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디자이너 라니씨가 추천하는 9월의 산책코스
서울에는 산이 도대체 몇 개나 있을까?
내가 어렸을 때는 남산 아래 (남대문로)에 살면서 남산에 자주 오르내렸고, 대학에 다닐 때는 도봉산과 북한산 그리고 수락산에 등산도 다녔다.
어른이 돼서는 성미산 자락 성산동에서 살았다.
그리고 동쪽으로 아차산 근처에서도 산 적이 있고 지금은 남산 옆 매봉산 자락에 살면서 이웃의 금호산과 대현산, 응봉산으로 산책 다니고 있다.
이렇게 내가 금방 열거할 수 있는 산 이름만 해도 벌써 열개나 된다. 정확한 보고인지 모르겠지만 어떤 사람이 조사한 결과 서울에 산이 116 개가 있다고 한다. 동네마다 앞산 뒷산이 있으니 서울은 정말 산이 많은 도시다.
오늘은 하월곡동에 얼마 전 개관한 오동 숲속도서관이 가볼 만하고 오동근린공원 자락길의 숲이 좋다고 하니 그 숲길을 찾아가 보기로 한다.
길 찾기를 하다 보니 서울에 오동근린공원이 두 군데나 있다. 하나는 북서울숲이 있는 오패산 자락에 있고 또 하나는 월곡산 자락에 있다. 같은 이름의 공원이 두 군데나 있는 까닭은 모르겠으나 우리는 오늘 월곡산으로 향한다.
월곡산? 아! 그래서 상월곡동, 하월곡동이라는 동네이름이 생겼구나. 이제까지 월곡역은 들어봤지만 월곡산은 처음 듣는 산 이름이다. 해발 119 미터 높이의 산이다.
지하철 6호선 상월곡역 1번 출구에서 모여 월곡초등학교 방향으로 경사진 길(장월로3길)을 따라 올라간다. 15분쯤 오르니 왼편으로 오동근린공원 자락길이라고 안내판이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무장애숲길로 이어진다.
정상으로 곧장 오르는 길도 있으나 숲사이로 완만하게 데크길을 지그재그로 만들어 놓아 편안하게 월곡산 숲을 더 오래 즐기며 오를 수 있다.
애기릉터 위 월곡정으로 가는 산길의 숲이 울창하다. 애기릉터는 어릴 적 세상을 떠난 고종의 맏아들 완화군의 묘가 있었지만 서삼릉으로 이장되고 이곳에 터만 남아 있다.
이곳에 월곡정이라는 정자가 있고 여기 올라서면 서울 시내가 다 보이고 전망이 좋다고 하나 오늘은 유감스럽게도 공사 중이라고 길을 막아놓아서 가까이 가지 못한다.
근처에 쉼터가 있어 앉아 쉬면서 보니 그 아래쪽이 철쭉동산이란다. 오, 철쭉! 내년 봄에는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여기에 오면 철쭉꽃을 볼 수 있겠네?
쉼터를 출발해서 치유의 숲을 통과하여 장위중학교가 있다는 북쪽으로 향한다.
갈림길 옆에서 운동하는 한 여성에게 물으니 친절하게 숲속도서관 가는 길을 알려준다. 가는 도중에 들꽃향기원이라는 정원도 있고 여기저기 여름꽃들이 아직 남아있다.
드디어 오동 숲속도서관이 나타난다. 목조건물에 나지막한 지붕이 주변 산세와 어울려 우선 편안한 인상을 준다. 이전에 오래된 목재파쇄장이 있었던 곳을 활용하여 친환경적으로 건축하였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니 밖에서 보던 나지막한 외관과 달리 나무로 된 아주 높은 천장과 밝은 유리창이 시선을 압도한다.
창밖의 푸른 숲이 통째로 실내에 들어오니 숲속책쉼터라는 이름답게 분위기가 정말 좋다.
다른 사람들 책 읽는 조용한 분위기에 방해될까 봐 오늘은 대강 건물만 둘러보고 나왔지만 언젠가 다시 와서 조용히 앉았다가 가고 싶다. 요즘 유행하는 흔한 말로 '힐링'이 될 것 같다.
도서관에서 나오면 광장옆 쉼터에 정자가 두 채가 서 있는데 무심코 한 곳에 들어가 앉고 보니 머리 위에 '할아버지 쉼터'라고 적혀있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옮겼더니 이번엔 '할머니 쉼터'라고 적혀있다.
웃긴다! 뭐야? 21세기 서울 한가운데서 남녀노소 차별인가? 할머니가 손자 데리고 들어가서 앉으면 안 되나?
도서관에서 내려와 치유의 숲을 지나오던 길로 다시 되돌아간다. 내려오는 길에서 보는 전망이 멋지다. 건너편으로 멀리 북한산과 도봉산이 병풍처럼 우뚝 서 있다.
큰길로 내려가다 보니 동덕여대로 가는 길이 나오고 이 길옆 한 아파트 단지 상가건물 이층에 파스타집이 있어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주인 혼자 경영하는 작은 이태리식당인데 아주 맛있는 음식으로 정성스럽고 친절하게 대접을 해주어 모두 만족하였다.
내년 봄 철쭉꽃 필 때 다시 와야겠다며 상월곡역에서 헤어졌다.
2023년 9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