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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Oct 07. 2023

의릉 숲길

산책 디자이너 라니씨가 추천하는 9월의 산책코스

서울의 전철 6호선은 서북쪽 응암역에서 출발하여 중구를 통과하고 동북쪽의 신내역까지 다니는 긴 노선이다.

얼마 전까지는 봉화산역이 종점이었다가 최근에 신내역까지 연장되었다.

주로 서울의 한강이북지역을 원도심을 비껴가며 관통하는  노선이다. 그래서인지 이 전철역 주변에는 산책할만한 명소들이 많다.


6호선 노약자석 옆 벽면에는 노선도가 붙어 있는데 친절하게도 정차하는 역마다 가깝게 가볼 수 있는 명소들을 사진과 함께 소개해 놓았다. 예를 들면 북한산부터 시작해서 서오릉, 월드컵공원, 경의선 숲길, 남산, 동묘, 홍릉 수목원, 의릉, 오동근린공원, 태강릉 지나 봉화산까지 갈 수 있어 이 열차는 마치 서울의 관광열차 같다.


우리가 목은산 산책모임을 시작한 이후 위 장소 중에서 여러 곳을 이미  다녀왔지만 아직 안 가본 곳이 있었다. 의릉과 오동근린공원이었는데 지난주에야 비로소 오동공원의 숲길을 걸어 숲속도서관까지 탐방하고 왔다.

내친김에 오늘도 그동안 못 가본 의릉 숲길을 걸어보기로  한다.


왕릉 하면 시내에서 가까운 왕릉으로 서오릉, 정릉, 선정릉, 헌인릉, 태강릉, 동구릉 등이 있어 전에 한두 번쯤 가본 적이 있지만 의릉은 처음이다. 그동안 관심을 끌지 못했던 의릉은 알고 보니 경종 임금의 능인데, 경종의 어머니가 바로 드라마로 유명해졌고 시대가 변해도 계속 거듭 등장하는 비극의 주인공 장희빈이다.

의릉에 가려면 돌곶이역에서 내려야 한다. 7번 출구에서 나오니 돌곶이역 이름의 유래가 적힌 비석이 서있다.

이곳은 의릉이 있는 천장산의 한 맥인데 예전에 마을의 형상이 검은 돌들이 꽂이에 꿰인 듯한 형상이어서  이 마을을  돌곶이마을이라 불렀고 후에 한자로 바뀌어 석관동(石串洞)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지금은 물론 역 위를 지나가는 북부간선도로와  고층아파트들에 가려서 그런 지형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설명을 읽고 한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제까지 석관동이라고만 알고 있던 동네의 원래 이름이 돌곶이마을이었다는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며 아!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지하철 출구에서 나와 직진하여 15분쯤 걸어 돌곶이로3길과 만나는 곳에서 우회전하여 들어가니 의릉 입구와 우거진 소나무숲이 보인다.


매표소 앞 안내판에는 경종이 4년밖에 재위하지 못했고 36세에 승하했다고 적혀있다. 전임 숙종과 후임 영조가 장기집권(각 46년과 52년)하고 장수한 것과 비교하면 아주 짧게 집권하고 단명하여 후세  사람들의 동정을 살만한 왕이었다. 당시에 심했다던 당쟁의 틈바구니에서 너무 스트레스가 많아서 장수하지 못했을까?

역사공부? 쪼끔하고 능 안으로 들어서니 홍살문과 정자각 사이의 넓은 잔디밭이 마치 초록색 양탄자를 깔아 놓은 것같이 환하다. 관리를 잘해서인지 잔디가 반짝거리며 윤기가 흐른다.

정자각 뒤로 왕비릉과 왕릉이 아래위로 배치되어 있다. 그 뒤로는 나지막한 천장산이 왕릉을 보호하듯 둘러싸고 서 있고 주위가 소나무숲으로 울창하다.

와!  시내에서 가까운 곳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문화재로서 이 지역이 보호되고 있으니 이나마 천장산 숲이 남아 있어 다행스럽다.

능 주변 숲길을 돌다 보니 옛 중앙정보부 강당이 있고(그래서 오래 동안 이부근이  개방되지 못했었구나.), 160년이나  되었다는 향나무가 특이하게 양쪽으로 갈라진 모습으로 서있다. 두 가지  중  한쪽 가지만 아직 살아남아 있지만  그 잎은 여전히 푸르고 은은한 향을 뿜어내고 있다.


숲길 도중에 천장산 정상으로 오르는 산길이 있으나 오늘은 공사 중이라고 길을 막아놓았다. 다음 기회에 또 와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숲길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의릉 입구에 왔다. 그런데 여기서 보니 한국예술종합학교가 바로 옆에 있다. 능을 바라보며 오른편으로는 본관 가는 길이, 왼편으로 별관 가는 길 표지판이 있다.


점심에는 오는 길에 친구들이 봐 두었다는  갈치조림 집을 찾아갔다. 추석 전날이라서 거리는 한적하다.


명절 전날이지만 이제는 차례음식 걱정에서 해방된 엄마들이 모여서 걷고 점심도 함께 했다. 그래도 추석인데 송편이 없으면 섭섭할 테고  맛이라도 봐야지 하면서 돌곶이역 앞에 있는 떡집에서 송편 한 봉지씩 사서 집으로 들고 간다. 옛날에는 오늘 같은 추석 전날 온 가족이 모여서 송편 만드느라고 분주했었는데라고 지난 얘기 하면서 역으로 간다.


 2023년 9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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