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 N이라서 그래 #2
이루마 - f l o w e r
이루마의 f l o w e r 이라는 곡을 들을 때마다 왜 flower가 아니라 f l o w e r 로 표현했을까 항상 궁금했다. 물론 음악 전문가도 아니고 당사자도 아니라 그 의미를 완전히 알 수는 없지만 나만의 작은 방식으로 답을 내자면 꽃잎이 흩날리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글자 간의 간격이 있는 것이 아닐까.
이루마는 이 곡을 쓸 때 때가 되면 꽃이 피듯이 자신도 때가 되면 음악을 쓴다며 자신의 음악을 기억해 줄 많은 이들에게 바친다는 의미로 이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피아노 선율을 들으면 누군가에겐 연인 간의 사랑의 결실을 향해하는, 반대로 누군가에겐 짝사랑의 애틋함이, 또 누군가에겐 벚꽃의 향기처럼 아마 각자마다 받아들이는 곡의 느낌이 다를 것 같다.
특별히 나에게는 이 멜로디가 슬프게 다가왔다. 흩날리는 꽃처럼 한송이의 꽃이 찬란하게 피었다가 마지막에 지는 순간을 그리는 것 같았다. 이 곡의 꽃은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순간으로 보인다.
어렸을 때부터 종종 죽음에 대해 생각한 적이 많았다. 밤에 홀로 잠이 들 때 ‘나중에 엄마 아빠가 돌아가시면 어떡하지’ 혹은 ‘내가 갑자기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기억이 남은 채로 하늘에서 가족들을 지켜본다면 그것도 너무 슬플 거 같은데’ ’ 아무것도 기억 못 하고 그저 어둠 속에서 있어야 한다면 너무 숨 막히는데’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그 어린 나이에도 눈가가 촉촉해지면서 가슴이 막막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중학교 시절에도 죽음은 그만큼 공포의 대상이었다. 현실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너무나 무서운 상상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주위에서 일련의 죽음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멀리 떠나버린 친구. 혹은 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눈을 감은 할머니의 죽음 외에도 뉴스에서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한순간의 별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런 과정들을 보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죽는 순간을 미리 대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는 급작스럽게 고통 없이 죽는 것이 오히려 행복한 죽음이 아닐까 싶었는데 내 죽음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좋은 선택이 아닐까 느껴졌다. 적어도 죽기 전 스스로의 삶을 정리할 시간은 허락되니까. 드라마 중에 <초콜릿>이란 참 좋아했다. 메인 줄거리는 두 남녀의 사랑이지만 그것보다는 호스피스 병동이란 배경에서 각 인물들이 각자의 인생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 깊게 다가왔다. 그래서 나의 마지막이 호스피스였으면 좋겠다는 어이없는 상상도 해본 적이 있다.
이 음악은 가사는 없지만 피아노 선율을 듣다 보면 마치 노년의 끝자락에 온 기분이 든다. 찬란하게 빛나던 꽃이 어느덧 끝을 향해 가는 순간. 한 잎씩 생기를 잃고 떨어지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 순간 어떤 마무리를 지어야 할까. 친한 사람들을 한 명씩 만나 마지막 인사를 나누어야 할까. 아니면 일출명소에서 해돋이의 경관을 바라보며 자연을 만든 신의 위대함을 경외해야 할까. 마지막을 떠올린다는 건 슬프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고통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죽음에 관심이 많은지 요즘에는 죽음체험이라는 프로그램도 생겼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 속 반드시 거치는 필수코스는 유언장을 작성하는 시간이다. 마지막을 정리할 수 있다면 무슨 유언장을 남길까.
여보. 만약 이 글을 읽는다면 그건 내가 눈을 감았다는 뜻이겠지. 이 편지를 보고 너무 울지 않았으면 좋겠어. 당신이 신을 믿는다면 더더욱 울 필요가 없어. 육체는 없을지라도 영혼은 잠시 떨어져 있는 것뿐이니까. 나는 그동안 살만큼 살았어. 이제 떠날 때가 와서 떠난 것일 뿐이잖아. 내가 없어서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 이 글을 계속 읽어봐. 그러면 좀 나아질 거야.
사실 만약 죽는다면 당신보다는 늦게 죽길 바랐어. 당신이 혼자 남아서 겪어야 할 슬픔을 생각하면 차라리 내가 혼자 남아서 그 시간들을 겪는 게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죽음이란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어쩌겠어. 그저 당신이 조금만 아파하길 바랄 뿐이야. 그동안 함께해 줘서 고마워. 당신이란 사람을 만나 지금까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건 크나큰 선물이었어.
그리고 혹여나 새 사랑이 찾아오면 괜히 죄책감 갖지 마. 연애 정도는 하늘나라에서 설령 보더라도 눈 감아줄게. 먼저 간 사람이 그 정도는 양보할 줄 알아야지. 그러니 너무 아파하지 마. 당신이 나를 못 잊고 매일 슬퍼하면 그게 더 힘들 것 같아. 그냥 일 년에 한 번 기일에만 나를 위해 울어줘. 나머지 삼백육십사일은 당신의 삶과 우리 자식들을 생각하면서 웃으면서 살아. 그게 당신에게 남기는 내 유언이야.
그동안 함께해 줘서 고마워요. 기억을 간직한 채 쉴 수 있다면 당신과의 기억을 가진 채로 잠들고 싶어.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납시다. 그때 그동안 어떻게 잘 지냈는지 알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