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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터졌다 Jul 18. 2021

잠들기 위해 내가 했던 일

오늘 내게로 와서 잠들어주길...

서울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불면증이 시작되었다. 

아. 나는 얼마나 아름답고 성실한 아이였던가. 

저녁을 먹고 운동을 하고 책을 좀 보다 11시쯤이면 잠이 들어 다음날 아침 7시면 눈을 번쩍 뜨던 나였다. 

이를 갈지도 코를 골지도 않고 누운 그대로 잠자는 숲 속의 미녀처럼 개운한 잠을 잤다.

하지만 서울에서 살면서 불면증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일종의 향수병인가 싶어 그 생경한 기분에 조금 들뜨기도 했었다. 


그러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몇 달 가까이 제대로 잠들지 못하자 일상이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금요일 밤을 꼴딱 새고 토요일 아침에 벌건 눈으로 커피를 마신 나는 화가 잔뜩 난 사람처럼 서둘러 배낭에 몇 가지 소지품을 쑤셔 넣고는 서울역으로 향했다. 

서울역으로 갔고 미리 결제한 대전역 ktx에 올라탔다. 

내 자리에 앉아 한 십여분쯤 창 밖을 내다봤을까.  



문득 옆사람의 기척에 놀라 바라보다 대전에 도착했음을 알았다. 한 시간 가까이 잠들어있던 것이었다. 


"다음 역은. 대전. 대전입니다.  내리실 승객께서는 두고 가시는 짐이 없는지..."


기차 안에 앉아 내 생애 가장 친숙한 공기를 맡으며 대전역에 내려 어슬렁거렸다. 내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한 은행동에서 맛집을 골라 식사도 했다. 그리고 내린 지 3시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서울행 ktx를 탔다. 

이미 한 시간 정도 푹 잠들었던 터라 말똥말똥 창밖을 내다보다 혹시 몰라 핸드폰 진동 알람 설정을 해두었다.  


그리고 30분 뒤 알람 덕분에 깊은 잠에서 깨어나 무사히 서울역에 내릴 수 있었다. 


이 짓을 매주 주말마다 반년 가까이 반복했다. 지하철을 타보기도 하고 버스를 타보기도 했지만 잠들지 못했으므로 주말은 기차를 타고 대전으로, 또다시 서울로 오가며 열심히 잠을 잤다. 그리고 그 짧은 잠을 균주 삼아 유산균 키우듯 평일의 잠으로 늘려갈 수 있었다. 






"에.... 이따가... 방송으로  나오세요! 하면 나오세요. 알았죠?  아마 헬리콥터가 뜰 수도 있을 겁니다. 걱정 마시고 일단 방으로들 가세요."


펜션 주인은 담담하게 우리를 향해 말하고는 문을 탁 닫고 들어가 버렸다. 


여름방학을 맞아 지리산으로 여행을 온 우리들은 그대로 서서 눈알만 굴리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 아깝다. 그렇잖아요. 헬기가 구하러 온다잖아. 주인은 걱정도 안하는구만 뭐."

"아유. 괜히 여기로 예약을 했나?"


국어를 가르치는 H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고  체육을 가르치는 C는 여기로 예약을 한 자신을 자책하는 듯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은 했지만 속으로는 내심. 가슴이 쿵쾅거리고 오늘 밤을 여기서 무사히 잘 수 있을까 싶은 나는 설렜다. 


어쩌면 헬리콥터를 타볼지도 몰라. 아니지, 혹시 저녁 8시 뉴스에 잠깐 나올지도... 헬리콥터는 몇 인승이지?


방으로 돌아온 우리는 씻지도 않고 제각각 생각에 잠겨 어물쩡 어물쩡 자리에 누웠다. 

창문을 열어보니 코앞에 계곡이 바로 보인다. 계곡 위에서 날카롭게 튀어 오르며 솟구치는 빗물이 그대로 방 안으로 들이칠 것만 같았다. 

여행을 시작할 때 쾌청하던 날씨였는데 우리가 펜션에 도착한 직후 폭우가 쏟아졌다. 어마어마한 비가 퍼붓고 계곡 바로 옆에 자리 잡은 펜션이 잠기지는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H는 곧바로 이불을 턱까지 덮고는 잠들었다. C는 가냘픈 몸매로 창가에 앉아 계곡을 노려보고 있었다. 


"우리 교대로 잘 까요? 선생님 2시간 자고 그다음엔 내가 2시간 자고."

계곡을 노려보던 그녀를 향해 내가 말을 건넸다. 

"아니. 괜찮아. 내가 딱 보니까. 아직 버틸만한 강수량이야. 여기서 조금 더 넘치거나 헬리콥터 타러 오라고 방송 나오면 내가 깨울 테니까 걱정 말고 자."


진지한 그녀의 등짝을 바라보며 미안하게도 바로 깊은 잠에 빠졌다. 

어슴프레 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새벽 6시였다. 얼른 창가를 바라봤다. 

"선생님. 밤샜어요?"


내 말에 뒤돌아보던 C는 상기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봐봐. 물이 다 빠졌어. 거짓말같이. 진짜 요 창턱까지 차오르는가 싶었는데 지금 봐봐. 비오기 전으로 쑥 빠졌어."


아. 아까워라.. 그러니까 내 헬리콥터는 안 오겠구나.  


그때쯤 깨달았다. 나의 불면증에 특효약은. 체념이라는 것. 

기차 안에 갇혀 목적지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거나 폭우 속에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 속에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잠. 

갈피를 못 잡는 불안한 내 마음을 어찌할 도리 없이 체념해야 깊은 잠에 빠진다는 것.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아야 어쩌면 진정한 휴식이 찾아오는 건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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