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그대는 신 맛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좋아하고, 말보로 하이브리드를 좋아한다. 그대는 버스 기사님 바로 뒤 맨 앞자리를 좋아하고, 비 오는 날 카페에 앉아 가만히 듣는 빗소리를 좋아한다. 그대는 달걀 풀지 않은 덜 익은 라면을 좋아하고, 우유에 생크림 빵을 찍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
용식이 침을 삼키자 안경 쓴 중년 교수가 말한다.
“구체적인 표현이 좋아요. 이런 표현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에 많은 관심이 필요하죠. 관심이 글을 만든다는 것 모두 염두하시고, 다른 학생?”
난 글 쓰는 남자가 좋아. 뭔가 순수하달까. 요즘은 순수한 느낌 나는 사람 찾기 힘들잖아. 지연이 말했다.
지난 2년 동안 용식과 지연은 거의 매일 함께 학식을 먹었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으며, 말보로 하이브리드를 피웠다. 목포에서 올라온 용식은 기숙사에 살았고, 대구에서 올라온 지연은 학교 근처 원룸에 살았다. 용식과 지연이 처음 만난 건 2년 전 1박 2일의 강릉 OT에서였다.
마주 앉은 지연은 재잘댔고, 용식은 들었다. OT에서 시작된 지연의 재잘거림은 학기를 거듭하도록 이어졌고, 용식은 들었다. 그들이 매일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동안, 지연은 세 번의 연애를 했다.
지연의 첫 번째 남자 친구는 지연보다 3살 많은 연합동아리 선배였다. 그는 훈훈한 외모에, 젠틀하며, 패션 감각이 뛰어났고, 유머감각이 있었으며, 성도착증이 있었다. 그가 지연에게 공중화장실에서 하고 싶다고 두 번째 말한 날, 지연은 그에게 헤어지자고 했고, 용식을 찾았다. 그렇게 변태일 줄 몰랐다며, 사람이 어찌 그리도 겉모습과 다를 수 있냐며, 지연은 숨도 안 쉬고 재잘댔고, 용식은 들었다.
지연의 두 번째 남자 친구는 지연이 일하는 카페에서 번호를 물어본 손님이었다. 그는 지연보다 8살이 많았다. 그는 검은색 BMW가 있었으며, 강남으로 출근을 했고, 부모님이 사주신 오피스텔이 있었다. 그 오피스텔에 지연 말고도 많은 여자들이 들락거린다는 걸 알게 된 건, 섹스 후 남자가 침대 구석에서 주워서 건넨 속옷이 지연의 것이 아닌 순간이었다. 지연은 용식에게 다시는 번호 물어보는 새끼랑은 연애를 안 하겠다며 욕을 퍼부었다.
지연의 세 번째 남자 친구는 과 동기의 소개로 만난 한 살 연하의 서울대생이었다. 지연은 그를 만난 이후 늘 똑똑한 남자가 섹시하다고 재잘댔다. 지연은 이번에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난 것 같다며, 인연이라고, 결혼할 거라며 재잘댔고, 용식은 들었다. 하지만 지연과 남자의 애정의 깊이는 달랐다. 남자는 군대 가기 하루 전 지연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과제했어?”
지연의 물음에 용식이 끄덕인다. 지연이 용식을 찌르며 용식부터 발표하라고 한다.
“그대는 신 맛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좋아하고, 말보로 하이브리드를 좋아한다. 그대는 버스 기사님 바로 뒤 맨 앞자리를 좋아하고, 비 오는 날 카페에 앉아 가만히 듣는 빗소리를 좋아한다. 그대는 달걀 풀지 않은 덜 익은 라면을 좋아하고, 우유에 생크림 빵을 찍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
용식이 침을 삼키며 지연을 쳐다본다.
“그대는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누군가 자신의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대는 사랑하기를 좋아하고, 사랑받기를 원한다. 그대는 말하고, 나는 듣는다.”
용식이 말하고, 지연이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