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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Jul 15. 2024

공감할 수 있는 죽음『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

[소설]『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 이장욱(현대문학,2024)

캐스터는 티핑 포인트를 지나자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급격한 변화가 찾아왔다는 해외 언론의 헤드라인 뉴스를 전했다. 임계점을 지나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모든 것은 한꺼번에 급격하게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무너진다. 인간의 몸도 인간의 마음도 인간의 도시도 그럴 것이다. 마침내 인간이 없는 세상조차도. 그런 세상에는 '무너지다'라는 단어조차 없겠지만. P.47


죽음은 가장 공평한 현상이다. 살아있는 한 그 누구도 죽음을 경험할 수 없으며, 죽음을 예측할 수 없다. 설령, 이를 예측할 수 있다 하더라도 얼마만큼 무너질 수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죽음은 마치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젠가와 같다. 무너지는 것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형태다. 불안해 보이는 블록을 뽑고 살아남을 수도, 단단해 보이는 블록을 뽑아 무너질 수도 있는게 바로 삶이자 죽음의 이치다.


2024년 1월,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50번째 작품으로 자리한 이장욱의 소설『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에선 예측 불가능한 죽음과 그 ‘이후’를 살아가는 인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 소설은 인적이 드문 해변여관의 주인 ‘모수’를 잃은 그의 애인 ‘연’과 전직 아나운서였지만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등진 ‘한나’의 애인 ‘천’의 시점이 번갈아 가며 진행된다.


[소설]『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 이장욱(현대문학,2024)


죽음을 가장 근접하게 느낄 수 있는 대상은 죽음을 바라보는 이들이다. ‘후(Hu) 변이’라 불리는 불치의 병으로 모수는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다. 한나의 전남편 역시 변이 바이러스에 걸렸고, 한나는 천과 이별한 뒤 엑스(전남편)와 함께 자살한다. 연과 천은 살아있지만, 죽은 듯이 해변여관에서 시간을 보낸다. 쓰러지는 젠가처럼 예측불가능한 죽음이었다.


모수와 한나는 연과 천에게 부재하는 대상이다. 연과 천의 곁에는 더 이상 자신이 사랑했던 대상이 실재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모수의 죽음 이후에도 연은 모수의 유령이 곁에 있음을 감지했고, 연의 모든 행동과 생각은 모수로부터 출발했다. 천 역시 한나와 이별했지만, 아직 마음속에서 그녀를 놓아주지 못했다.


곁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남아있는 이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함께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으면 그들을 충분히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소설 속 죽은 이들을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지만,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혹은, 존재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았는데, 이 책의 작품해설을 담당한 양윤의 평론가 역시 그렇게 생각했는지 허수*의 개념으로 그들을 해석했다.

*실수가 아닌 복소수로 제곱하여 -1이 되는 '존재하지 않는 수'. i의 기호로 표현한다.


피와 살을 가진 인간, 살아 있는 사람이 나타나 는 곳은 +1의 자리다. 부재하는 이, 죽은 자가 위치하는 곳은 -1의 자리다. +1의 인간들이 현실의 영역을 벗어나 소설이나 연극 속의 인간이 될 때 이 들은 1의 좌표에 놓인다. -1의 존재들이 유령이 되거나 거듭된 죽음을 겪을 때 이들은 -i의 자리에 놓인다. P.169



서두에서 밝혔듯 죽음은 경험 불가능하기 때문에 살아있는 이들은 결코 죽음을 공감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은 모두 죽는다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에 우리는 알 수 없는 공감과 위로를 느낀다. 연과 모수, 천과 한나가 서로 만난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익숙한 감정을 느끼는 이유다.


이장욱 작가는 처음 이 소설의 제목을 ‘침잠’으로 지으려 했다고 한다. 고개를 끄덕였다. 책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깊이 가라앉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포기하고 최종적으로 ‘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이라는 제목을 택했다고 한다.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길고 장황한 제목에 어울리는 삶에 중독된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산다’는 것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사람들이다. 살려고 애쓰지 않고 버티지 않았고, 그렇다고 포기하지도 않았다. 이들은 모두 바다의 삶에 중독되었다. 둥둥 떠다니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 그러다 꼬르륵 침잠되어도 당황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 예측 불가능한 삶과 죽음의 파도에 저항하지 않고 그 너머를 바라보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고,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나 혼자 죽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죽는다고 하면 죽는 것도 별로 안 무서워하지. 사람들이 많이 죽는다는 것이 어쩐지 반갑게 느껴지지.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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