한이 채워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받아들이는 것과 채워지는 것은 다르다.

마찬가지로 살아가고 있는 것과 살아가고 싶은 것은 다르다.


만약 내가 내일 죽는다면 나의 영혼은 영문 모를 억울함에 이승을 떠돌게 되겠지.

아직 글이라고 불릴 제대로 된 글도 쓰지 못했고,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해보지도 못했다.

제주도에서 한 달간 살면서 자연의 신비를 느끼지도 못했고,

SNS에 나오는 것처럼 멋지게 스케이트보드도 타보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아직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런 단상의 파편들을 조립시키지 못했다.


내일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사람의 삶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을까.

또 내 욕망의 부피는 그들만큼 줄어들 수 있을까.


여한 덩어리의 삶이다.


이전 04화 치마 입는 남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