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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Mar 03. 2023

루틴 거부자의 루틴 만들기 (1)

일상은 몇 개의 루틴으로 이루어집니다.

대개 사람들의 삶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재수학원을 끝으로 나의 일상은 루틴을 지키지 않는 것이 루틴이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며 동시에 프리랜서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 활동가로 살게 된 나의 일상에서 루틴은 어쩌면 조금 금기시하면서도 선망하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나의 일상에 루틴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비인간 존재와 동거하게 된 것이죠.

처음 그는 아기였습니다.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시계가 내장된 것인지 밥시간만 되면 삐약삐약 야옹야옹 울었습니다.

그러면 침대에서 일어나 밥을 줬습니다.

화장실은 또 얼마나 자주 가는지, 그의 배변 시간에 맞춰 화장실을 치워야 했습니다.

비인간 동거 존재와 삶을 합친 다른 이들은 그렇게 매번 화장실을 치우지 않아도 된다 했지만, 나는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똥은 얼마나 눴는지, 오줌의 크기는 또 어떤지, 똥오줌 눌 때의 이 아기의 표정은 또 얼마나 다채롭고 귀여운지, 집을 비울 때가 아니면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취업을 하거나, 배우자가 생기거나, 돌봐야 할 존재가 생기면 마냥 자유롭기만 했던 무루틴 일상에 루틴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루틴이 무척 힘든 사람인 듯합니다.

MBTI의 J에 해당하는 사람인데도 그렇습니다.

J는 주로 판단하면서, 목적, 계획, 절차를 선호하고 중요하게 여긴다고 해요.

그런 사람이 무루틴 정책의 일상이라니… 좀 우습죠?

그렇지만 루틴이 없는 일상이 불안하고 우울한 것을 보면 어쩌면 아이러니하게도 루틴을 필요로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루틴의 사전적 의미가 궁금해졌습니다.

옥스퍼드 영한사전에서 routine을 찾아봤습니다.

명사로는 첫 번째 규칙적으로 하는 일의 통상적인 순서와 방법, 두 번째 지루한 일상의 틀, 판에 박힌 일상. 이라고 합니다.

형용사로는 정례적인, 일상적인, 보통의, 판에 박힌, 지루한… 이라고 하네요.


아하! 그러니 젊은 날의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저는 루틴으로 구성된 일상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겠어요.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고 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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