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째 단상 - 겉옷에 대하여
외모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군대를 전역한 뒤였다.
같은 복장, 같은 머리, 같은 얼굴의 사람들과 19개월이라는 시간을 함께하다 보니 세상에서 멀어진 기분이었다.
나만 빼고 돌아가는 세상.
도태되고 있다는 그 거짓된 절망감에 나는 결심했다.
꾸미는 사람이 되어야지.
당시에는 꾸민다는게 무엇인지 몰라 무작정 따라 했던 것 같다.
TV에 나오는 연예인의 모습을 후다닥 찍어 미용실 아주머니께 이대로 깎아주세요라고 말하고
*무신사를 하루 종일 드나들며 인기 있는 순위의 옷을 구매했다.
남들을 따라 꾸민다는게 잘못된 건 아니지만 그땐 나에게 어울리는 꾸밈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어떤 옷이 나에게 어울리는지, 어떤 분위기에 내가 빛을 발하는지.
(*대한민국 온라인 의류 편집샵)
이것저것 시도해 보니 점차 나에게 어울리는 옷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키가 크진 않지만, 다리가 길고 얇은 편이기 때문에 딱 붙는 청바지는 안 어울렸고
체형이 작은 편이기 때문에 큰 사이즈의 옷으로 가리는 게 훨씬 보기 좋았다.
캐주얼한 옷보다는 힙한 느낌의 옷을 입었을 때 더 자신감이 생겼고,
모자와 악세사리가 잘 어울리지만, 안경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나는 어디 가서 옷 잘 입는 사람이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되었고, 어느새 옷으로 나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심취한 사람이 되었다.
나에게 잘 어울리고, 또 내가 아끼는 옷은 외출 후 옷장에 고이 모셔둔다.
술에 취해 눈앞이 빙빙 돌아도 집에 오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옷에 섬유탈취제를 뿌리는 일인 만큼 나는 옷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만약 우리 집에 불이 난다면 제일 먼저 갖고 나올 옷을 고르기도 했을 정도다.
하지만 그런 내가 가장 많이 즐겨 입는 옷은 따로 있으니
바로 의자에 걸려 있는 겉옷가지들이다.
생각해 보면 딱히 이쁘지도, 딱히 애착이 가지도 않지만 언제나 나는 이 옷가지들을 입고 있다.
집 앞 편의점에서 우유를 사러 나갈 때, 친구가 갑자기 술을 마시자고 할 때, 담배를 피우러 나갈 때, 혼자 산책하고 싶을 때.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같은 옷을 입고 나간다.
마이크를 손에 쥐고 YO라고 말할 것 같은 제스처를 취한 캐릭터가 그려진 갈색 후드집업, 유니클로에서 할인할 때 산 회색 카디건, 그리고 색이 다 바래 파란색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바람막이.
우리 동네 반경 5km에서 나를 만난 사람들은 내 겉옷이 3가지밖에 없는 줄 알 것이다.
분명 다른 옷에 비해 저렴하게 구입했고, 어떤 코디와 매치해도 어울리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단
나는 이 옷들과 가장 친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만나도 편하게 보여줄 수 있는 친구 같은 존재. 마치 국밥같이 든든한 존재다.
사진에 가장 많이 등장하고, 나와 함께 가장 많이 고생한 나의 옷가지들.
이 글을 쓰는 동안에 유독 날개뼈가 따끔따끔한 걸 보니
아무래도 불이 나면 먼저 구조해야 할 옷을 다시 정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