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에 시달리던 내가 초저녁부터 잠에 빠져들었다. 한동안 계속. 그러니까 이 주정도 쯤이다. 침대에 녹아버린 캐러멜처럼 달라붙어 자고 있다. 등까지 내려오는 숱 많은 머리카락을 대충 틀어 올리고 사용하지 않던 베개에 얼굴을 푹 파묻고 잠들었다. 등이 외로웠다. 옆으로 누워 커다란 베개 하나를 내 등 뒤에 붙였다. 위안이 됐다. 이 베개가 나를 사랑해줘서. 나를 따뜻하게 안아줘서 고마웠다.
한 사람을 완벽하게 죽이는 방법이 있다. 어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 방법을 털어놓게 되는 것에 죄의식을 덜기 위해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 방법은 무기도 필요 없다. 당신이 죽이고 싶은 사람에게 다가가 매일매일 더 자주 써먹을수록 효과가 높을 것이다.
입술만 나불거리면 된다.
"넌. 하찮아. 너 따위는 없어도 되는 존재야. 넌 네가 얼마나 별거 아닌 줄 알고는 있니?"
처음엔 대상자가(피해자라고 쓰는 게 더 맞을 것 같지만.) 거부할 것이다. 아니. 그렇지 않아! 눈을 똑바로 뜨고 화를 내면서 소리칠 수도 있다. 그래도 지지 말고 매일매일 속삭여라.
넌 하찮아. 너 따위는 없어도 되는 존재야.
분노하고 거부하던 대상자는 말없이 눈물을 흘리다가 어느새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늘어뜨린다. 정말인가. 왜 나에게 저런 말을 하는 거지? 나의 어떤 점이? 스스로 고민한다. 이제 그는 절반쯤 죽은 상태다.
힘을 내어 매일매일 속삭여라.
넌 하찮아.
대상자는 이제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는다. 눈빛이 흔들리고 불안해 보인다. 아주 작은 자극에도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며 경계한다. 자신의 부족함을 스스로 탓하며 고분고분해진다. 생각하기를 멈추고 멍하니 체념한다.
성공이다. 이제 그 피해자는 자신이 뭘 할 수 있을지 고민조차 하지 않고 자신이 행복해지는 길을 자발적으로 포기할 것이다. 그는 노력하지 않을 것이고 탐구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이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 정말로 하찮아지려고 할 것이다.
난 당신이 이 글을 여기까지 읽지 않길 바랐습니다. 점점 읽을수록 불쾌한 기분에 나가버리길 원했어요. 사람을 사랑하고 타인의 행복을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글을 읽고 있지 않을 겁니다.
아니 잘못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난 당신이 이 글을 여기까지 읽길 바랐습니다. 이 악랄한 내용에 대차게 욕이라도 퍼부어주길 바랐어요. 아니면 피해자에게 손을 내밀어 이야기해주길 바랐어요.
그런 쓰레기 같은 소리 듣고 있지 마요. 당신이 소중한 사람이란 걸 잊지 말아요.
피해자가 자신 없는 표정으로 대충 고개를 끄덕여도 끝까지 마지막 한마디 당부를 전해주길 바랐어요
"누구라도 당신이 하찮다고 말한다면. 그런데 싸울 용기가 없고 겁이 난다면. 그땐 이렇게라도 해요.
넌 하찮아.라고 할 때마다 속으로라도 -뭐라고? 닥쳐-라고 꼭 말해야 해요. 알았죠? 기억해요. -뭐라고? 닥쳐-
해 봐요. -뭐라고? 닥쳐- 조금 더 크게. 네. 조금 더요. -뭐라고? 닥쳐- 정말 하찮은 건 당신이 아니라 그런 말 하는 사람인 거예요. 하찮아서 당신 걸 훔쳐가려는 도둑이라고요. 내가 뭐라고 했죠? 그래요. -뭐라고? 닥쳐-"
혹시 밥맛도 없고 책도 안 읽히고 훌륭한 기계식 키보드도 땡기지 않아 한 줄도 쓸 수 없나요? 나 따위가 무슨 글이야 싶은가요? 초저녁부터 잠이 쏟아지고 깨고 싶지 않은가요? 가엾은 피해자를 보며 지난날의 내가 떠올라 괴로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